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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인류의 ‘평화 패러다임’의 완전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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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지금 우리 인류는 전례 없는 사태를 겪고 있다. 어느 시기에도 전체 지구와 인류가 오늘날처럼 ‘하나의 단위로’ ‘함께’ 이토록 엄중한 위기를 겪어본 적은 없다. 오늘의 현상이 세계화로 인한 산물이기에, 그것은 명백하다.

전 인류, 보편적 예외상태 돌입 #‘인간·사회·세계’ 평화의 토대 위기 #‘평화의 평화’에 대한 숙고가 절실 #‘자연·지구·행성’ 평화와 함께 가야

누군가는 갑자기 생명이 멈추었고, 누군가는 일상이 갑자기 정지되었다. 누군가는 갑자기 강제격리를 당하였고, 갑자기 생업을 잃은 동료 인류는 부지기수다. 지금 나의 객관적 상황은 나 자신의 주관적 의지와 선택의 산물이 전혀 아니다. 인류 전체의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의지의 관계 역시 똑같다.

분명 정상상태와는 거리가 먼 예외상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예외상태에서 면제된 예외인류 또한 아무도 없다. ‘인류 모두’와 ‘개인 각자’에게 동시에 다가온 초유의 보편적 전 지구적 예외상황이자 긴급상황인 것이다. (물론 위기의 침투와 피해는 인종과 국가, 연령과 계층에 따라 매우 차별적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독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예외가 보편인 이 최초 상황 앞에서 하나로서의 우리 인류는 잠시 길을 잃고 허둥대고 있다. 지구의 구석구석,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이 가혹한 재앙과 시련에 직면한 지금 인류 앞에는 세 가지의 길이 놓여있다.

첫째는 오늘의 대위기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공통 경험에 바탕을 둬 인류 미래의 밝은 토대를 정초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가장 지혜롭고 바람직한 길이다.

둘째는 첨예한 위기 앞에 더 다투면서, 같이 패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빠르게 인류의, 또는 지구의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셋째는 단기적으로 자기 세대를 위해서는 위기극복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후대에게는 더 큰 재앙과 더 좋은 세상 사이의 선택 과제를 남겨주고 물러나는 것이다.

인간들의 욕망체계와 오랜 사태 대처 방법에 비추어볼 때, 지금의 인류 역시 세 번째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류이기 때문이다. 즉 인류는, 오직 그들만이 이성을 갖고 세상과 자연에 대해 과학적 합리적으로 대면해온, 우주와 지구 행성 내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다음 세대에게 언제나 ‘개선’과 ‘악화’의 짐을 같은 크기로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여, 인간과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면 인류는 언제나 더 근본적인 ‘물음’과 ‘해법’을 찾아 나섰다. 수천 년 동안 지속해온 이성의 한계이자 이성의 혜택이었다. 이른바 ‘근원의 근원’, ‘본질의 본질’, ‘속성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마주한 초유의 전 지구적인 보편적 예외상태는 우리 인류가 마땅히 ‘요인의 요인’, ‘체계의 체계’를 거듭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그 ‘물음’과 ‘해법’을 평화 개념과 사유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이제 우리 인류는 ‘평화의 평화’. ‘평안의 평안’을 말해야 할 때다. 인류가 근대 이후 그동안 사유하고 추구해온 평화는 주로 인간평화·사회평화·국가평화·국제평화·세계평화였다. 즉 인간과, 인간들이 만든 조직 단위들 내부, 또는 사이의 평화였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는 인간과 세계를 둘러싼 근본 조건의 평화 없이는 불가능한 평화였다. 즉 인간과 세계의 평화는 언제나 행성 내 자연현상 안에서였다. 지진·빙하·가뭄·폭염·폭우·태풍·바이러스·질병의 무자비한 발생과 확산 속에 인간과 세계평화-생명의 질서와 보존체계-는 거듭 무너졌다. 인간평화의 전제는 인간조건의 평화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 생태평화·행성평화·우주평화·자연평화를 ‘반드시’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평화와 국제평화와 세계평화는 불가능하다. 즉 행성평화와 지구평화 없는 인간평화와 세계평화는 없다. 두 개의 평화, 나아가 ‘평화의 평화’를 왜 함께 추구해야 하는지 깊이 사려할 때다. 즉 ‘우주적인 것’, ‘행성적인 것’(the planetary)이 배제된다면 ‘인간적인 것’, ‘세계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인류의 생명 망실에 대한 거시 통계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근대 이래 인류의 생명망실은 주로 내전·폭력·전쟁·세계대전·전체주의·국민학살·종족학살과 같은 인간 내부요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계화 이후 전쟁부재 시대의 인류사망 통계는 전혀 다르다. 공기오염·기후변화·지구온난화·질병과 바이러스·가뭄·태풍·폭우와 같은 인간 외부요인이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내부요인을 압도한다. 그리하여 현재 인류는 내부요인에 의한 생명망실이 외부요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다.

현재 인류는 유일하게 이 둘을 모두 경험하였다. 따라서 평화를 향한 우리 인류의 의무는 명백하다. 영구평화를 향한 최고 지혜는 말한다. “영원한 평화를 보증해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이다.”(임마누엘 칸트) 양자택일을 둘러싼 오랜 논란과 달리 인간평화와 행성평화는 결국 같은 현상의 두 발현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과 평화 못지않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과 평화도 똑같이 절대적이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