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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분장, 욱일기랑 다를게 뭐냐" 또다른 오취리가 입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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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속 흑인들이 화난 사연,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밀실] <43화> #흑인 6명이 본 샘 오취리 논란

"오늘이 광복절 다음날이잖아요. 제가 오늘 욱일승천기 그려진 옷을 입고왔다면 역사적 맥락을 모르더라도 절 본 한국인들은 화가 나지 않겠어요?" (멜 왓킨슨)

"샘 오취리가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사과하지 말았어야 해요. (인종차별) 비판의 흔적들도 다 지운 거예요. 또 그가 물러서니 다른 사람들이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어려워졌고요." (브래넌 클리블랜드)

지난 16일 멜 왓킨슨(39)이 밀실팀과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상언기자

지난 16일 멜 왓킨슨(39)이 밀실팀과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상언기자

두 사람은 모두 흑인입니다. 우리 눈엔 이방인이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합니다. 멜 왓킨슨(39)과 브래넌 클리블랜드(29)는 서울에 온지 각각 7년째, 5년째입니다. 특히 왓킨슨은 단일 문화 국가였던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점차 변하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랬던 그들이 '이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을까요?

논란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경기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장에서 찍힌 사진인데요. 흑인 분장을 한 고등학생들이 이른바 '관짝소년단'으로 인기를 끈 아프리카 가나 장례식 문화를 패러디한 모습입니다. 얼굴을 검게 칠한 학생들의 사진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국내 누리꾼 대부분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죠.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29)가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한 비난이 일자 삭제한 뒤 사과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29)가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한 비난이 일자 삭제한 뒤 사과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하지만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29)는 지난 6일 소셜 미디어에 "문화를 따라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하나"라며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고 지적했죠. 그가 교육 문제도 언급하면서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6일 국내에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흑인 6명과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샘 오취리, 꼭 사과까지 해야 했을까

지난 16일 한국에 거주경험이 있거나 거주하고 있는 5명의 흑인과 함께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계방향으로 브라이언 윌리엄즈(40), 제시 벤튼(37), 브래넌 클리블랜드(29). 윤상언기자

지난 16일 한국에 거주경험이 있거나 거주하고 있는 5명의 흑인과 함께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계방향으로 브라이언 윌리엄즈(40), 제시 벤튼(37), 브래넌 클리블랜드(29). 윤상언기자

"샘 오취리가 인종차별을 지적한 뒤에 이를 사과해야 할 정도로 주변의 압력을 받았어요. 그걸 지켜보는 일도 비극이었죠."(브라이언 윌리엄즈)

논란이 거세지자 샘 오취리는 하루 만에 글을 삭제한 뒤 사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적힌 옷을 입고서요. 한국에서 6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브라이언 윌리엄즈(40)는 그의 행동을 보고 ‘비극적’이라 표현했죠.

밀실팀이 만난 6명의 흑인은 샘 오취리가 사과한 것에 공통적으로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사과로 끝날 게 아니라, 문화적 다름을 말로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건데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원어민 교사로 6년째 일하고 있는 메리 윌슨(40)은 "다른 문화 이해에 대해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고요. 클리블랜드는 “샘 오취리가 게시글을 지우면서 비판의 흔적이 없어졌고, 다른 사람들이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샘 오취리(29)가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비판한 것에 대해 비난이 일자 사과문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쳐

샘 오취리(29)가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비판한 것에 대해 비난이 일자 사과문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쳐

"인종차별 비판 자격 따지는 건 옳지 못해"

샘 오취리의 SNS에 달린 댓글들. 인스타그램 캡쳐

샘 오취리의 SNS에 달린 댓글들. 인스타그램 캡쳐

인종차별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샘 오취리를 비난하는 한 기사는 포털사이트 조회수 1위를 기록한 뒤 6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오취리가 '블랙페이스'(흑인 얼굴 분장)를 지적한 소셜 미디어 게시글엔 비난이 잇따랐습니다. ‘학생들의 얼굴에 모자이크하지 않았다’ ’본인도 방송에서 눈을 찢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특히 오취리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눈을 찢는 모습이 온라인으로 퍼지면서 '그가 인종차별을 지적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대개 양눈을 찢는 건 동양인을 비하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이에 대해 왓킨슨은 "눈 찢는 것과 블랙페이스, 둘 다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종차별에 비판할 자격을 따지는 건 옳지 못 하다"고 말했죠.

샘 오취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국 BBC홈페이지 캡쳐

샘 오취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국 BBC홈페이지 캡쳐

오취리는 13일(현지시간) 영국 BBC 인터뷰에서 "방송 퍼포먼스(눈 찢기)는 스페인의 못 생긴 얼굴 대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국인을 흉내내거나 비하하려는 목적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려 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이를 좋지 않게 받아들였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정부고 학생들을 일부러 지목해 비난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는 "학생들이 비하 목적으로 블랙페이스를 한 게 아니란 건 안다. 다만 많은 흑인들과 다문화 국가에서 이를 기피하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했다"며 "그런데 그 맥락이 생소해 많은 논쟁이 있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안타까워했죠.

흑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다해도 상처는 오롯이 그들의 몫입니다. 왓킨슨은 한국을 억압했던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비하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처음 졸업사진을 접했을 때 솔직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내 문화도, 내 과거도 아니지만 욱일승천기가 박힌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라며 “비하할 의도가 아니었다해도 그 티셔츠를 본 한국인들은 상처받지 않겠냐”고 답했습니다. '역지사지'를 당부한거죠.

한국서 없어지지 않는 '흑인 희화화'

흑인들은 왜 이렇게 '블랙페이스'에 민감할까요. 욱일승천기처럼 역사적 맥락을 봐야 합니다. 블랙페이스는 노예제가 살아있던 시절 백인 배우들이 흑인 흉내를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한 분장에서 유래했습니다. 흑인의 두터운 입술을 강조하기 위해 입술을 과장해 표현하기도 했죠. 차별과 조롱의 상징이 된 겁니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인종차별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금기시됐죠.

하지만 흑인을 잘 '모르는' 한국에선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윌슨은 "한국에 들어와서 아직도 코미디 무대나 미디어에서 블랙페이스를 종종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피부와 머리는 농담거리도, 개그소재도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미 서구 사회에선 블랙페이스가 곧 인종차별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차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피부가 하얗게 되는 선크림 발라라?

의정부고 고등학생들의 졸업사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에 인종차별논란에 휩싸였다. 출처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페이스북 페이지

의정부고 고등학생들의 졸업사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에 인종차별논란에 휩싸였다. 출처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페이스북 페이지

"한국도 인종차별이 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흑인에 관한 인종차별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느껴요. 무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지치죠. 순간순간 의도적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브라이언 윌리엄즈)

국내 인종차별은 무한히 반복돼 왔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검둥이'로 불립니다. 강원도에서 영어강사로 근무 중인 제시 벤튼(37)은 "길거리에서 흑인이다, 흑형이다, 웬 검둥이냐 등의 인종을 지칭하는 단어를 정말 많이 들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호의처럼 보이는 차별도 있습니다. 왓킨슨은 피부가 하얗게 되는 선크림을 추천받기도 했는데요. 그는 "내 선크림을 바르는데도 한국인 동료가 본인의 선크림이 내 피부를 더 하얗게 만들어 더 아름다워질거라 꼭 쓰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더 하얘지는' 선크림 사용을 끈질기게 요구했다네요.

"혐오 표현, 의도 아닌 결과를 봐야"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시민과 외국인들이 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청계천 한빛광장까지 미국 백인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 2020.6.6/뉴스1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시민과 외국인들이 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청계천 한빛광장까지 미국 백인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 2020.6.6/뉴스1

밀실팀이 만난 6명의 흑인들은 ‘그럼에도 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일이 그냥 샘 오취리의 글과 '비난 댓글'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인종차별 논란을 계기로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재미로 한 거지 비하할 의도가 없어보인다.'

이번 블랙페이스 논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볼 순 없다고 말합니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어떤 행위가 인종차별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의도는 중요한게 아니"라며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야한다"고 설명했는데요.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인줄 몰랐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의식 개선을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샘 오취리의 소셜 미디어 글과 인종차별 논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최연수·윤상언·박건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백경민·이지수·정유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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