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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20학번? 비대면 수업 미네르바에선 아무 영향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새내기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태 대학 캠퍼스를 밟지 못했다. 교수와는 온라인 강의 화면 속에서, 선배·동기와는 단톡방에서 '랜선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질문과 답변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인강(인터넷 강의)에 실망한 학생들은 "수업의 질이 하락했다"며 등록금 환불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서울·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함에 따라, '불운의 20학번'은 2학기 역시 방콕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네르바스쿨 설립자 벤 넬슨 단독 인터뷰 #자체개발한 교육플랫폼 '포럼'으로 원격수업 #'캠퍼스없는 혁신대학' '대학계 스타트업' 평가 #코로나19로 대학교육 '뉴노멀' 재조명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설립자. [미네르바스쿨 제공]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설립자. [미네르바스쿨 제공]

코로나19로 대학 교육이 혼돈에 빠지자 미국의 '혁신 미래대학' 미네르바스쿨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2014년 개교 당시부터 강의실과 캠퍼스를 없앴다. 학생들은 대학 4년 동안 세계 7개국(미국→한국→인도→독일→아르헨티나→영국→대만)의 호텔을 기숙사 삼아 돌아다니면서 각국 문화와 생활방식을 배우는 '글로벌 로테이션'을 수행한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 원격 강의다. 미네르바스쿨은 이같은 파격적인 커리큘럼 때문에 '대학계의 스타트업' '캠퍼스없는 혁신대학'으로 불린다.

미네르바스쿨이 코로나 시대 대학 교육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수 있을까. 특히 실험이 필요한 이공계 대학에선 미네르바스쿨의 교육방식이 가능할까. 중앙일보가 이 학교의 설립자 벤 넬슨과 e메일로 단독 인터뷰했다.

지난 학기, 코로나19로 수업에 지장은 없었나. 
"미네르바 학생들은 코로나19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코로나가 심했던 일부 국가에서의 글로벌 로테이션은 한달 일찍 마쳤다. 국별 방역조치에 따라 학생들이 각기 국적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했기 때문이다. 원격 포럼 형태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대만 학생들이 차이잉원 총통과 오프라인 포럼을 열고, 다른 나라에 있는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함께 참여해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앞으로 이 같은 온-오프라인 포럼을 확대할 계획이다."
원격 수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한국에선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다.
"'수업의 녹화본'을 재생하는 인강과는 전혀 다르다. 미네르바의 수업은 최대 19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생방송 소규모 세미나라고 보면 된다. 10여명이 듣는 수업이 가장 많다. 미네르바 원격수업용 플랫폼에는 학습 효과를 높이고 학생의 수업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50여 가지 기능이 있다. 학생별로 수업 참여도가 정량적으로 기록돼 교수가 확인할 수 있다. 수업 중 그룹별 토론이 필요한 경우 랜덤으로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주고, 즉석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기능도 있다."
원격 수업에서 교수의 역할은 뭔가.
"미네르바의 학생들은 수업 전에 관련 자료를 읽고 미리 지식을 습득해온다. 그래서 수업 중에 교수가 지식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전체 수업 시간 중 교수의 발언 시간은 15%가 채 안된다. 교수는 수업 중에 학생들의 의견을 촉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플랫폼의 다양한 학습 기능을 활용해 참여도가 낮은 학생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토론의 방향을 심도 깊게 이끌어간다."
미네르바스쿨이 자체 개발한 원격교육 플랫폼 '포럼'. 원활한 수업이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학습 기능 50가지가 탑재돼 있다.[중앙포토]

미네르바스쿨이 자체 개발한 원격교육 플랫폼 '포럼'. 원활한 수업이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학습 기능 50가지가 탑재돼 있다.[중앙포토]

미네르바스쿨의 수업 방식을 실험이 필요한 이공계 대학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과학의 본질은 사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인데, 미네르바의 수업에서 이를 확실하게 가르칠 수 있다. 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과학의 프로세스를 적용해보면서, 과학적인 추론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미리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고 분석하게 한다. 수업 중에는 실생활과 관련된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법, 이것을 시각화, 맥락화, 해석하도록 가르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과학의 본질을 깨달아갈 수 있을 거다."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설립자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미네르바스쿨 제공]

벤 넬슨 미네르바스쿨 설립자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미네르바스쿨 제공]

미네르바스쿨은 지난해 5월 첫번째 학부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들은 어떤 진로를 택했나.  
"첫 졸업생 106명 중 94%가 정규직으로 취업하거나 하버드·케임브리지를 포함한 최고의 대학 석사·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이밖에 16% 정도는 구글·트위터·우버·레이저 같은 곳에 기술 부문에 취업했다. 졸업생들의 이같은 성과야말로 우리 사회가 미네르바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20~30년 뒤 미래 대학 교육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들려달라.  
"미네르바스쿨이 곧 미래 대학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대학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대해 좀더 냉철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일례로 대학이 "'비판적 사고'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면, 제대로 가르쳤는지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고 증명해야 한다. 만약 대학이 교육 효과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교육 당국은 자금 지원을 끊고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대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자유롭게 정하되, 스스로 정한 교육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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