유럽까지 수출된 中로봇, 뜯어보면 핵심 기술은 죄다 ‘일제’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05:00

황의(黃衣)의 천사?

[환구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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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환자가 급증한 스페인의 한 병원.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일당백을 하는 간호사들이 있다. 그런데 여느 간호사와 복장이 달랐다. 흰색 대신 노란색 가운과 모자를 썼다. 업무에 너무 열중했나. 눈도 붉게 충혈돼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렇다. 로봇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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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이들의 국적(제조국가)이다. 중국이다. 지난 18일 중국 환구시보는 스페인 FM96.7 뉴스를 인용해 스페인 각 병원에 중국산 간호 로봇이 투입돼 활약 중이라고 전했다.

스페인에서도 코로나19가 재확산 중이다. 당연히 의료진 업무 부담이 크다. 특히 환자와 긴밀하게 접촉하는 간호사가 감염 위험에 가장 노출돼 있다. 상하이의 한 기업이 만든 이 간호사 로봇이 의료진 부담을 줄여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모델은 2가지다. 간이형은 환자에게 약이나 식사를 전한다. 호화형은 병실 내 소독, 환자 상황 관찰, 의사와 환자 대화 연결 업무를 한다. 구매 비용은 간이형이 1만 3000유로(약 1830만원), 호화형은 4만 유로(약 5640만원)다. 그래도 인기 폭발이다. 노인 요양 시설에서도 주문 요청을 하고 있다.

로봇 분야도 중국 위세가 대단하다.

2018 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중국의 '5G 로봇'이 직원의 행동을 따라하며 한자를 쓰고 있다.[중신망 캡처]

2018 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중국의 '5G 로봇'이 직원의 행동을 따라하며 한자를 쓰고 있다.[중신망 캡처]

한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를 보자. 중국은 이미 2011년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최대 로봇 생산국가로 올라섰다. 2015년엔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1/4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더구나 로봇은 2025년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중국제조 2025’ 정책의 핵심 분야다.

지난해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294억 달러(약 35조원)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용(159억 달러) 로봇에서 중국산의 비중은 30%다. STEPI는 “중국 자동차 산업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후닷컴 캡처]

[소후닷컴 캡처]

서비스 로봇도 중국 내 물류 유통, 서비스 혁명이 이뤄지면 폭풍 성장 중이다. 2016년부터 늘어나는 무인서점, 무인 상점, 무인 레스토랑에서 맹활약한다. 기존 1, 2위인 미국과 일본 기업을 위협한다. 스페인 간호 로봇은 이러한 중국의 성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런데 이 성장. 아직은 ‘속 빈 강정’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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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기술’ 국산화가 안 돼서다. 로봇 시장의 ‘넘사벽’은 일본이다. STEPI에 따르면 일본은 현재 로봇 관련 전체 특허 중 43%를 가지고 있다. 2위인 미국(20%)에 두 배 이상 앞섰다. 중국은 한국(12.7%) 다음인 4위(9.6%)다.

로봇 핵심부품 및 모듈 관련 특허 점유율(특허법인 기준).[자료 STEPI]

로봇 핵심부품 및 모듈 관련 특허 점유율(특허법인 기준).[자료 STEPI]

실제 로봇을 움직이게 만드는 로봇의 핵심 부품 및 모듈 관련 특허 점유율로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파낙(20.2%), 야스카와(15.9%), 혼다(13.6%) 3개 일본 기업이 전체 특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50%를 과점하고 있다. 여기에 세이코엡손(6.9%), 파나소닉(5.0%), 소니(4.9%), 미쓰비시(3.7%) 등도 있다. 상위 10개 기업 중 한국의 삼성전자(9.0%)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 기업이다. 당연히 중국 기업은 없다. 속된말로 명함도 못 내민다.

아무리 중국산 로봇이 세계에 위상을 떨친다고 해도 내부 부품과 작동 기술의 지분은 대부분 일본에 있다는 뜻이다. 겉은 중국산, 속은 일제(日製)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고서를 쓴 백서인 STEPI 부연구위원이 “중국 로봇 제조기술은 일부를 제외한 토종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약하고 핵심 부품은 국산화가 늦어져 글로벌 공급망 하단에 정체돼 있다”는 평가를 한 이유다. 백 부연구위원은 “현재 중국에선 무분별한 로봇 단지 설립으로 인한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정책 지원의 효과성이 낮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무시할 순 없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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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중국의 집요함 때문이다. ‘될 때까지 한다’ ‘안되면 돈 주고 사서라도 이뤄낸다’ 전략이 로봇 분야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가전기업 메이디(美的)는 독일의 KUKA와 이스라엘 로봇 벤처 서보트로닉스를 인수했다. 또 다른 기업인 EFFORT(埃夫特)도 이탈리아 로봇 관련 기업 2곳을 사들였다.

로봇 관련 기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백 부연구위원은 “중국은 인공지능 및 컴퓨터 비전 등 로봇의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중국 기업과 대학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향후 로봇의 미래 영역을 담당할 기술이다. 여기에 실제 로봇 가동 기술마저 국산화해낸다면. 중국의 로봇 기술은 순식간에 판을 뒤집을 수도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기계연구원 도현민 박사 연구팀이 지난 1월 대전 한국기계연구원 첨단생산장비연구본부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실에서 인간형 로봇 손으로 중앙일보를 집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기계연구원 도현민 박사 연구팀이 지난 1월 대전 한국기계연구원 첨단생산장비연구본부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실에서 인간형 로봇 손으로 중앙일보를 집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STEPI는 한국 대기업의 연구개발·제품화 능력이 중국보다 우수하며 KIST, KAIST 등 연구기관은 세계적 수준의 역량이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이 장악한 핵심 기술 분야에서 한국 기업(삼성전자 4위, LG전자 12위)의 선전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시장 규모는 작고,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도 여전히 높다. 백 부연구위원은 “중국의 국가공정센터처럼 한국형 로봇 엔지니어링 센터를 설립해 기업, 대학, 연구소의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넋 놓고 있으면 당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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