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혼란 부르는 졸속 임대차보호법, 보완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00:09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부동산 관련법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값 안정과 주거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작전 펼치듯 통과시킨 법안들의 문제점이 시행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통상적인 법안 처리 절차인 법사위 소위 심사나 축조 심사조차 생략한 졸속 입법 과정 때 이미 예견된 결과다.

‘5% 상한’에도 세입자 동의 없인 못 올려
집주인 임대 기피로 임차인도 결국 피해

대표적인 것이 전·월세 상한제를 둘러싼 혼선이다.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 인상 5%로 제한하면서 구체적 비율은 ‘협의’하도록 했다. 세입자의 갱신권은 강제 조항으로 하고, 집주인의 전·월세 인상권은 임의 조항으로 둔 것이다. 갱신 권리를 행사한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5% 이내에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더라도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국토부도 해설서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의 증액 청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임대인이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비용이나 승소 가능성 면에서 택하기 힘든 방법이다. ‘전·월세 상한제’가 아니라 사실상 ‘전·월세 동결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대인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역차별이다.

묵시적 계약 갱신을 둘러싸고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는 묵시적으로 계약이 연장된 경우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권이 행사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이 경우 세입자는 추후 계약 만료 때 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 최소 6년간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이 역시 임대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불균형이 세입자에게 반드시 유리할지도 의문이다. 사실상 4년치 임대료가 동결되면 집주인이 4년치 임대료를 미리 올려받으려 들 것이다. 집주인들의 임대 기피 현상이 심해져 세입자들의 전·월세 구하기가 더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임대차보호법 시행 한 달 만에 전·월세 값이 폭등하고, 물량은 말라 버린 현실을 이미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 폭주는 여기저기서 불만을 낳고 있다. 종부세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부부 공동명의 주택 소유자들이 불리하게 된 게 한 예다. 세액공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부부 명의 주택 소유자가 남편 단독 명의보다 종부세를 더 많이 물게 되면서 “지금이 조선시대냐”는 비아냥을 받았다. 뒤늦게 정부가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했다. 현장을 무시한 정책의 조급함이 부른 혼선이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대책이 곧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아파트 신고가 행진과 전세 품귀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혼란의 이면에는 시장 논리를 외면하고 거칠게 밀어붙인 정책 무리수가 있다. 지금이라도 신중하고 꼼꼼한 보완책을 내야 한다. 미적거리면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부동산 정치를 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