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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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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만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지 않았다면. 그 세상 풍경은 어땠을까. (스포츠로 한정해 보자.) 경기장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야구장은 삼삼오오 어울려 ‘치맥’과 경기를 즐기는 응원 인파로 가득했을 거다. 포스트시즌 진출팀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을 시점이다. 좀 더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막판 순위 싸움이 한창일 거다. 가을야구 희망을 접은 팀에서는 책임 공방이 불거졌을 거다. 축구장으로 가볼까. 골문 뒤에 운집한 서포터스가 응원 구호를 토해내고 있을 거다. 강등권 팀에게는 그 목소리가 응원이 아닌 압박일 거다. 그 팀들은 리그 잔류를 위한 생존 경쟁으로 늦여름 날씨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다.

2020년이기에 이런 풍경도 볼 수 있었을 거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 아시아 최종예선(원래 1차전이 9월 3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한창 고조될 때다. 아시아 2차예선에서 보였던 경기력에 따라서는 파울루 벤투 감독 경질 가능성이 제기됐을 수도 있다. 내국인이 사령탑을 맡을 때도 됐다는 주장과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을 거다. 감독뿐 아니라 귀화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수 있다. 순혈주의를 접을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을 거다. 태극마크를 위해 기꺼이 귀화하겠다는 외국인 선수가 K리그에 줄을 섰으니 말이다.

3월 도쿄올림픽 성화 채화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3월 도쿄올림픽 성화 채화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7월 24일 개막한 2020년 도쿄올림픽은 8월 9일 폐막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과 한·일 정상 간 만남을 둘러싸고 외교전이 뜨거웠을 거다. 대회 기간 후쿠시마에서 열린 일부 종목 출전 선수의 안전 문제가 국제 이슈로 떠올랐을 거다. 한·일 양국의 감정싸움은 맞대결마다 고조됐을 거다. 이 과정에서 편파판정 논란과 친일 논란이 끊이지 않았을 거다. 대회는 끝나도, (말로는 성적 지상주의를 배격한다면서) 한국의 메달 수에 따른 후폭풍이 거셌을 거다. 축제 분위기이거나, ‘인민재판’ 중이거나. 그 와중에 방송사 예능은 메달리스트 모시기에 한창일 거다. 사흘 뒤 개막(원래 개막일이 8월 24일)인 도쿄패럴림픽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을 거다.

축제 분위기라고 해도 육상, 수영 같은 기초 종목은 틀림없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을 거다. 개최국 이점까지 누린 일본이 기초 종목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을 거다. 그런 일본과 비교할 수밖에 없으니, 비판 수위도 ‘역대급’이었을 거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9년 만에,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1년 만에 소환됐을 거다. 쏟아부은 돈 얘기가 나왔을 거다. 비난의 화살은 수영 선수 출신 주무 차관한테 향했을 거다. 가보지 않았던 현재인데, 눈앞의 일처럼 생생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