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총격전 끝 24명 즉사·사형…실미도 50년, 총성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2020.08.24 05:00

업데이트 2020.09.10 16:31

1971년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실미도 부대원의 자폭 직후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71년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실미도 부대원의 자폭 직후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도심 총격전 끝에 공작원 자폭

 1971년 8월 23일 오후 2시 15분. 서울 대방동 삼거리에 난데없는 총성이 울렸다. 시민들은 혼비백산했고, 멈춰선 인천 시내버스와 바리케이드로 막아선 경찰은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정부가 철저히 비밀에 부쳤던 대북 침투 목적의 ‘실미도 부대’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인천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로 진입한 공작원 중 20명이 즉사했고, 생존 공작원 4명은 이듬해 3월 모두 사형당했다. 남·북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냉전 시대에, 총격전은 특수 범죄자의 난동으로 치부됐고, 실미도 부대는 그렇게 다시 역사 속에 묻혔다.

[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①50년 전 울린 총성의 진실은?

23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의 육군 11보급 대대에선 49년 전 숨진 공작원들의 위령제가 열렸다. 2013년부터 국방부 주최로 매년 열리던 위령제가 이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공식 행사는 생략한 채 유가족 10여명의 개별 참배만 진행됐다. 위령제에서 만난 고(故) 심보길 공작원의 아들은 “50년이 다 되도록 진상 규명이 끝나지 않았다"며 "유족들도 이제 지쳐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사형 집행 후 암매장된 고 임성빈 공작원의 여동생은 “오빠 시신을 아직도 못 찾아줘 너무 미안하다. 너무 보고 싶다"며 오열했다.

철저한 은폐로 50년간 다시 묻혀  

정부는 총격전 직후 ‘군 특수범의 난동 사건’으로 규정하고 '실미도 부대'를 철저히 은폐했다. 실미도 부대 관련 서류를 불태웠고, 생존 공작원 4명의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했다. 또 이 4명은 사형 선고 직후 시신은 암매장됐다.

실미도 부대는 2000년 전후 다시 역사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관계가 풀리고 민주화가 이뤄지고도 한참이 지난 후다. 여기저기서 진상규명 요구가 쏟아졌고, 마침 실미도를 다룬 소설과 영화로 세간에도 알려졌다. 특히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실미도’는 진실 규명의 불쏘시개가 됐다. 하지만 다소 허구가 섞인 탓에 유가족의 반발로 강우석 감독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국방부 조사로 실체적 진실 접근   

정부가 공식적으로 진실 규명에 착수한 건 2004년이다. 국방부가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처음 인정했다. 2005년에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고, 2006년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역사학계는 이 조사로 실체적 진실의 개요는 드러났다고 평가한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북한 ‘김신조 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응한 북한 침투 작전을 수행을 목표로 창설됐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주도로 공군이 민간인 31명을 특수목적으로 고용하는 형태였다. 훈련은 인권 유린 자체였다. 폭행과 실탄 위협 사격은 기본이고, 가족과의 서신이나 휴가가 허용되지 않은 감금 생활을 했다. 3년 4개월 동안 7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남북 간에 데탕트가 시작되자, 군은 공작원들을 방치한 채 처리에 골몰했다. 이들이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로 진입한 이유다.”(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유가족, 절규 속에 진실 규명 요구   

경기도 벽제동에서 23일 열린 실미도 부대원 합동 위령제에서 유가족이 부대원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김민중 기자

경기도 벽제동에서 23일 열린 실미도 부대원 합동 위령제에서 유가족이 부대원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김민중 기자

국방부의 조사는 진상 규명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수사권이 없어 일부 의혹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 사형된 공작원 4명의 암매장 장소도 찾아내지 못했다. 유족들에 대한 보상도 해결되지 않았다. 실미도 부대를 훈련시켰던 기간병들 또한 냉전 시대의 피해자지만 이들에 보상 방안도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1968년 1월 김신조 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 사건 직후 정부가 특수부대(실미도 부대)를 동원해 보복하는 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 옵션을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방치했다가 대형사고가 났고, 대형사고가 일어났으면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국가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데…. 냉전 시대에 개인의 인권을 유린한 채 국가는 무책임과 무능으로 일관했습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진실에 더 다가서기 위해 기획 보도 

중앙일보는 이번 주부터 ‘잃어버린 총성을 찾아서-실미도 50년’ 기획 기사로 실미도 사건을 다시 조명한다.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과거사조사위의 조사 보고서 전체 내용을 입수해 공작원 모집부터, 극한의 조건에서 인간병기로 키워진 혹독한 훈련, 기간병들과의 충돌, 공작원들의 반란과 탈출 등을 다룰 계획이다. 과거사조사위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던 김신조 목사나 공작원 사형 집행을 한 군 검사(현 변호사), 암매장 관계자 등을 추가 취재했다. 중앙일보는 본 기획을 통해 어두웠던 냉전 시기 인권을 유린당한 공작원 등의 한을 달래고 아직도 절규하는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 역사에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민중·심석용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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