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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코로나 광풍 속의 역사 시간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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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애타는 호소에 주말 집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역사 속 시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시간은 신라에 이르렀습니다. 화랑의 시대입니다.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가는 것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 있어라.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가를 좇고저. 아, 잣가지 높아 서리 못 누울 화랑이여”

향가는 종합 무대예술의 대본 #신라 공예의 극치 사리장엄구 #높은 정신세계가 통일의 원천

무애 양주동이 1942년에 펴낸 ‘조선고가연구’에 실려 있는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입니다. 무애는 1929년 오쿠라 신페이(小倉眞平) 경성제국대 교수가 ‘향가 및 이두의 연구’란 논문에서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열네 편과 균여전 열한 편의 향가를 신라 당시 소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해독한 것은 태반이 오류라고 공박했습니다. 그러나 무애의 해독법도 방법론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향가 연구는 대체로 무애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최근 향가를 소리가 아닌 뜻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평생 향가를 연구해온 재야학자 김영회 씨는 향가의 한자는 의미로 풀어야 하며, 평면적 노래가 아니고 추임새와 무용까지 곁들여진 종합 예술적 성격을 가진 일종의 공연 대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애의 방식에 대한 반란입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를 당시 언어학자들이 뜻글자로 생각했으나 1822년, 프랑스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소리글자라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해독이 가능해진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 방법을 찾았을 때 샹폴리옹은 자기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형의 사무실까지 단숨에 달려 ‘발견했어!’ 라고 소리치곤 기절했다고 합니다. 향가의 경우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뜻으로 본 김영회 씨의 ‘찬기파랑가’ 해석은 이러합니다.

“목이 메어 슬프다. 너희들이 병들었음이. 이슬 내린 새벽, 기운 달은 그물에 걸렸고, 흰 구름은 달을 좇아 떠가고 있는데. 그는 어찌하여 아랫 사람들을 바로 잡으려 하였는가. 여덟 명을 죽게 한 것은 물을 맑게 하는 이치였네. 억센 화랑의 일 처리 하심은 도리에 합당하였네, 그는 늪같이 느리게 흐르는 내를 다스렸도다.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싫어한 화랑이었다. 낭도들을 지탱해주려는 마음을 가진 다른 화랑을 보지 못해서 그를 좇음이라. 아, 잣나무 같으신 화랑이여. 그대는 가지들이 높이 닿게 하기를 좋아하였네. 눈이 내린다. 풀과 나무들이 겨울을 맞았다. 꽃이 진다.”

김영회 씨는 신라 향가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암호 중 가장 치밀한 인간과 신의 암호문이며, 뮤지컬의 대본이라고 풀었습니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서기 6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공연되던 종합 무대예술의 시나리오를 14편이나 가진 민족은 세계에서 신라인이 유일합니다.

경주 감은사터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신라 공예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지 스님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사리장엄구는 0.3mm의 금 구슬들을 용접해 붙이고 5mm의 얼굴들에 갖가지 표정을 조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초미세 예술의 절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공예품을 만든 이의 눈은 매보다 밝았을 것이며, 자연보다 정교했을 것입니다, 그의 손은 대 우주의 정성을 다 쏟아부은 아득한 불심(佛心), 그 것이었을 것입니다. 감은사터에서는 서탑(西塔) 유리병 속에서 사리 한 과가 나왔고, 동탑(東塔) 유리병 속에서 사리 열 과가 나왔습니다. 서탑의 사리는 인도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불의 것이요, 동탑의 사리는 죽어 동해에 호국룡이 되기를 자처한 문무대왕의 것이 아닐까요? 저는 우리 민족 최고의 시대를 한반도 최초의 통일 국가를 완성한 문무대왕 치세라고 생각합니다.

산이 많은 한반도 동남쪽을 근거로 한 신라인들이 어떻게 삼국 통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신라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향가에서 보여지는 고매한 정신의 세계와 도덕성. 화랑들의 봉사와 희생의 자세. 세계 최초 최다의 뮤지컬을 공연했던 신라인들. 그리고 초미세 예술품을 제작한 미적 감각과 투철한 장인 의식. 이런 국민들의 높은 정신세계 위에 구축된 무력과 정교한 외교술은 행위의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세계 제국 당과도 대결해 물리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러한 신라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한민족이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기가 바로 최근 30년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저의 시간 여행은 주초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차피 저는 집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백수니까요.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