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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방역에도 네 편, 내 편 따지니 코로나가 잡히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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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평택시청·오산시청은 ‘평택 65번 확진자’ 감염 경로를 ‘광화문 집회 관련’이라고 공지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종각역 근처에서 진행된 민주노총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이었다. 중대본과 두 시청이 일부러 감염 경로를 뒤바꿨는지, 아니면 실수로 틀린 정보를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실수라고 하더라도 고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두 시청의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민노총 확진자가 광화문 집회 참석자로 둔갑 #‘진영 논리’ 앞세우니 불신과 음모론 퍼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인 주옥순씨가 코로나19 감염자로 판정이 나자 그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서울 은평구청은 주씨 동선을 주민에게 알리며 이름을 실명으로 썼다. 이 구청은 그동안 다른 확진자의 실명은 감춰 왔다. 은평구청장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그제 국회 소통관 연단에 올라 “이승만(전 대통령)은 친일파”라며 열변을 토했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서울시 행정명령 위반이다. 그날 국회 사무처는 소통관 사용신청권자만 연단에 오를 수 있다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지침을 발표했다. 사용신청권자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연단에 설 수 있으나 김 회장은 연단에 오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광화문 집회에 대해 “바이러스 테러”라고 목청을 돋웠던 여권은 김 회장 연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만약 미래통합당 의원이 소통관 사용 신청을 하고 보수단체 대표가 그 대신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연설했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고발 운운하며 미래통합당을 방역의 걸림돌로 몰지 않았겠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모여서 선동하거나 힘자랑하지 말라’는 한 목사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청와대 회의에선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정부 규탄 집회를 연 전광훈 목사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말과 글이었다. 지금의 코로나19 재확산이 전 목사 등 정부 반대 세력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몰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서둘러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며 외식을 독려하고, 지난 17일을 휴일로 지정하면서 방역 분위기를 느슨하게 한 것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영악하다. 얄팍한 정치적 계산 때문에 생긴 방역의 허점을 노린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든 사회적 균열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정부와 여당이 하는 짓이 괘씸해 지침을 따르기 싫다”는 말이 도처에서 들린다. 방역에서도 편 가르기를 하니 정부 대응을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간다. 음모론도 퍼진다. 지금이 네 편, 내 편 따질 때인가. 지긋지긋한 ‘진영 논리’와 ‘정치 공학’을 당분간 접어둘 것을 당부한다. 나라의 병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