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직을 리얼리티쇼로" 오바마, 존칭생략한 채 트럼프 찔렀다

중앙일보

입력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미국 독립혁명박물관에서 한 연설에서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미국 독립혁명박물관에서 한 연설에서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이 전당대회 셋째 날인 19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55)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흑인이자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주요 정당 부통령 후보가 탄생하면서 미국 정치 역사를 새로 썼다.

민주당 전당대회 셋째 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 공식 지명 #오바마 "그들이 민주주의 빼앗게 하지 마라" #힐러리 "300만 표 이겨도 질 수 있어…" #4년 전 낙선 기억 소환 "압도적으로 이겨야"

전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데 이어 부통령도 지명되면서 올해 대선에서 민주당의 '티켓'의 주인공은 바이든과 해리스로 확정됐다. 이들은 76일 뒤인 1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팀에 도전하게 된다.

해리스 후보는 이날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 그는 “어머니는 내가 여러분 앞에 서서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면서 “미국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다”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AFP=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1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AFP=연합뉴스]

해리스는 이민자 부모를 둔 자신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내 어머니는 19세에 암을 정복하겠다는 꿈을 갖고 인도에서 UC버클리로 공부하러 왔고, 아버지는 자메이카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러 왔다. 두 분은 1960년대 민권 운동이 한창일 때 거리에서 정의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만나, 가장 미국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빠졌다.”

일각에서 그의 출생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피선거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 “키 152cm밖에 안 되는 25세 인도 여성(어머니)이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카이저 병원에서 나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해리스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대신 인종차별과 정의, 미국의 정상화를 주제로 담담히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인종주의에는 백신이 없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면서 “모두가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흑인과 백인, 라틴계와 아시안, 원주민까지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저격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전직이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삼가는 관례에 따라 그동안 비판을 자제해 온 오바마는 이날은 작심한 듯 날카로운 언어로 트럼프를 찔렀다.

그는 “후임자가 내 정책과 비전을 계속해서 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도널드 트럼프가 나라를 위해 진지하게 그 자리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존칭도 붙이지 않았다.

이어 “트럼프는 (대통령)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면서 "그럴 능력이 안 됐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실패로 미국인 17만 명이 죽고, 일자리 수백만개가 없어졌으며, 최악의 충동이 분출되고, 세계에서 자랑스러웠던 평판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전에 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자신이 갈망하는 관심을 얻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리얼리티쇼”로 취급한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더 나아가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는 “지금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정책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한다”면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시들다가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여러분의 힘을, 여러분의 민주주의를 빼앗게 하지 말라”고 말할 때는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바마는 이날 미국 민주주의의 산실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미국 독립혁명박물관을 무대로 택해 생중계로 연설했다.

오바마가 연설하는 도중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2016년 대선 때) 그(오바마)가 나의 캠프를 염탐했다. 그리고 발각됐다!"는 주장을 올렸다. 또 민주당 경선이 끝날 때까지 오바마가 바이든을 공개 지지하지 않은 점을 상기시키며 "매우 늦었다"고도 꼬집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9일 뉴욕주 자택에서 찬조연설을 했다. 그는 "300만 표를 이기고도 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지지자들에 투표를 독려했다. [AP=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9일 뉴욕주 자택에서 찬조연설을 했다. 그는 "300만 표를 이기고도 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지지자들에 투표를 독려했다. [AP=연합뉴스]

앞서 뉴욕주 자택에서 라이브로 연결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016년 낙선의 아픈 경험을 찬조 연설에서 언급했다.

“지난 4년 동안 사람들이 내게 와서 그(트럼프)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전부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투표할 걸 그랬다고 말한다. 이번 선거가 또다시 ‘이렇게 할 걸,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이랬어야 했는데(woulda, coulda, shoulda)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클린턴 전 장관은 “바이든과 해리스가 300만 표를 더 얻고도 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면서 "트럼프가 선거를 몰래 가져가거나 훔칠 수 없도록 압도적인 수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은 전국 득표수에선 트럼프에게 약 282만표 앞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경합주를 차지하면서 선거인단 수에서 74표 뒤져 낙선했다.

이날 찬조 연설자들은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이 얼마나 공감 능력과 품위가 있는 인물인지를 부각하는 데 공을 들였다. 오바마는 "출신 지역이나 세대가 달랐는데도 그를 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내가 내린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라며 "바이든은 회복능력, 공감 능력이 있고 늘 품위 있어 존경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기차로 왕복 4시간 통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잠들기 전 집에 와 동화책을 읽어줬던 싱글 대디"라고 소개했다.

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매사추세츠주 한 어린이집에서 워킹맘 시절의 고단했던 생활을 언급하며 보육시설 확충과 교사 급여 인상 등의 공약을 소개했다.

민주당은 이날 가정 폭력 생존자, 총기 사고 희생자 부모, 불법 이민자 자녀, 환경 운동가 등을 초대해 당의 정책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감이 떨어진 제조업체 사장, 옷 가게 주인, 식당업자, 농부가 등장해 트럼프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