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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직격인터뷰

원조친노 유인태 "'소설 쓰시네' 기가찼다…추미애, 정권 큰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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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홍범 기자 중앙일보 기자

원조 친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던진 ‘여당 독주’ 프레임에 민주당이 말려들었다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던진 ‘여당 독주’ 프레임에 민주당이 말려들었다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

유인태(72) 전 국회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기용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2010년 무렵엔 문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설득한 인연도 있다. 그래서 유 전 총장은 현 여권에서 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원로로 꼽힌다. 원래 할 말은 하는 돌직구 스타일인 데다 지금은 현실 정치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진영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소설 쓰시네” 추 발언에 기가 막혀 #열혈지지층에 휘둘리면 미래없어 #협치 위해 상임위 11대 7 복원해야 #문, ‘여당 배신’ 트라우마 있는 듯

이미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청와대를 향해 “상당히 오만한 끼가 보인다”며 쓴소리를 던졌던 유 전 총장은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난조(亂調)에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는 최근 여권의 지지율 하락은 국회에서 민주당의 일방 독주가 큰 요인이라며 상임위원장을 야당에 배분할 것을 주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해선 “고압적인 모습이 정권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검찰 문제는 청와대가 개입해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19일 오전 국회 도서관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이 뭐라고 보나.
“많은 사람들 말대로 부동산 대책이 안 먹히는 게 큰 원인일 텐데 개인적으론 국회 원구성이 너무 여당 독점이었던 것도 문제였다고 본다. 여당이 조금 양보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게 결국 화를 불렀다는 건가.
“얘길 들어보니 미래통합당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타협할 생각도 있었다는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여당이 다 먹게 놔두라’고 했다더라. 여당이 독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야당에 유리하다고 계산한 것이다. 상대가 그런 전략으로 나오면 여당은 그걸 피하려고 해야지 얼씨구나 하고 다 받아먹으면 어쩌나. 1988년 이후에 한 당이 상임위원장을 다 가진 전례가 없다. 국민들에겐 오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던 유 전 총장은 추미애 장관 얘기도 꺼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추 장관에게 아들 휴가 특혜 문제를 질의했는데 사실대로 답변하면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사안이다. 그런데 거기에 장관이 ‘소설을 쓰시네’라고 하면 어떡하냐. 국회의원을 5선이나 했고 당 대표까지 했다는 사람이 소설 쓰신다고 하는 걸 보고 나도 기가 찼다. 나중에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사과할 기회까지 줬는데도 추 장관은 ‘할 말 없다’고 하더라. 이런저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지지율 하락을 가져온 것으로 봐야 한다.”

아수라장이 된 검찰 사태는 추 장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건가.
“애초에 법무부 장관은 합리적인 검찰 출신을 앉히는 게 좋았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대통령이 방치할 문제는 아니다.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서 시끄럽지 않게 수습을 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도 추 장관이 아주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 정권에 큰 부담을 줬다.”

유 전 총장은 최근의 검찰 논란을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와도 연결지었다.

“물러난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엄청 꼬장꼬장한 스타일이고, 문 대통령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민정수석은 정무적인 역할도 해야 하는 자리다. 만약에 민정수석이 유능한 검찰 출신이었으면(김조원 전 수석은 감사원 출신)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를 이런 식으로 꼬이게 만들지 않았을 거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청와대가 손 놓고 있으니 시중에서 대통령은 뭐 하는 거냐는 말이 나오지 않겠냐. 임명권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유 전 총장은 최근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정무수석에 4선 출신의 최재성 전 의원이 발탁된 것을 탐탁잖아 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이 정부에선 정무수석이 한병도만 빼고 전병헌·강기정·최재성 등 다 3~4선들이다. 사실 3~4선이나 한 사람들이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을 하는 건 별로 안 좋은 모양새다. 그런데 문 대통령에겐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에 일절 관여를 안 했다. 그러다 보니 정권 말에 친노가 폐족이 되면서 정동영 전 의원 등이 들고일어나 여당이 대통령 등에 칼을 꽂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그걸 다 봤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여당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유지하려다 보니 정무수석에 중진을 앉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이진 않는다.”

노무현 정부도 부동산 문제로 곤욕을 치렀는데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껄껄 웃으며) 부동산은 내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다만 내 느낌엔 시중에 돈이 워낙 많이 풀려서 집값 잡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솔직히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들이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해서 화를 더 자초한 게 아닐까 싶다.”
국회에서 여야 협력통치 구도를 만들려면 상임위원장 배분을 다시 논의해야 될까?
“그래야 한다. 원래 여당이 11개, 야당이 7개를 갖기로 한 것을 복원해야 한다. 제일 문제가 법사위원장 자리였는데 사실 전반기에 민주당, 후반기에 통합당이 갖는 것으로 협상했으면 된다. 그런데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후반기 원구성을 왜 전반기 원내대표가 하냐’며 틀어버렸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여당에 ‘독주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 전략이면 민주당은 더 인내하고 양보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쪼다’들이 후반기 위원장 하나 양보를 못 해서…쯧쯧. 다만 그동안 법사위가 월권 소지가 있다는 건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 사이에 말들이 많았으니 그런 건 고치면 된다.”
통합당은 김종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 뭔가 노선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반면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쇄신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소위 ‘문빠’들한테 문자폭탄이 날아오는데 열혈 지지층한테만 끌려다니면 당의 미래가 없다. 통합당도 황교안 대표가 태극기 부대에 끌려다니다가 총선 결과가 저렇게 된 거 아닌가. 이쪽이고 저쪽이고 너무 열혈 지지층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불안한 거다. 다만 민주당도 차기 지도부가 들어서면 조금 달라지지 않겠나 예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비교한다면.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까지 십수년간 여의도 정치 경험이 있었고 외향적인 스타일이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도 엄청나게 치열했다. 청와대에 가서도 수시로 사람들을 불러서 식사를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정치는 까마귀가 노는 동네라는 인식인 것 같다. 본인 성향도 내성적인 데다 정치권과의 접촉이 적다 보니 사람을 쓰는 폭이 좁다.”
문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오래됐는데 현 정부에서 따로 만난 적은.
“전화통화 한 번 없었다. 대통령 시정연설 하러 국회 왔을 때 내가 국회 사무총장이니까 공적인 자리에서 본 게 전부다. 2015년 말에 민주당에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다고 했을 때 나를 비롯한 중진들이 문재인 대표를 만나 ‘양보를 해서라도 안 의원 탈당을 막아야 한다’고 종용했는데 그게 문 대통령 입장에선 별로 아름답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웃음)”

유 전 총장은 정치권에서 대표적 개헌론자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부터 개헌 성사를 위해 보수진영과 꾸준히 접촉했다.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개헌 전망을 물었다.

“총선에서 국회 권력을 분산(연동형 비례대표제)하는 것과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건 함께 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권력 분산엔 찬성하지만 대통령 권력 분산은 찬성하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통합당은 대통령 권력 분산은 주장하면서 국회 권력 분산은 반대한다. 이래선 안 된다. 그 두 가지는 세트다. 현행 대통령제 하에선 정치가 국민을 더 분열시키고 갈등을 키우게 된다. 나라에 미래가 없다.”

민주당에서 이번 달에 이해찬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여권의 원로세대는 대부분 은퇴하는 셈이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가 있다면.
“예전에 내가 초선 시절(14대 국회)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따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결국 다른 곳의 예산을 자기가 끌어오는 건데 그게 공짜가 아니다. 정부가 정치인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국회의원이 정부 신세를 지면 정부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렵게 된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데 요즘 후배들이 자기가 예산 좀 더 땄다고 문자메시지로 홍보하는 걸 보면 서글프다.”

김정하 정치디렉터, 정리=김홍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