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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여자가 일하는데 왜 남편의 이해가 필요하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47)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아주 익숙해진 시대다. 페미니즘에 대해 네이버 사전에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라고 쓰여있다. ‘무슨 주의’라고 선언할 필요도 없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라는 가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면 그만이다. 여성학을 공부하고도 가정에서는 ‘고전적인 현모양처’로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페미니즘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이, 페미니스트다운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밖에서 외치지 않는다. 당연한 거니까.

그룹 활동을 하는 서른 중반의 여자 가수가 결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한 말이 내내 걸렸다. [사진 pixnio]

그룹 활동을 하는 서른 중반의 여자 가수가 결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한 말이 내내 걸렸다. [사진 pixnio]

최근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여성운동이 시작된 게 언제인데,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남자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 젊은 여자가 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까지 말이다.

그룹 활동을 하는 서른 중반의 여자 가수가 결혼을 발표했다.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한 말이 내내 걸렸다. “(남편 될 사람은)제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노래하는 일’에 대해서도 커다란 이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날이었으면, 적어도 2000년 이전이었으면 ‘참 이해심 많은 남자’이라고 칭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20년이고, 더군다나 일본은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가 아닌가!

불혹을 앞둔 사람이 자기가 해 온 일을 계속해 나가는 데 이제 결혼하는 남자의 이해가 왜 필요한가 말이다. 더군다나 예술을 하는 젊은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혼란스러웠다. 30대에 저런 말을 해? 언제까지 ‘남자의 이해를 구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을 것인가. 왜 일을 하는데 남편의 이해가 있어야 하고, 왜 이해하는 남자는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해? 나는 묻고 싶다. “남편은 당신의 이해를 받고 일을 계속하기로 했나요?”

나도 어렸을 때 신사임당을 보며 ‘현모양처’를 꿈꿨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밤낮으로 일하며 고생하는 어머니보다, 곱게 화장하고 집안일만 하면서 지내는 부잣집 여자가 행복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현모양처’라는 것은 바득바득 살아내는 여자가 아닌 우아하게 생활하는 여자라고 착각했었다. 내 어머니의 ‘노동’은 행복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 노동으로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공부시킬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겠지만, 안 할 수 있었으면 피하고 싶은 노동이었다. 나는 그 힘든 시기를 잘 살아낸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 또한 노동하며 살고 있다. 물론 ‘고생스러운 노동’을 장려할 마음은 없다. 누구나 행복하게 일하며 살길 바란다.

일본의 아침 와이드 쇼에서 만 18살이라는 여배우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이제 출근하는 사람을 위해 응원의 한마디 해달라고. 여배우는 애교스러운 얼굴로 ’맛있는 거 만들어 놓고 기다릴게. 빨리 와~“라고 말한다. [사진 pixabay]

일본의 아침 와이드 쇼에서 만 18살이라는 여배우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이제 출근하는 사람을 위해 응원의 한마디 해달라고. 여배우는 애교스러운 얼굴로 ’맛있는 거 만들어 놓고 기다릴게. 빨리 와~“라고 말한다. [사진 pixabay]

일본의 아침 와이드 쇼에서 만 18살이라는 여배우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이제 출근하는 사람을 위해 응원의 한마디 해달라고. 여배우는 애교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맛있는 거 만들어 놓고 기다릴게. 빨리 와.” 그걸 보고 있던 나는 말한다. “미치겠네. 너는 출근 안 하니? 너는 일 안 하니?” 여배우의 말의 배경에는 ‘대대손손 이어져 온 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2020년에도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 있는 설정이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테드 요호라는 공화당 의원이 딸 또래의 민주당 의원을 멸시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었다.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자기도 ‘두 딸이 있는 아빠’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더더욱 여자를 멸시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딸 또래의 의원은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스이다. 풀뿌리 선거 운동으로 거물 정치인을 제치고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는 말했다. 복수할 마음은 없다고. 대신 이런 말로 강펀치를 날렸다. “당신이 날 멸시한 것은 당신의 딸이 나처럼 남자에게 멸시를 받아도 된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이러한 문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는 선진국이라 해서 다를 게 없음을 보여준다. 여자를 멸시하는 남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남자 중심으로 살아가는 여자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은 남자의 부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부양하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도 아니다. 서로 자립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는 선진국이라 해서 다를 게 없음을 보여준다. [사진 needpix]

이러한 문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는 선진국이라 해서 다를 게 없음을 보여준다. [사진 needpix]

남자들이여,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것이 여성 존중이 아니다. 자동차 문 정도는 여자도 열 수 있다. 제발 근본적으로 존중하며 살자.

딸을 가진 남자들이여, 제발 딸이 멸시받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해 달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딸로 키우기 바란다. 독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결혼했다 해도 이혼할 수도 있고 사별할 수도 있다.

미래를 살아갈 여자들이여, 밥 차려놓고 기다릴 생각하지 말고, 같이 벌고 같이 요리하며, 서로의 인생을 잘 살아낼 궁리를 하자.

아들을 가진 여자들이여, 자기 생활 정도는 스스로 관리할 줄 아는 남자로 키우자. 평생 독신으로 살 수도 있고, 결혼했다 해도 같이 벌어야 하는 세상이다.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밥해 줄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로 키우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말자.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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