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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죽음 목전에 둔 환자의 치료법 어떻게 선택 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3)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라고.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선택(Choice)의 연속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죽는 과정마저도 선택의 연속이다.[사진 pxhere]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라고.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선택(Choice)의 연속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죽는 과정마저도 선택의 연속이다.[사진 pxhere]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선택(Choice)의 연속이라고. 실로 그러하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죽는 과정마저도 선택의 연속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이를 테면 ‘약물치료는 안전하지만, 치료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수술을 받으면 치료될 가능성이 크지만 수술 도중에 사망할 위험이 크고요’, ‘치료에 성공해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커요. 치료를 안 하면 이대로 사망하게 될 거고요’ 등이다.

사람들 반응은 천양각색. 환자가 살아 온 발자취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환자가 생전에 가졌던 인생관과도 관련이 있다. 때론 남은 가족과의 관계성에서 결정되기도 하고, 간혹은 경제적인 부담이 그 모든 것을 짓눌러 버리기도 한다. 그런 선택에 몰렸을 때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망설임이다. 양갈래 길에 서서 하염없이 다른 길을 쳐다보는 것이다. 프로스트처럼.

어떤 사람은 요구사항이 확실하다. 식당 메뉴를 고르듯 이거 저거 해달라고 주문한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뛰어난 전문가에게 듣고 왔다며 특정 치료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환자의 주장이 강하면 다른 방법은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길도 있음을 경고해주는 선에서 그친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다.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굳이 넣어달라는 주문을 접했을 때의 요리사처럼. 눈앞의 의사를 조금 더 신뢰해준다면….

더 많은 부류는 쉬이 한길을 결정하지 못한다. 시간이나 많으면 좋으련만. 죽음을 목전에 둔 중환자는 지체할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우유부단한 태도는 양 갈래 길 중 어느 쪽도 들어서지 못하게 만들 뿐. 그러니 억지로라도 빨리 대답하라며 재촉하게 된다.

의사로서 선택을 종용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만약 당신(의사) 가족이라면 어느 길을 택했을 거냐는 물음. 언뜻 곤란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답은 의외로 쉽다. 워낙 많이 겪는 질문이라 대수롭지도 않다. 전제 조건을 붙여 대답하면 그만이니까.

“제 아버지라면 이렇게 할 겁니다. 저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당신의 인생관을 돌이켜 결정하라는 완곡한 대답법이다.

의사로서 선택을 종용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사진 pixabay]

의사로서 선택을 종용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사진 pixabay]

인간은 나약하다. 죽음이라는 낯선 상황을 겪게 되면 실수가 잦아진다. 갈등 끝에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다. 번복에 번복의 번복을 거듭한다. 하지만 종국에 도달하는 곳은 결국 모두가 똑같다. 후회다. 단호하게 결정해주지 못하는 의사가 미덥지 못하고, 그래서 사사건건 치료과정에 개입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환자가 나빠지면, 처음 결정은 결코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노라며 의사를 향해 원망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의사는 쉽사리 당신을 대신해 결정을 내려주려 하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의 삶에 타인이 개입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온전히 환자, 그리고 가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의사는 조언자일 뿐 결정의 주체가 되어선 안된다. 의사는 의학을 알 뿐 인생을 더 잘 아는 게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선택의 주체는 당신이고, 그에 대한 책임도 당신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선택이 어렵다면 어때야 할까? 이 자리를 빌려 천기를 살짝 누설하자면, 그럴 때는 살짝 담당 의사에게 “당신 판단을 믿습니다”라고 신뢰를 보여주길 추천해 본다. 그런 사람 앞에선 매정하게 말을 끊기 어렵더라. 나도 모르게 이렇게 조언하게 되더라. B와 D 사이에서 꼭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답을 고르는 게 힘들다면, 그 대신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들려줘 보라고.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려줘 보라고.

“나중에 단 하나의 아쉬움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쪽을 택하고 싶어요.”
“솔직히 형편이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들려주면, 환자에게 알맞은 선택을 대신 내려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이런 일을 매일같이 겪어 본 의사이기에, 경험을 통해 앞날을 충분히 그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당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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