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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빈 강정’ 김천 ‘괄목상대’ 대구…도심 접근성이 성패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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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혁신도시 긴급점검 ④ 대구·경북 〈끝〉

지난달 29일 오전 경북 김천시 남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남김천나들목(IC). 차창 밖에 펼쳐진 논밭과 비닐하우스들을 뒤로한 채 10여분을 더 달리니 눈앞에 고층 아파트 숲이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 너머로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 등 공공기관 고층 사옥이 보였다. 12개 공공기관이 둥지를 튼 경북 김천혁신도시다. ‘경북드림밸리’로도 불리는 이 곳은 사업면적 381만2000㎡, 사업비 8676억원, 계획인구 2만6269명 규모로 2015년 12월 준공됐다.

김천 공실 많아 주말엔 ‘유령도시’ #미분양 아파트 속출, 상권도 죽어 #대구엔 신혼부부 선호하는 신도시 #도심 비해 집값 저렴, 이사 많이 와

김천혁신도시는 2016년 6월 농림축산검역본부를 끝으로 12개 공공기관 이전을 마쳤다. 5000여 명의 임직원과 가족들도 김천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2014년 1월 혁신도시가 들어선 김천시 율곡동 인구는 당시 810명에서 올해 6월 현재 2만2215명으로 늘어났다. 공공기관 임직원 이주율은 85.1%다.

고층 빌딩숲에도 썰렁한 김천혁신도시

대구시 동구 대구혁신도시와 경북 김천시 김천혁신도시(아래 사진)의 상가 모습. 대구는 활성화가 된 반면 김천은 공실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두 혁신도시의 명암이 갈린 것은 기존 도심과의 거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호 기자

대구시 동구 대구혁신도시와 경북 김천시 김천혁신도시(아래 사진)의 상가 모습. 대구는 활성화가 된 반면 김천은 공실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두 혁신도시의 명암이 갈린 것은 기존 도심과의 거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호 기자

하지만 혁신도시 중심부로 들어서자 상가 서너 곳 건너 한 곳꼴로 ‘임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삼삼오오 식당으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로는 텅 빈 상가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상가 1층 상황이 이렇다 보니 2층 이상 위치한 곳엔 간판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혁신도시가 들어선 후 인구가 빠르게 늘고 고층 건물이 곳곳에 세워졌지만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분양 아파트도 심각한 수준이다. 김천시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정한 ‘미분양 관리지역’이다. 혁신도시가 위치한 전국 10곳 중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김천시와 제주 서귀포시뿐이다. 김천시 미분양 아파트는 올해 6월 말 기준 1148가구다. 김천이 본가인 정하욱(29)씨는 “섬처럼 벌판 가운데 위치한 도시여서 선뜻 이사하기엔 망설여진다”며 “같은 조건이라면 대구의 외곽 지역이나 경북 구미에 집을 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대구에 조성된 혁신도시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동대구역에서 대구 동구 신서동 방향으로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면 팔공산 아래 조성된 신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감정원, 한국가스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이 입주한 대구혁신도시다.

대구시 동구 대구혁신도시(사진 위)와 경북 김천시 김천혁신도시의 상가 모습. 대구는 활성화가 된 반면 김천은 공실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두 혁신도시의 명암이 갈린 것은 기존 도심과의 거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대구시 동구 대구혁신도시(사진 위)와 경북 김천시 김천혁신도시의 상가 모습. 대구는 활성화가 된 반면 김천은 공실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두 혁신도시의 명암이 갈린 것은 기존 도심과의 거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혁신도시 입구 격인 ‘이노밸리로’ 쪽으로 진입하자, 이른바 ‘잘 나가는 동네’에 들어선다는 ‘코스트코’가 보였다. 이어 락볼링장과 올리브영, 입시학원, 브랜드 커피점 등이 즐비한 상가단지가 펼쳐졌다. 왕복 6차로 가장자리 인도엔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나 음료수를 손에 든 학생 등이 보였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는 “혁신도시 조성 초반에는 도시 전체가 썰렁했다고 들었는데, 작년부터는 주말이나 평일을 가리지 않고 유동인구가 많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10곳이 들어선 대구혁신도시는 사업비 1조4501억원을 들여 2015년 12월 조성됐다. 421만6000㎡ 부지에 계획인구는 2만2215명 규모다. 올해로 조성 5년째로 접어들면서 텅 비었던 원룸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빈 상가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혁신도시 조성 초기 공공기관 직원(3500여 명)들이 주말이면 몰려나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모습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혁신도시 공공기관 직원 중 82%가 혁신도시에 정착했다. 그래서인지 원룸처럼 덩치가 크지 않은 부동산 매물은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인근 경북 경산시와 대구 동구 주택가에 살던 주민들도 혁신도시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혁신도시 내 14개 브랜드 아파트는 7400여 세대가 100% 분양이 완료됐다. 대구 도심에 비해 아파트값도 저렴한 편이어서 대구 지역 신혼부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쇼핑·교육·편의시설을 비롯한 주거여건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를 비롯해 병·의원 15곳, 약국 5곳, 편의점·마트 16곳, 학원 37곳, 은행 17곳, 음식점 362곳 등이 입주한 상태다. 또 혁신도시 내에는 유치원 4곳과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 고등학교 1곳 등이 둥지를 틀었다.

코스트코 자리 잡은 대구혁신도시

대구혁신도시 내에는 대형할인마트인 코스트코가 위치해 있다. 한산했던 도시에 활력이 생겼다는 방증이다. 김윤호 기자

대구혁신도시 내에는 대형할인마트인 코스트코가 위치해 있다. 한산했던 도시에 활력이 생겼다는 방증이다. 김윤호 기자

인구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5년 2111명이던 혁신도시 주민은 2017년 1만4483명, 2018년 1만7163명, 지난해 1만7671명으로 증가했다. 이 상태라면 곧 계획인구(2만2215명)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상권 활성화를 보여주는 지표인 지방세도 2014년 220억원에서 2019년 330억2200여만원으로 100억원 정도 늘었다.

대구시에 따르면 오는 2024년 한국도로공사는 대구혁신도시와 고속도로를 바로 이어주는 혁신도시IC를 설치한다. 또 대구도시철도 3호선 혁신도시 연장안도 대구시 개발안에 포함돼 있다. 교통망이 촘촘하게 갖춰지면 대구혁신도시는 동구 최대 중심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같은 TK(대구·경북) 지역 임에도 혁신도시의 명암이 갈린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존 도심과의 거리가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을 결정짓는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국가균형발전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대구혁신도시는 도심 인근에 위치해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김천은 대중교통과 편의시설 등 정주 여건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김천·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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