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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서다 para+떨어진다 chute…정치 망치는 낙하산 부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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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호 14면

콩글리시 인문학

낙하산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뛰어 내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1470년대 어떤 이탈리아인이 그린 낙하산 도안이 발견됐다.

‘parachute appointments’는 #보은인사·정실인사와 동의어

1485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보다 정교한 낙하산 설계도를 그렸다. 이후 30년이 지나서는 파우스토 베란찌오가 다빈치의 설계를 바탕으로 천으로 만든 돛 모양의 지붕을 달아 실험했다. 이를 ‘비행인간(Flying Man)’이라고 명명했으나 공인 받지 못했다.

낙하산

낙하산

세계 최초로 낙하산 실험에 성공한 사람은 1783년 프랑스의 루이-세바스티앙 르노르망이었다. 낙하산은 이후 기술 발달에 힘입어 비행기가 사람과 식품, 장비, 폭탄을 지상으로 투하하는 군사작전에 널리 활용됐다. 르노르망은 고층 건물 화재 때 사람들이 쉽게 탈출하는 데 이 기구가 사용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스어로 ‘~에 맞서다’라는 뜻을 가진 ‘para’와 프랑스어로 ‘떨어진다’는 의미인 ‘chute’를 합쳐 영어 ‘parachute’가 됐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은 조종사들의 안전 탈출을 위한 필수품이 됐다. 2차대전 때는 낙하산 부대가 처음 등장해서 특정 지역을 점령하는 등 전투력을 높였다.

이 낙하산 부대가 우리 정치를 망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탕평인사과 국민통합 그리고 여야 협치를 내세웠지만 모두 허언(虛言)이었다. “저는 대선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자는 고위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또 선거법 위반, 음주운전, 그 밖에 범죄나 비리를 비롯한 중대 비리자들을 고위 공직 임용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이 정의로운 사회와 깨끗한 공직문화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년이 지나도록 대통령의 이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다는 말은 이제 세간의 조롱거리가 됐다.

근래 청와대 비서실 일부 개편 역시 회전문 인사, 짜맞추기 인사,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그대로 남고 옆방 사람들만 유탄을 맞았다. 좌파 정부의 낙하산 인사(parachute appointments)는 이제 일상사가 됐다. 전문성보다는 선거운동을 도왔느냐, 우리편이냐에 따라 요직을 맡는 경우 낙하산 인사라고 한다. 대통령 등 고위층에서 낙점해 내려 보낸다는 의미다. 윤석열을 고립시킨 검찰 간부 인사를 보면 특정 지역 출신에다 정권에 충성하는 이른바 ‘애완용 검사’들이 빅4를 독차지했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18개 싹쓸이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영자신문이 쓰고 있는 콩글리시 ‘parachute appointments’는 보은인사, 정실인사와 동의어다. 영어권에서는 ‘the spoils system’이라 부른다. 선거에 이기고 나서 자기 정당 지지자들에게 공직을 나누어 주는 행위(the practice of a successful political party of giving public office to its supporters)다. 행정용어로는 엽관제(獵官制)라고 한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안치환의 노래 그대로다. 영어 spoil은 명사로 ‘전리품’을 뜻하지만 동사로는 ‘망친다’는 의미다. 엽관제가 나라를 망친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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