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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 행복의 새로운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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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모든 과학은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이름 짓기’로부터 시작한다. 대상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을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식물이나 동물을 발견할 때마다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그거’ ‘거시기’로 부른다면, 우주는 수많은 거시기들의 집합소에 불과하고, 우리의 소통은 혼란으로 가득할 것이다. 체계적인 명명 체계가 생물학의 필수 요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삶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 필요 #흡족함, 심장뛰게 하는 원동력 #코로나 시대, 흡족의 자세 절실

이름의 부재 혹은 잘못된 이름이 만들어내는 혼란의 가능성이 자연과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다양한 주관적인 경험을 다루는 분야에서도 이름 짓기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우리가 소위 느낌이라고 지칭하는 많은 주관적 경험 중에서 무엇을 ‘감정’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정서’라고 부르며, 무엇을 ‘기분’이라고 부르는가? 무엇을 ‘분노’라고 부르고, 무엇을 ‘울분’이라고 부르며, 무엇을 ‘서러움’이라고 부를 것인가?

과학적 탐구 영역에서의 이름 짓기는 아이의 이름 짓기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아이의 이름 짓기가 소망이나 가치에 기반한다면, 과학적 이름 짓기는 철저하게 사실에 기초를 둔다. 그 대상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다른 대상과 명료하게 구분되는 이름을 짓는 것이 과학적 작명의 기초다. 이런 과학적 작명의 관점에서 볼 때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주관적 경험이 잘 반영된 좋은 이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을 뜻하는 행복은,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조건들을 지칭할 뿐, 행복 경험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름이 아니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한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등과 같이 행복 자체보다 행복을 유발하는 상황과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다.

만약 행복에 이름을 새로 지어준다면 어떤 단어가 좋을까?

흡족(洽足).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여 만족함. 행복의 실체를 묘사하기에 이처럼 좋은 단어가 또 있을까? 흡족(洽足)에는 만족(滿足)이라는 단어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체념의 그림자가 없어서 좋다. 흡족에는 ‘이 정도에 만족해야겠다’는 결단과 비장함이 없다. ‘형편에 만족하며 살라’는 꼰대 같은 이미지도 없어서 마음에 부담이 없다.

‘소비자 만족’ ‘고객 만족’ 이런 문구는 김연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할인마트에서 떨이로 팔면 딱 좋을” 말이다. 흡족이라는 단어는 이런 상투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 만족할 줄 알아야지’라며 핏대를 올리는 소위 높으신 분들의 저급한 우월감이 배어 있지 않아서도 좋다.

오직 하나 흠이라면, 인터넷에 ‘흡족’을 검색했을 때 족발집이 나온다는 점. 그래도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인 ‘쾌족(快足)’을 검색했을 때 발 마사지 숍이 나오는 것에 비하면 큰 흠도 아니지 않은가.

흡족(洽族)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남을 흡족하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흡족하게 할 수는 없다. 흡족한 상태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기는 해도 그리 흡족하지 않은 이유는, 타인의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흡족(洽族)은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을 때 ‘산이 거기 있어서’라고 답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흡족이다. 흡족은 돈이나 명예만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흡족함이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흡족(洽族)은 성장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다.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에게 왜 아직도 매일 연습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내가 실력이 느는 것 같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정부, 국민이 흡족해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때다. 직장에서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이 일 처리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높이듯, ‘국민을 흡족하게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정부의 경각심을 깨우기를 기대해본다.

기업은 구성원들이 직장생활에 흡족해하고 있는지 묻기를 부탁한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학교생활에 흡족해하고 있는지 묻기를 부탁한다. 모든 것이 미흡한 코로나 시절에 가장 그리운 마음의 상태가 흡족이 아닐까?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