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거위의 털을 아프게 뽑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거위의 깃털은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가슴 솜털(구스 다운)은 패딩과 이불 솜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산 채로 털이 뽑히는 거위는 고통스럽다. 선진국은 윤리문제로 살아 있는 거위의 털을 뽑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아직도 거위를 산채로 일생에 여러 번 털을 뽑는 곳이 많다.

정책 실패와 증세로 국민 고통 커 #정치 논리로 세금과 규제 늘리면 #경제 왜곡과 성장 저하 초래 #난국 극복할 정책 대전환 필요

‘세금을 걷는 기술은 거위에게 고통을 덜 주면서 깃털을 최대한 뽑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루이 14세의 재무상 콜베르가 한 말로 박근혜 정부 때 경제수석이 인용했다가 논란이 됐다. 세제 개편을 설명하면서 중산층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이 연간 16만원 늘어나는데 이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로 말했다가 비판을 많이 받았다. 깃털이 뽑히는 거위 처지에서는 어쨌든 고통인데 고위 관료가 서민의 어려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와 여당은 증세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부동산 보유세, 양도세, 취득세, 금융투자 소득세 등이 줄줄이 오른다. 부유층과 자산가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부족한 세수를 채우고 정치적 부담은 최소한으로 하려는 심산이다. 마치 살찐 거위를 골라서 털을 많이 뽑으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마구잡이 증세로 경제 왜곡이 심화하고 모든 국민의 고통이 커질까 우려된다.

부유층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는 타당하다. 납세자의 고통이 다른 계층에 비해 덜하고 소득분배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누진세율 제도하에서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이미 상당하다. 한국의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상속세율은 일본 다음 두 번째로 높다. 공정한 소득분배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임이 틀림없지만, 한국경제의 1인당 총생산(GDP)은 OECD 37개국 중에 22위로 평균에 못 미친다. 분배 개선 못지않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계층과 기업에 대한 세율을 과도하게 높이면 이들의 근로의욕과 투자·기술혁신 유인을 낮추어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최악의 불경기에 세금이 한꺼번에 오르면 납세자가 더욱 힘들고 경제 왜곡도 커진다. ‘세금 평탄화(tax smoothing)’ 원칙에 따르면 세율을 여러 기에 걸쳐 평탄하게 해야 후생 손실이 적다. 부유층의 세금을 올리더라도, 경제 상황에 맞추어 몇 년에 걸쳐 예측할 수 있게 증세하는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최저임금 인상 때도 비슷한 잘못을 했다. 처음 2년간 16.4%, 10.9% 연속 올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고 일자리를 줄이더니 급브레이크를 밟아 인상률을 2.9%, 1.5%로 낮췄다. 애초부터 지난 정부들과 같이 매년 5~8%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게 올렸으면 부작용이 덜했을 것이다.

조세를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경제 왜곡이 심하다. 정부가 세금은 늘리면서도, 다수 유권자의 세 부담은 줄이려고 하다 보니 각종 세액 공제와 비과세 감면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중에 소득세를 내지 않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세금을 실제 내는 납세자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집값이 계속 올라 많은 무주택자가 어려움을 겪어도 정부는 정책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주택소유자, 임대인을 죄인 취급하고 중과세한다. 정부가 주택시장을 강력히 통제할수록 민간 공급은 더욱 줄고 집을 개량·보수하려 하지 않아 품질이 낮아진다.

정부와 여당이 지금은 살찐 거위를 주로 골라 털을 뽑지만, 다른 거위들도 털이 언제 뽑힐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정 적자가 많아져 국가채무와 미래 조세 부담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에 54조4000억원 적자였던 관리재정수지(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제외)는 올해는 상반기만도 110조5000억원 적자이다. 국회가 증세 이전에 정부 지출이 제대로 낭비 없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올해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 예측되고 실업자는 7월 기준으로 113만8000명으로 사상 최대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의 2차 확산과 세계 경제의 회복 둔화로 ‘L자형’ 장기 침체가 우려된다. 경기침체와 실업, 부동산 가격 상승의 고통은 서민과 중산층이 더 많이 부담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성장, 분배, 안정의 3대 경제 목표가 모두 나빠졌다. 총체적 경제 난국을 신중한 경제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정부와 청와대는 우리 경제는 괜찮다는 말만 하며 너무 낙관적이고 즉흥적으로 대처한다.

사육장에 갇혀 털이 뽑히면서 ‘언젠가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다’라고 노래하는 ‘거위의 꿈’이 슬프다. 많은 평범한 우리 국민이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재산을 모으고 중산층이 되었다. 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도 열심히 내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경제적 자유와 풍요를 누리려는 우리 모두의 꿈을 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에 맞는 효과가 입증된 경제정책으로 대전환을 해야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