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파트는 중개 안 해요…취향 우선의 독특한 부동산 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2020.08.23 09:03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MBC)’를 보면 어디서 저렇게 다채로운 집들만 모아서 보여줄까 신기할 때가 있다. 여기 방송에 나올 법한 집들만 모아 소개하는 조금 특이한 부동산이 있다.

이 집에 살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투자 목적보다는 거주 목적에 초점을 맞춰 집을 소개하는 '별집 공인중개사 사무소'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전명희

이 집에 살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투자 목적보다는 거주 목적에 초점을 맞춰 집을 소개하는 '별집 공인중개사 사무소'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전명희

집을 고르는 즐거움을 더 많이 주겠다는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이하 별집)’ 얘기다. ‘일상을 반려동물과 함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 ‘혼자여도 수납공간은 많을수록 좋다’ 등 집을 소개하는 문구도 매력적이다. ‘OO평 매매 00억원’ ‘원룸 보증금1000/월세50’ 등 일반 부동산에서 흔히 보는 문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격, 면적, 집의 형태와 같은 조건은 물론이고 거주자 입장에서 느낄 만한 감각적인 장점들을 정성껏 소개하기 때문이다. 별집은 지역이 아닌 취향에 기반을 둔, 말하자면 중개사가 생각하는 좋은 집만 골라 소개하는 ‘큐레이션’ 부동산 중개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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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집은 얼마 전까지 ‘홈쑈핑 공인중개사사무소’로 불렸다. 홈페이지 상호명도 아직은 홈쑈핑이다. 서울 중구 만리동 사무실 생활을 정리하고 부동산 플랫폼으로서 보다 확장된 형태의 사업을 계획하기 위해 상호를 바꿨다.

별집은 1인 회사다. 공인중개사이자 대표인 전명희(38)씨가 매물을 찾고 사진을 찍고 소개 글을 올리고 손님을 맞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낸다. 전명희씨는 본래 건축학도였다. 설계에는 재능이 없지만 건축이 좋아 대학원에서 건설 경영 관리 분야도 공부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운명처럼 ‘도쿄R부동산(이하 R부동산)’을 만났다.

별집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전명희 대표. 건축학도였던 전 대표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집'을 중개하면서 어렵고 딱딱한 건축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유영준

별집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전명희 대표. 건축학도였던 전 대표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집'을 중개하면서 어렵고 딱딱한 건축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유영준

R부동산은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부동산 편집숍이다. 신축, 역세권, 풀옵션이 아니라 빈티지(오래된 곳), 개조 OK, 창고 느낌, 반려동물, 천장 높아요 등 부동산을 발굴하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내세운다. 실제로 전명희 대표는 R부동산의 사례를 접하고 비슷한 형태의 중개소를 꿈꿨다고 한다. 도쿄로 직접 찾아가 R부동산의 하야시아쓰미 대표를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일단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업계에 들어가 일해보라'는 말에 약 10개월을 공부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업계에서 2년간 일했다.

전 대표는 기존 시스템에서 소개되는 부동산 매물의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평형이나 구조가 엇비슷한 아파트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집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나 주변 환경 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자·자산 개념으로만 접근하는 기존 부동산 시스템이 아쉬웠다. 전 대표는 “투자 목적의 집과 거주 목적의 집은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거주 목적의 집을 찾는 분들에게 더 적합한 집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테이블과 수납장을 맞춤 제작해 많은 양의 책을 정리할 수 있는 집을 '책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추천했던 사례. 사진 전명희

테이블과 수납장을 맞춤 제작해 많은 양의 책을 정리할 수 있는 집을 '책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추천했던 사례. 사진 전명희

별집은 해당 집에서 살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그곳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지, 어떤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지 등을 우선 고려한다. 그러다 보니 기존 부동산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가 아닌, 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주택을 위주로 소개하게 됐다. 이는 전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조건과도 맞아떨어진다. 건축가가 지은 집은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수익보다 삶의 질을 우선으로 고려한 집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단열, 방음, 설비 등 집의 품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왕이면 거주자의 성향에 맞는 집을 소개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한 예로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집 ‘메이데이’는 출판사 대표가 건축주로 4층에 거주하며 1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2, 3층을 임대로 내놓은 사례다. 문화, 환경,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은 임차인에게 어울릴 것 같아 그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했고 적임자인 임차인을 들였다.

'계단을 오르고 사다리를 타는 재미있는 집'으로 소개했던 매물. 사진 전명희

'계단을 오르고 사다리를 타는 재미있는 집'으로 소개했던 매물. 사진 전명희

당연히 좋은 매물 확보가 경쟁력이다. 전 대표는 건축가들이 요즘 어떤 작업을 하는지 건축사 홈페이지를 일일이 돌며 조사한다. 멋진 주택 건물을 SNS에서 보고 주소가 없으면 주변 상가 이름을 검색해 소유자를 수소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견한 보석 같은 매물을 직접 방문해 철저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소개한다. 전 대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나 복잡한 도면보다는 숨겨진 매력과 즐거움을 포착해 딱딱하지 않게 소개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단점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매물 사진을 찍을 때도 왜곡이 있을 수 있는 광각렌즈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별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는 이들은 25~35세의 1인 혹은 2인 가구다. 전 대표는 “건축 업계나 디자인 업계 종사자들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 여성보다 남성분들이 많이 찾아와 의외였다”고 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방문 예약을 하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별집의 매물을 보고 다양한 매력에 감탄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은 같은 집이어도 층이나 향에 따라 모두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집을 보러 온 분들이 공간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때 저 역시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전명희 대표가 기획하고 출간한 공상 부동산 만화. 독특한 콘셉트의 부동산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했다. 사진 전명희

전명희 대표가 기획하고 출간한 공상 부동산 만화. 독특한 콘셉트의 부동산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간했다. 사진 전명희

매물 수가 많지 않고 1인이 운영하다 보니 누적 중개 사례는 아직까지 수십 건 정도다. 지금은 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임대 주택만 소개하지만, 앞으로는 오래된 주택이나 개조할 수 있는 집 등 보다 다양한 매물을 올릴 계획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확장할 계획도 있다. 전 대표는 “별집 웹사이트가 집과 관련된 사람들의 거점 공간이 됐으면 한다”면서 “좋은 집을 중심으로 건축가와 예비 건축주, 임대인과 임차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고 싶다”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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