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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사회주의 혁명이냐, 아파트 건축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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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100년 전에 던진 도발적 명제다. 한국의 부동산 난리가 2017년 3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본 그의 전시회를 기억에서 끌어냈다.

“아파트 대량 공급이 혁명 막는다” #백년 전 경고, 오늘의 한국에 유효 #내 집 있어도, 없어도 불안한 시대 #욕망을 금지하면 저항으로 맞선다

‘집=기계’란 명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택난에 처한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불만을 분출하려던 1920년대 초에 나왔다. 그는 “건축이냐 혁명이냐”(Architecture ou Révolution)라고 묻고 ‘기계’를 대량 공급하면 “혁명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 주거 통일)이라는 공동주택을 건축했다. 337가구가 동일한 구조에서 사는 12층짜리 건물이었다. 이 기계 모델이 유럽으로 퍼졌고 세계 최초의 아파트이자 현대식 아파트의 전형이 됐다고 전시회는 기록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아파트 혁명이 실현된 곳이 서울이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이 무르익던 서울은 블랙홀이었다. 개천의 용을 꿈꾸는 지방사람들을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인구 폭증으로 주거 문제가 악화했다. ‘지방민의 서울 이주 허가제’가 대두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파트를 보급해 돌파하고자 했다. 1964년 6층짜리 10개 동으로 완공된 마포아파트는 르 코르뷔지에 모델에 입각한 국내 최초의 단지 아파트였다.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전상인) 박정희는 마포아파트를 “혁명 한국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건너온 아파트는 ‘삶의 기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2000만 가구 중 절반(1001만 가구)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위니테다비타시옹.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 홈페이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위니테다비타시옹.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은 자신 있다”며 집값과 전쟁 중이다. 정부·여당도 지난 3년 반 동안 뭘 하다가 이제서야 호들갑을 떨며 ‘아파트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호언장담한다. 세금을 때려 집값을 잡고, 사는 집마저 처분하게 밀어붙일 테니 폭락할 때를 기다렸다 사라고 유혹한다. 청와대 인사의 말처럼 “집값, 수해 나면 신선식품값 폭등하는 것과 비슷”한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까.

대한민국 아파트 시장에서 큰 폭의 하락기는 딱 두 번이었다. 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다. 당시 부동산값이 급락하자 ‘강남 신화 추락’ ‘일본식 버블 붕괴’라는 분석과 함께 “아파트는 끝났다”는 전망이 팽배했다. 다 알다시피 폭락론과 거품론을 믿었던 사람만 어리석었다.

‘주거 정의’라는 번드레한 말에 현혹당하지 마시라. 노영민 비서실장이 똘똘한 한 채를 챙기려다 비난을 샀고,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공직 대신 20억대 아파트를 사수했으며, 고위공직자 중 약 40%가 강남 노른자 땅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는 뭔가 의미한다. 고관대작이 다들 ‘서울 아파트 불패’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속물이라고 욕할지언정 이게 우리가 사는 아파트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다.

"어디에 사세요?” 이 평범한 질문은 한 사람의 계급, 교육, 경제력 수준을 꿰뚫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 데다 인구까지 감소하면 집이 남아돌 거라는 얘기는 다 허구다. 아파트·단독주택·빌라·다세대·반지하 어디라도 잠잘 곳만 있으면 만족하던 시절은 지났다. 서울, 특히 강남처럼 교통·교육·상권·환경을 두루 갖춘 ‘아파트 유토피아’에 진입하려는 원초적 욕망과 수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국 도시에 강남에 맞먹는 입지와 위상을 가진 다양한 모양의 명품 아파트를 짓는 게 정권의 진짜 할 일이다. 그것도 넘쳐나도록 과잉 공급해야 집값도 잡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천박하다’는 콘크리트 아파트 공화국이 훗날 위니테 다비타시옹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지 누가 알겠나.

집 부족이 혁명을 부를 뻔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56%의 집값 폭등에다 민주화 항쟁 이후 높아진 사회주의적 의식이 결합된 민심 이반에 직면했다. 당시 문희갑 경제수석은 “주택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신도시 분당· 일산·중동·평촌·산본 등 전국에 200만호가 그렇게 탄생했다.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 아파트가 혁명을 잡았다.

요즘 험악하다. 집이 있어도, 없어도 불만이다. 서민에게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 됐다. 전세 세입자는 월세 난민으로 떠돈다. 아파트 가진 중산층은 늘어난 세금에 집을 뺏길까 안절부절못한다. 임대사업자는 투기꾼으로 몰린다. ‘약탈국가’라는 분노가 팽배하다.

기성 체제에 저항했던 프랑스의 68혁명 구호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였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뇌관이다. 더 나은 집에서 살고픈 욕망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저항의 싹이 튼다. "나라가 네 것이냐”는 외침이 그것이다. 땜질 부동산 정책에 성난 민심이 코로나 사태와 적폐놀이 내로남불의 부조리라는 인화성 물질에 옮겨붙을까 걱정된다. 르 코르뷔지에의 경고는 오늘도 유효하다. 아파트 건축이냐, 사회주의 혁명이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