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정부 만능주의라는 독

중앙일보

입력 2020.08.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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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겠지 하면서도 나라 경제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몇가지만 봐도 그렇다. ①7월 취업자가 전년보다 27만7000명 줄었는데, 60세 이상만 37만9000명 늘었다. 주로, 정부가 돈을 주는 노인 일자리 사업 때문이다. ②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전년보다 4.8% 늘었는데 실제로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5.3%, -4.6%로 줄었다. 전체 소득을 늘린 건 주로, 정부가 나눠준 긴급재난지원금이었다. ③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용적률 완화를 당근으로 내건 공공재건축을 제시했다. 여기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④현 정부는 수입보다 지출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 결과 올 상반기 정부 살림살이(관리재정수지)는 110조5000억원 적자로, 사상 최대다.

가격통제, 규제 양산 심각 수위
‘해결사 정부’는 민간 활력 잠식
시장 자율성 살아야 경제 강해져

①~④의 사례를 관통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일자리도 정부가 주고, 소비할 현금도 정부가 준다. 집을 짓는 일도 정부가 들여다본다. 이른바 ‘정부 만능주의’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국가채무는 그것과 무관치 않다. 그 빚을 어떻게 줄이고 갚겠다는 것인지 현 정부는 얘기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정부 비중은 전례 없을 정도로 커졌다.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없었던 지난해 성장률인 2% 중 민간은 0.4%포인트를, 정부는 그 4배인 1.6%포인트를 담당했다. 민간이 달려가고, 정부는 지원하던 한국 경제의 모습이 순식간에 달라진 것이다.

민간보다 정부를 앞세우는 것이 현 정권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목표로 내세운 것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국가가 문제 해결사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서소문 포럼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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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에서 정부의 독주는 심각한 부작용을 부른다.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은 수많은 취약계층을 일터에서 밀려나게 만들었다. 주52시간제는 산업 현장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기껏 내놓은 주택공급대책이 민간의 관심을 받는데 실패하면서 집값은 또다시 뛰어올랐다. 노동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이나 정부가 멀쩡한 시장을 헤집어 망가뜨린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정부 만능주의적 정책 기조를 재고할 기미가 없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색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 구상을 쏘아올렸다. 가격 규제 조치는 더 빈번해지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자 전셋값을 규제하고, 반전세·월세가 늘자 전·월세 전환율을 내리는 규제에 나섰다. 규제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를 다스리겠다며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급기야 규정을 어기는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는 얘기가 공무원에게서 공공연히 나온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국민간 소송을 막고 줄여야 하지 않는가.

해결사에겐 손발이 필요해서일까. 현 정권의 공무원 증원은 역대급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공무원 수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6.99% 늘었다. 이명박 정부(1.24%)와 박근혜 정부(4.19%)를 훌쩍 뛰어넘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외환위기 속에서 공무원 규모를 줄였던(-3.37%) 것과 같은 개혁성이 없다. 지난해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2016년 보다 25% 증가했다.

정부의 비대화, 정부의 시장 압도는 경제에 비싼 댓가를 요구한다. 필연적으로 시장과 민간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늘어나는 정부 지출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만큼 국민들 호주머니는 얇아지고, 쓸 돈이 부족해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 경제의 힘을 빠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팬데믹(pandemic)은 국가간 명운을 뒤바꾼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위기가 사라진 다음에도, 정부가 돈을 나눠주는 직접 지원이 명분을 잃는 시기에도 한국 경제가 순항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과연 코로나 이후를 자신할 수 있나.

정부 만능주의는 시장에 대한 무지, 시장은 부자들만 이득을 본다는 불신, 정부를 움직이는 정권 세력만 옳다는 독선에서 비롯된다. 그 끝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민간이 정부만 바라보는 의존형 경제로 만드는 것이 좌파 집권 국가들의 특징이었다. 그 사회에선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숨쉴 수 없었다. 그 결과는 국민을 비참하게 만든 경제 황폐화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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