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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홀로 투숙한 외딴 건물서 찬송가 부른 까닭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49)

’순례자 중에 영성의 길로 걸으려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더라.“ [사진 박재희]

’순례자 중에 영성의 길로 걸으려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더라.“ [사진 박재희]

“동시에 던지자. 그림은 영성길, 숫자가 나오면 정통루트야.”
폰테베드라(Pontevedra)를 벗어나면 한 번 더 갈림길을 만난다. 정통 까미노로 갈 수도 있지만 스피리추얼 웨이(Spiritual Way)라 불리는 영성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 이름 자체가 의미하듯 영성의 길은 유서 깊은 마을을 지나며 정신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정통 까미노를 걷는 것이 더 낫다 싶다가도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는 길이라니 마음이 끌려 그야말로 갈팡질팡이다.

“순례자 중에 영성의 길로 걸으려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더라.” “영성의 길에는 개울과 습지가 많대. 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올 때는 길이 없어져서 위험하다는 얘기도 들었어.”

똑같은 고민에 빠진 리디아와 함께 궁리하면서 챙겨온 점심을 다 먹은 후에도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사과를 나눠 먹고 배낭에서 캐러멜까지 다 꺼내 먹으며 오락가락을 반복하다가 리디아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겠다며 일어섰다.

“마음이 완전히 반반이라 결정할 수 없을 때 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안 날 때, 동전에 맡기는 거지. 한 번도 안 해봤어?”

이런 식으로 결정한 적은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골똘히 생각하면 마음이 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눈곱만큼이라도 더 마음을 끄는 길로 걷겠다고 계속 궁리했건만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도저히 결론이 나질 않았다. 평생 처음 리디아가 제안한 대로 동전을 던지기로 했다. 휘익~ 1유로 동전을 머리 위로 던져 올라갔다 떨어지는 것을 두 손으로 잡아 왼쪽 손바닥을 폈다. 나는 숫자, 리디아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나왔다.

리디아와 헤어져 걷는 첫 구간은 밋밋했다. 잠깐이지만 동전 던지기로 숫자가 나온 것을 원망하려는 찰나 이끼향이 흘러다니는 깊숙한 숲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포르투갈 까미노 루트에서는 대체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프랑스 루트로 걸을 때 많은 순례자와 섞이지 않고 혼자 걷고 싶어서 별의별 노력을 기울였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얼마나 혼자 숲을 걸었을까? 나무 사이로 바람이 흐르다 가라앉는 소리마저 울리는 숲, 나무 잔가지가 떨어지고 작은 들꽃이 흔들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폭신한 이끼를 밟는 발소리가 작은 메아리를 만들었다. 고요한 숲이 불현듯 두려워졌을 때였는데 마치 적혀있는 글자를 읽는 것처럼, 누군가 주관식 문제지를 건넨 것처럼 건조한 의문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왜 이 길을 걷습니까?’
‘까미노에서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찾습니까?’

몇 년 전, 처음 산티아고를 걸을 때 대답을 얻고 싶어서 유치할 만큼 집중했던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지난 한달이 넘는 동안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없었는데 오늘 마치 준비된 답이 있던 것처럼, 예상 질문지에 답을 써 내려 가는 것처럼, 내 안에서 즉각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걷는 행위가 나를 기쁘게 하므로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 것 자체, 그것 말고 다른 이유나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

떠오른 질문에 혼자 답을 해놓고 스스로 조금은 멋지고 기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울을 보고 혼자 뿌듯해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 순간 그랬다. 사실 이런 순간은 까미노에서 종종 찾아온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산티아고를 걸은 많은 사람이 왜 또다시 그 길을 찾아 걸으며 사서 고생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꼬질꼬질한 반노숙자로 여행하고 싶어할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순간 때문이기도 하다. 전적으로,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완전하게 영원히 다시 없을 지금을 생생하게 느끼며 존재하는 순간. 걷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 것 자체, 그것 말고 다른 이유나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 [사진 박재희]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 것 자체, 그것 말고 다른 이유나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 [사진 박재희]

깔데스 데 레이(Caldes de Reis)까지 가지 못하고 브리알로스(Briallos)에서 멈췄다. 겨우 16㎞ 남짓 걸었을 뿐이지만 출발이 늦어 저녁 시간이었고 배가 고팠다. 일단 숙소에 들어왔지만 역시 와이파이가 안되고, 저녁도 먹을 방법이 없는 외딴곳이다. 순례자 등록을 하는 곳이 잠겨있다. 한참을 기웃거렸는데 교대로 봉사한다는 호스피탈레로가 나타났다.

“오늘 혼자 주무시겠군요.”

마을과는 떨어진 곳에 신축 학교 건물처럼 생긴 곳이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내가 사용할 침대 위치를 알려준 후 봉사자는 사무실을 닫고 가버렸다. 리디아와 헤어진 후 종일 혼자 걸었는데 숙소에서 마저 혼자라니. 괜찮다고,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는 신식 건물이라 좋다고 아무리 혼자 되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가 건물을 울리면서 공포영화 효과음처럼 들린다. 샤워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해가 졌다.

마을과는 떨어진 곳에 신축 학교 건물처럼 생긴 곳이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내가 사용할 침대 위치를 알려준 후 봉사자는 사무실을 닫고 가버렸다. [사진 박재희]

마을과는 떨어진 곳에 신축 학교 건물처럼 생긴 곳이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내가 사용할 침대 위치를 알려준 후 봉사자는 사무실을 닫고 가버렸다. [사진 박재희]

‘지금 21세기에 귀신이라니 생각해도 너무 유치하다 야’하고 혼잣말을 해봤는데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무섭다.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고 일기장을 펼쳐 뭐라도 써보려 했는데 자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리 없이 공간이동을 하는 교복 입은 여학생’.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데 괴상한 건물 소음이 끼어들었다.

볼륨을 높여도 이상한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쿵쿵,덜그럭,다다닥,쿵’. 분명히 이 건물엔 나 혼자인데 대체 누가 이런 소리를 내는지 간헐적으로 나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성당에도 나가지 않는 날라리 신자가  가끔 지하철에서 들었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애애 주우우를 가아까아이 하아려 하암은….’ 위기의 순간마다 이 찬송을 부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침낭을 뒤집어쓰고 신음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것을 반복하는데 드디어 그 다리 없는 교복이 다가와 내 어깨 근처를 잡았다. 아니 잡은 것 같았다. “꺄아아아악.” (계속)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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