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전시는 끝내 이루지 못할 꿈 같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25 15:04

업데이트 2020.08.25 16:04

에이라운지 전시장에 자리를 함께한 배은아 큐레이터와 써니킴 작가(오른쪽). [사진 에이라운지]

에이라운지 전시장에 자리를 함께한 배은아 큐레이터와 써니킴 작가(오른쪽).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큰 꽃나무,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46x113cm.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큰 꽃나무,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46x113cm.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 킴(Sunny Kim)의 개인전 '다른 날이 같은 날이었으면…'이 열리고 있는 서울 부암동 에이라운지 갤러리. 아담한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고 있다. 전시장에 라디오라도 켜놓은 것일까. 아니라고 했다. 써니 킴 작가가 책(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을 낭독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전시의 일환이지만, 처음부터 전시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 몇 개월 전 써니 킴 작가가 SNS를 통해 배은아 큐레이터에게 전했던 녹음 파일이라고 했다.

써니 킴 개인전 '다른 날이 같은 날...'
배은아 큐레이터와 대화로 전시 완성

코로나19로 인해 각각 미국과 한국에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던 작가와 큐레이터의 대화가 이번 전시를 만들어냈다. 원래 써니 킴의 전시는 6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작업해온 그에게 코로나19는 '전쟁'과 같은 충격을 안겨줬다.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고, 마스크도 구하지 못하고, 일상이 공포로 바뀐 상황에서 모든 게 정지될 것 같았다. 전시는 이루지 못할 꿈과 같았다"고 한다.

각각 미국과 한국에 있던 작가와 큐레이터는 함께 물었단다. “지금 우리에게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킴 작가와 함께 두 차례 협업했던 배 큐레이터가 나서 한국에 보관된 킴 작가의 작품을 체크하며 전시 준비에 착수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번 전시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전시를 가능하게 해보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준비했다"며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이렇게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큰 위로"라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써니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비경,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22x92cm.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비경,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22x92cm.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돌던지기, 2020, HD 비디오, 칼라, 소리, 6분 50초.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킴, 돌던지기, 2020, HD 비디오, 칼라, 소리, 6분 50초. [사진 에이라운지]

(써니 킴 작가는)왜 책을 낭독했나. 
"책을 낭독한 것은 처음부터 작업의 일환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는 것을 보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읽는' 행위가 위안이 되어서 한 것이다. 3월에 들어가 있으려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취소돼 2주 만에 나와야 했고, 패닉에 빠져 나 자신도 일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마사오카 시키(1867~1902)가 쓴 글을 계속 읽으며 곱씹었고, 그때 책에서 받은 위로를 친하게 지내던 배 큐레이터에게 녹음해 전했다." 

마사오카 시키의 어떤 책인가.

"시키는 하이쿠 시인인데 29세부터 병상에서 지내다가 35세에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중에서 내가 낭독한 글은 그가 병상에서 쓴 수필 ('병상육척')과 그가 동료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게 쓴 편지글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며 쓴 글이다." 
어려움 상황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미국에서 겪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동안 전시는 못 하는 거 아닐까 했다. 그리던 그림도 계속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배은아 큐레이터가 자신이 서울에 있으니 전시를 준비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서로 화상 전화로 통화하며 준비했는데, 기적적으로(?) 제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국에 들어와 2주 격리 기간을 마치고 나니 전시 개막 전전날이었다."

이번 전시는 회화 6점과 합판으로 이루어진 설치구조물, 영상작업, 작가가 친구인 배은아를 위해 낭독했던 책 등으로 완성됐다. 배은아 큐레이터는 "써니 킴 작가의 작업을 다 알고 있기에 원격으로 이야기하면서 전시를 해보자고 제안했다"며 "작가와 대화를 하며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써니 킴은 교복 입은 소녀들을 소재로 여러 작업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배경의 요소였던 폭포나 꽃나무들이 이번 작품에선 전면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라며 "이번에 선보인 '큰 꽃나무'와 '작은 꽃나무' 등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다른 과거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써니 킴은 한국에서 보낸 짧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재료로 회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2001년 교복을 입은 소녀를 그린 작업을 시작으로 회화·영상·설치 등을 넘나들며 작업해왔으며,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라 주목받았다.

그에게 다음 계획을 물었더니 "코로나19 상황에서 미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정말이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 같다. 현재는 한국에 언제까지 머물지, 다음 전시를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다"며 "다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내 작품이 내면을 깊숙이 더듬고 기억을 끄집어내는 쪽으로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9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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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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