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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눈

“에너지에 좌가 어딨고 우가 어딨나…효율이 있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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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신재생 이후’

김영훈 회장이 인사동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효율, 국익, 과학기술이 에너지 정책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영기 기자

김영훈 회장이 인사동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는 효율, 국익, 과학기술이 에너지 정책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영기 기자

김영훈(68) 대성그룹 회장은 몽골 등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해 24시간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가이자 ‘신재생 이후’까지 내다 보는 에너지 전문가이다. 그는 1923년에 설립되어 영국에 본부를 두고 100여개 나라, 3000여 에너지 기관과 대기업들이 가입한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회장직을 아시아인으로서 두 번째 맡아(2016~19년) 에너지 대변환이라는 시대적 이슈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훈 회장의 얘기는 첨단 에너지 동향에 대한 통찰과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에서 배울 것 #태양광·풍력,간헐성 문제 극복해야 #돌파구는 디지털과 생명공학 융합 #한국 원자력으로 세계 제패 가능해

그는 탈원전에 대해 “찬성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라는 이념 문제로 변질되었다. 효율, 국익, 과학기술을 기준으로 따져야 할 정책 문제가 정치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와 기업인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졌다. 원자력에 대해 이성적,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식의 그라운드가 있어야 한다. 국내에선 치열하게 싸워도 기술, 산업적으로 원전의 세계 제패가 가능한 이 시점에서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재생 실천가로부터 듣는 원자력 가치론은 특별했다.

김 회장의 이력 중 흥미로운 것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하버드 대학에선 신학 석사를 받은 점이다. 그래서 그랬나. 그의 주장엔 허황함이 없고 역사적 실체와 과학적 근거, 미래의 비전이 골고루 섞였다. 김 회장은 오래 전 사석에서 만난 기자에게 1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인 제임스 와트와 2차 산업혁명의 선구자인 니콜라 테슬라가 인벤터(발명가)가 아니라 이노베이터(혁신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의 와트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광산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기계의 열효율을 높인 혁신가였다. 또 미국의 테슬라는 에디슨이 발명한 직류 전기의 원거리 송전이 어려운 한계를 교류 기술로 혁신한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 혁명의 디지털 혁신과 생명공학의 융합으로 현재 에너지 산업이 봉착한 한계를 돌파해 새로운 산업혁명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 에너지의 ‘꿈의 공화국’으로 칭송받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인구 3900만명)가 태양광·풍력의 급작스런 중단으로 20년만에 대정전 사태를 맞던 열흘 전, 기자는 김영훈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비슷한 시기에 폭우와 홍수로 태양광 패널이 무너져 내려간 한국의 신재생 일변도 정책에 대한 의문까지 겹치면서 에너지 선각자의 진단과 해법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20일 대성그룹 회장실이 있는 인사동 동덕빌딩에서 진행됐다.

열흘전 캘리포니아 정전 때 불안정한 전기 공급으로 문제를 일으킨 태양광 패널. [연합뉴스]

열흘전 캘리포니아 정전 때 불안정한 전기 공급으로 문제를 일으킨 태양광 패널. [연합뉴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2045년까지 전력의 100%를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하겠다며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했던 캘리포니아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동시에 멈춰 섰다. 수백만명 주민이 전력과 냉방을 공급받지 못하고 하수 처리장 작동 중지로 오물이 상수도로 넘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신재생 에너지의 환상이 깨지고 있는 징후인가.
“전 세계적인 문제다. 캘리포니아가 태양광과 풍력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했다. 태양이 어디에나 있고 바람이 어디에서든 분다고 해서 태양광과 풍력까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인터미턴스(간헐성)라는 자연적 한계가 있다. 해가 지는 저녁이나 바람이 멈추면 전기를 만들 수 없는 문제다. 안정성 측면에서 결코 우수한 전력이라 보기 어렵다. 불안정한 전력을 기존의 국가 전력망에 연결시키려니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남을 때 저장(Storage)하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시스템(ESS)이 태양광·풍력 발전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기술이 된다. 에너지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ESS는 신재생 에너지가 세계의 중심 흐름이 되면서 가장 거대한 산업중의 하나가 되었다. 다만 ESS의 핵심 원료인 리튬과 코발트 등이 비용적으로 재생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다 특정 지역에 편중 매장됐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이 기술이 해결되지 않으면 지면의 반은 태양광 패널이, 나머지 반은 태양광 폐기물이 차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신재생 에너지를 하려는 이유가 화석연료의 반환경성과 안전성 문제 때문인데 신재생 기술이 똑같은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딜레마에 빠졌네요.
“그런 셈이다. 산업혁명 이래 제1의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이 제2의 에너지인 석유와 가스→원자력(제3의 에너지)→태양광·풍력(제4의 에너지)으로 진화하면서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었고 지속가능성 문제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 가장 깨끗하고 값싸면서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제1의 에너지로 부르는 ‘에너지 효율’에 관심을 돌릴 때가 되었다.”
폭염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대원 모습. [연합뉴스]

폭염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대원 모습.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가.
“기술 혁신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에너지 대전환의 기조는 자본이나 자원 집약적인 산업에서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변화다. 기술에서 성공하면 돈도 따라 온다. 18세기의 제임스 와트나 19세기의 니콜라 테슬라도 당대의 문제를 기술 혁신으로 풀지 않았나. 거기에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인간의 열정이랄까 집념이랄까, 장인정신, 완벽주의, 영어로 zeal이라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LG화학이 ESS 기술에서 세계 1위이고 삼성과 SK가 베스트 5에 들어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 이 배터리 기술들은 자동차의 전자 장비에 사용되고 있는데 스케일을 넓혀 국가 기간 전력망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utility scale)으로 올라가야 한다.”
한국 원자력의 운명은 어떻게 보나.
“젊어서는 주변에서 무시당했지만 결국 청나라를 건설해 중국 천하를 통일한 청태조 누루하치처럼 되지 않을까. 한국의 원전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최고로 평가되고 있다. 안전성 면에서 EU와 미국 양쪽에서 공히 기술력을 인증받은 유일한 나라다. 환경적인 면에서 원전 폐기물 문제가 있지만 프랑스에서 10만년은 무해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더 좋은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정치적인 면에서 원자력 시장은 한국, 중국, 러시아가 세계를 3분하고 있는데 중동을 비롯해 영미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원전을 쓰기를 꺼려한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이나 프랑스 등과 연대한다면 안전성·환경성·정치성 세 측면에서 한국 원전은 세계를 제패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탈원전 찬반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느 쪽도 해외 수출마저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지 않은가. 탈원전을 너무 이념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원전을 추가로 짓게 된다 해도 실제로는 님비 정서 때문에 한두 개 건설하기도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원전 르네상스가 진행되고 있으니 국제 시장 진출에서만큼은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세대 에너지는 지오박터, 전기를 생산하는 미생물”

지오박터

지오박터

지난 30년 김영훈 회장의 에너지 실천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원전, 현재의 배터리, 미래의 바이오에너지가 연결되어 있다. ‘지오박터(Geobacter·사진)’라는 전기를 생산하는 미생물의 존재가 요즘 김 회장의 주요 관심사다. 지오박터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안전성, 환경성, 지속가능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차세대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오박터는 1987년 미국 워싱턴 포토맥강 진흙에서 매사추세츠주립대의 데릭 러블리(Derek Lovley) 교수가 발견했다. 이 미생물은 산소가 없는 곳에 살면서 자체 생화학 작용으로 전기를 일으킨다.

러블리 교수의 수십년간 연구 결과는 2019년 7월 1일자 뉴욕타임스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가 긴 생체 전선을 통해 우리 행성에 전류를 흘리고 있다”는 내용의 특집 기사(과학 저술가 Carl Zimmer 작성)를 실으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가기 열흘 전인 2019년 6월20일, 김영훈 회장은 자신이 서울에서 주최한 ‘대성해강 미생물국제포럼’에 러블리 교수를 초청해 해당 내용이 한국의 독자에게 먼저 전달되도록 했다. 이 일은 김 회장이 에너지 세계의 첨단 동향에 얼마나 신속하고 민감하게 접근하는지, 특히 미생물을 활용한 에너지 분야에 얼마나 큰 관심을 쏟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김 회장은 “미래 에너지는 오염된 토양을 복구하면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오박터같은 미생물에서 나올 수 있다. 바이오 경제의 초점은 미생물 기반의 폐기물 에너지로, 현재 실험실에서 산업화로 이동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