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여론조사 결과 보다 설문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0.08.20 00:17

지면보기

종합 25면

민심이란 무엇인가 

생각의공화국 민심

생각의공화국 민심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어떤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모 대학 학장과 학생대표가 만났는데, 어느 순간 학생대표가 그만 학장에게 언성을 높이고 만 것이다. 큰 목소리가 문밖까지 새나가 다른 사람들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안건이 무엇이었는지, 누구 의견이 더 타당했는지, 전해 들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누군가를 가르치게끔 되어 있는 곳인 학교에서마저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식당에서 “먹으려 들지 마세요!”, 화장실에서 “오줌 누려 들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책 읽으려고 들지 마세요!”, 목욕탕에서 “씻지 마세요!”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근대적 지도 제작 필요성 때문에
이전에 없던 태국의 국경 그려넣어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기 보다
외부틀에 맞춰 상황 재단되기도

실로 ‘꼰대’를 싫어하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적 꼰대들도 꼰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혹은 꼰대로 간주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직에 있는 사람들도 ‘꼰대 성향 검사’ 같은 것을 해보곤 한다. 꼰대 성향 검사란 무엇인가. 꼰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꼰대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개발한 테스트라고 한다. 수십 개의 문항을 평소 생각대로 답변하고 나면, 테스트에 임한 사람의 꼰대 지수가 나오고 그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발급된다.

예컨대 붙임성이 있으면서 꼰대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는 ‘만취한 장비’ 캐릭터가 주어진다. 만취한 장비는 회식 자리 눈치 없는 부장님 캐릭터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기에, 혼자만의 취미를 즐기라는 처방을 받는다. 만취한 장비와 대비되는 캐릭터는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다.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가 강하기에 타인에게 자기 기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처방을 받는다. 망원동 나르시시스트 대처법은 “오, 그러시는구나” 같은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남발하는 것이다.

동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 꼰대 성향 검사에 몰두한 한편, 나는 이내 검사를 포기하였다. 일단 질문 문항이 너무 많아 귀찮았다. 수용할 수 없는 질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항은 이렇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선호한다.” 답: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그렇다. ④매우 그렇다. 내 대답은 ①②③④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모임에 어떤 사람이 참가하느냐가 중요하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여부는 내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답은 주어진 선택지 중에 없기에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두 번째 문항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답: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그렇다 ④매우 그렇다. 이번에도 내 대답은 ①②③④중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을 좋아하면 주변의 인정을 구하고, 주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꼰대 성향 검사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꼰대 테스트에만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로 종종 날아오는 설문조사들도 마찬가지다.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이처럼 이분법으로 구성된 설문에 답하기 어렵다. 나는 여가라면 어떤 형태든 다 환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의 선택지가 자기 마음의 풍경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면, 설문에 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설문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나처럼 까다로운(?) 피 설문자가 늘어나면, 설문지를 돌리는 연구자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아, 이 연구를 하려고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는데, 설문지 답변이 모이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는데, 이를 어쩌지. 설문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한다. 이 설문에 응답해주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음, 커피 한잔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건 어쩐지 경망스럽게 느껴지는군. 영혼을 문화상품권 한 장에 파는 느낌인걸. 언젠가 길가에서 모 종교단체가 나에게 크림빵과 함께 전도용 전단을 준 적이 있다. 자기네 종교에 귀의하라는 뜻이었다. 영덕대게도 아니고 한갓 크림빵 하나에 나는 개종을 해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 영덕대게를 미끼로 제시할 경우, 혹은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호소하며 읍소할 경우, 친애하는 누군가가 아주 간곡하게 부탁할 경우, 그도 아니면 어떤 강제적 상황에 처할 경우, 자신의 평소 생각이 어떻든 일단 설문지에 답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설문지의 문항 자체를 고칠 힘은 없기에, 기존 문항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과는 다르게 자신은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고 싶어한다고 답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설문지 답안은 자신의 평소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설문지 작성의 필요로 인해 그 순간 발명한 결과에 가깝다. 평소의 자신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자신을 창조한 셈이다.

물론 그 설문의 대답이 완전히 평소 생각과는 무관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나마 어느 한쪽에 가까운 답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경우, 불완전하나마 그 설문 결과는 피설문자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있다. 선택지와 딱 들어맞는 생각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선택지보다 마음이 복잡한 사람도 있다. 내게 사지선다 설문이 아니라 오지선다, 육지선다, 아니 백지선다 설문을 주세요! 그뿐 아니라. 평소에 그 사안에 관해서 아예 별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평소에는 그에 관한 잠재의식만 있을 뿐 표면에 드러난 생각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생각이 자주 바뀌므로 평소 생각이라는 것이 별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자기 생각을 자기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이 ①번 답안을 선택하더라도, 그 마음의 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똑같이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치열하게 선호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쥐눈이콩만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설문 답안이 모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이런 복잡한 사정은 무시된다. 그리고 일단 설문 결과가 모이고 나면, 피설문자들의 심경이 어떠했든 일사천리로 연구는 진행된다. 그리고 해당 연구 결과는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되고 그에 기반한 정책이 집행될 수도 있고, 관련된 세금이 신설될 수 있다. 그뿐이랴. 많은 파생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직장이 생길 수도 있고, 역으로 실직자도 생길 수도 있다. 실직자들은 쟁의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정치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외부적인 틀에 맞추어 상황이 재단되는 일은 개인의 마음 차원뿐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역사학자 통차이 위니짜꾼은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이라는 저서에서 원래 명확한 국경과 영토주권이 없이 개인적 충성 관계에 기초하여 질서를 유지하던 시암(siam)이 분명한 국경과 단일한 주권이 있는 태국으로 거듭난 것은 서양의 근대적 지도 제작기술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의 여러 필요에 의해 소위 근대적 지도를 제작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지도는 명확한 국경을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전에 없던 국경이 그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지도는 당시에 존재하던 태국의 모습을 모사하거나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 지도 제작의 요구에 따라 태국이 결정된 것이다. 근대적 지도 제작이 태국을 만든 것이지, 태국이 지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민심이 설문을 만든 게 아니라 설문지가 민심을 만들었다고 할만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민심의 창조자는 단순히 민(民)이 아니다. 민심의 창조자는 민뿐 아니라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노래하던 사람, 손에 잡히는 민심을 원하는 정치인, 모호한 상태로 부유하던 마음을 콕 집어 윤곽을 잡아준 사람, 여론조사로 밥 먹고 사는 사람, 관료적 요구에 맞는 근거를 통해 정책을 정당화해야 하는 사람, 그리고 영덕대게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