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품에 안긴 ‘세한도’ 태평양전쟁 중 일본인에게서 찾아와

중앙일보

입력 2020.08.20 12:08

2020년 1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원래는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데 이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의 글이 붙어 총길이 10m 넘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020년 1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원래는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데 이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의 글이 붙어 총길이 10m 넘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91)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는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한 실학자로서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원래는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데 이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의 글이 붙어 총길이 10m 넘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다.

제주도 유배 중 추사가 그린 문인화의 걸작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쓰카 구입해 소장
1944년 서예가 손재형이 읍소 끝 넘겨받아
손세기·손창근 대 이어 소장하다 국가 기증

그림은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문화재청은 작품 설명에서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2020년 1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020년 1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선(藕船)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호(號)로 ‘우선시상’은 '이상적은 감상하게나'의 의미다. ‘완당’은 김정희의 또다른 호다. 추사는 그림을 이상적에게 선물하면서 끝부분에 직접 글을 썼다.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장을 찍었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인장으로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한도가 마침내 국가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1944년 일본인 소장가 후지쓰카 지카시로부터 '세한도'를 인수해온 서예가 손재형씨. [중앙포토]

1944년 일본인 소장가 후지쓰카 지카시로부터 '세한도'를 인수해온 서예가 손재형씨. [중앙포토]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이 그림은 제자 김병선에 넘어갔고 그의 아들 김준학이 물려받아 감상기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이후 민영휘 집안이 소유했다가 추사를 깊이 연구해온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1879~ 1948)가 경매를 통해 구매‧소장하게 됐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 서예가 손재형(1903~81)씨가 후지쓰카를 찾아가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으나 작품을 양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후지쓰카는 자신도 추사를 존경한다며 손씨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1944년 손씨는 두 달간 매일 후지쓰카에게 문안인사를 하며 거듭 청을 했고 후지쓰카는 결국 그해 12월 "세한도'를 간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손씨"라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45년 3월 후지쓰카의 도쿄 서재가 미군의 폭격을 받은 터라 자칫 잘못했으면 '세한도' 역시 재로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그 자신 서예가로 일가를 이뤘던 손재형씨는 이후 1971년 8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세한도를 비롯한 걸작 3점을 내놓게 된다. 이를 인수한 게 손창근씨의 부친이자 개성 출신의 실업가 손세기 선생이었다. 선친의 고서화 사랑을 물려받은 손씨는 2018년 컬렉션 304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도 ‘세한도’ 한 점만은 빼놓을 정도로 작품에 애착을 보였다. 그러다 올 초 “심사숙고끝에 내어놓았다”는 한마디와 함께 기증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74년 국보 180호에 지정됐던 세한도가 영원히 국민의 것이 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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