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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머리에 화살 3개 박고도, 40대 남성 감옥 안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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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방문한 전북 군산시의 한 동물 쉼터엔 10여 마리의 고양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거의 모든 고양이가 처음 방문한 기자에게 가까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애니띵]동물학대 솜방망이 처벌

그런데 흰색 고양이 한 마리는 의자 밑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잔뜩 움츠러든 이 고양이의 이름은 '모시'. 좀처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 모시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사람이 쏜 화살에 맞은 '모시'의 이야기, 영상으로 살펴보세요. (※영상은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시기에 촬영했습니다)

사냥용 화살 쏜 범인, 넉 달 만에 붙잡았지만…

지난달 23일 전북 군산시의 한 동물 쉼터에 쉬고 있는 고양이 모시. 감염의 여파로 왼쪽 눈을 잃었다. 구조 이후 동물보호단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을 회복했다. 남궁민 기자

지난달 23일 전북 군산시의 한 동물 쉼터에 쉬고 있는 고양이 모시. 감염의 여파로 왼쪽 눈을 잃었다. 구조 이후 동물보호단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을 회복했다. 남궁민 기자

지난해 여름, 군산 시내엔 '머리에 못이 박힌 고양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곧이어 각종 소셜미디어에 머리에 뾰족한 못이 솟은 모시의 사진이 올라왔다.

안타깝게 여긴 '군산 길고양이 돌보미' 회원들이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모시를 구조하는 데 약 한 달이 걸렸다.

구조에 성공한 회원들은 모시의 머리를 뚫고 나온 물체의 정체를 깨닫고 경악했다. 예상과 달리 못이 아니라 사람이 쏜 사냥용 화살이었기 때문이다. 버팔로나 멧돼지 같은 큰 짐승을 잡는 데 주로 쓰는 화살이다.

무더운 날씨에 날이 3개나 달린 화살을 머리에 맞은 채 거리를 헤매고 다닌 모시의 모습은 참혹했다. 감염된 왼쪽 눈은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구조 직후 촬영한 모시 머리 엑스레이 사진(왼쪽)과 머리에 박혀있던 사냥용 화살촉. 아래턱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에 부딪힌 뒤 부러진 채 머리에 박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메디컬센터 제공]

구조 직후 촬영한 모시 머리 엑스레이 사진(왼쪽)과 머리에 박혀있던 사냥용 화살촉. 아래턱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에 부딪힌 뒤 부러진 채 머리에 박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메디컬센터 제공]

진료를 담당했던 송정은 광주메디컬센터 원장은 "처음 본 순간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며 "화살촉이 두개골에 부딪히고 살짝 빗겨 나간 덕분에 다행히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모시에게 화살을 쏜 범인을 잡아 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냈다. 수사에 나선 경찰관들은 동네에 잠복하는 한편 사냥용 화살촉의 구매 경로를 쫓았다.

넉달 간의 추적 끝에 붙잡힌 범인은 45세 남성 A씨. A씨는 모시가 집 주변에 접근하는 걸 내쫓기 위해 화살을 쐈다고 진술했다.

A씨에게 검찰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A씨는 지난 6월 1일 1심 판결 결과 실형을 피할 수 있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법원 "초범인 점 감안…집행유예"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법원의 판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모시를 구조한 차은영 군산 길고양이 돌보미 대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런 위험한 물건으로 동물을 쐈는데도 실형을 면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면서 "힘들게 붙잡고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학대를 막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A씨가 실형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거지 마당에서 길고양이에게 화살촉을 쏴 상처를 입혔다는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범행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며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잔인한 살해에도…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실형은 3건뿐

지난해 8월 5일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 주변에서 덫에 걸린 채 발견된 고양이. 누군가 놓아 둔 쥐덫에 앞발이 잘리는 부상을 입었다. [동물보호 동아리 '한동냥' 제공]

지난해 8월 5일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 주변에서 덫에 걸린 채 발견된 고양이. 누군가 놓아 둔 쥐덫에 앞발이 잘리는 부상을 입었다. [동물보호 동아리 '한동냥' 제공]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2619명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4건에 불과하다. 김동훈 변호사(법률사무소 로베리)는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면서 "그나마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건에는 처벌이 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실형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주인의 유무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주인이 있는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겐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동물을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 모시처럼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 야생동물을 학대할 경우에는 재물손괴죄보다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나마 내년 3월 개정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면 형량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된다.

하지만 외국의 처벌 수위에 여전히 못 미친다는 게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이다 미국은 동물학대범에게 최고 징역 7년을 선고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올해 최고 형량을 1년에서 5년으로 대폭 높였다.

 지난달 말 부산광역시 금정구 일대에서 벌어진 고양이 학대 사건 목격자를 찾는 전단.

지난달 말 부산광역시 금정구 일대에서 벌어진 고양이 학대 사건 목격자를 찾는 전단.

범죄 전문가들은 동물 범죄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염건령 한국범죄학연구소장은 "동물 학대 범죄를 통제하지 못하면 범인이 여성이나 아이 등 사람을 노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수사기관과 사법부도 동물 학대 범죄에 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영상=왕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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