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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보수의 X맨, 그 새를 못 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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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불과 넉 달 전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60%가 넘는 의석을 싹쓸이했다. 선거 직후인 4월 마지막 주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도(52.1%)가 미래통합당(27.9%)의 갑절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정치 승패는 실수 않는 게 중요 #총선 대승한 민주당의 오만으로 #야당 지지율 회복 기회 찾았는데 #앞뒤 안 가린 강경세력이 걷어차

그러던 것이 8월 둘째 주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두 정당의 지지도가 뒤집혔다. 통합당은 36.5%, 민주당은 33.4%. 오차 범위이긴 하나 통합당이 앞섰다. 총선 직후 정권 교체를 꿈도 꾸지 못할 것 같던 분위기를 고려하면 엄청난 변화다. 무려 199주 만이다. 그런데 이게 겨우 한 주 만에 다시 뒤집혔다. 8월 셋째 주 조사에서는 민주당(38.9%)이 통합당(37.1%)을 눌렀다.

선거는 자기가 잘하기보다 상대 실수로 이기는 경우가 많다. 실수가 없게 관리하고, 있어도 증폭되지 않게 하는 게 선거 전략의 핵심이다. 2004년 17대 총선.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 압승이 예상될 때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터졌다. “60~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겨우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노인들이 (투표장에) 오지 못하게 엘리베이터를 없애자”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는 ‘이부망천’ 발언으로 선거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이런 ‘X맨’들이 선거 때마다 나온다. 지난 4·15 총선에서도 ‘30대와 40대는 논리가 없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장애인이 된다’는 통합당 김대호 후보의 말이 폄하 논란에 휩싸였다.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텐트’ 발언도 시비가 됐다.

지난 4·15 총선도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 ‘야당 복’이 많아 이겼다. 경제 사정은 악화 일로다. 일자리는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며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24번의 과격한 정책에도 부동산은 폭등하고, 전세 물건까지 사라지게 했다.

갖은 굴욕을 참아가며 달랜 북한은 우리를 상대도 않으려 하고, 핵 위협만 한다. 국민은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고, 사회는 분열과 저주가 넘쳐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와 ‘적폐 청산’으로 까발겨진 폐해가 유권자들이 통합당으로 가는 걸 막았다.

총선 정당득표율을 보면 통합당(33.8%)이 민주당(33.4%)을 근소하게 앞섰다. 열린민주당(5.4%)을 더해도 오차 범위다. 그렇지만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방식에서는 조그만 득표 차이가 의석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지역주의가 남아 있는 현재 구도에서는 수도권에서 이긴 정당이 압승하게 돼 있다.

그렇게 해서 이긴 민주당이지만 선거 후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정권을 몇십년이고 놓지 않을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했다.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하고, 인사청문회는 요식절차로 만들어버렸다. 정권이 바뀔 경우는 생각지도 않는다. 법적 송사를 정치 문제로 바꾸었다. 진영이 바뀐다고 범죄가 선행이 될 수는 없다.

검찰 개혁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수사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치인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렇게 말 안 듣는 검찰총장과 일해 본 법무부 장관을 본 적이 없다”는 건 검찰이 권력자의 손발이 되라는 말이다. 독립된 검찰의 권한을 권력의 통제를 받는 공수처로 넘기는 게 ‘장악’ 의심을 받는 이유다.

이제 부동산값 폭등마저 ‘일반 주부와 젊은이들까지 투기에 뛰어든 탓’으로 돌린다. 코로나 재확산은 야당 탓으로 돌렸다. 일자리도 홍수 피해도 야당 탓이다. 임기 말 레임덕이 올 때가 다 되도록 이 정부는 무엇을 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충남지사에 이어 부산시장, 서울시장까지 줄줄이 성추행으로 물러났다. 거기에도 진영논리다.

이런 오만에 국민이 등을 돌렸다. 그런데 야당의 ‘X맨’들이 그 새를 못 참고 나섰다. 중단됐던 광화문집회를 다시 열었다. 집회를 여는 건 그렇다 치고, 코로나 19 방역은 왜 방해하나. 전광훈 목사의 교회는 교인 명단도 안 내고, 검역에 음모가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경찰을 향해 “내가 의원 세 번 했어”라고 고함을 쳤다. 전형적인 ‘꼰대’ 모습이다.

통합당이 광화문집회에 선을 그었지만 전 목사에 휘둘린 황교안 전 대표의 기억이 남아 있다. 일부 보수 인사의 도를 넘는 언행이 공격의 빌미를 준다. 통합당에 부담이다.

민주당이든 통합당이든 내키는 대로 내지르는 막가파 강경세력이 문제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국회가 무력해진다. 그래도 의석을 5분의 3이나 확보한 민주당은 믿을 구석이라도 있다. 겨우 지지율을 회복해가던 통합당이 기분을 낼 때인가. 호남이 인구 비율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변수가 된 것은 전략적 투표 덕분이다.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내지르면 잠시 후련할지 몰라도 경쟁 정당에만 이롭다. 보수를 망치는 건 앞뒤 안 가리는 이런 극단세력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