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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부, 34년간 쓴 통계방식 바꿔 전셋값 폭등 잡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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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현숙 경제정책팀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기자

가장 쉬운 다이어트 방법은 무엇일까. 고강도 운동이나 식단 조절? 아니다. 저울을 바꾸면 된다. 0㎏에 정확히 맞춰져 있던 영점을 10㎏로 조절하면 몸무게 10㎏이 한 번에 빠지는 마법 같은 다이어트가 가능하다.

전세 통계에 갱신계약 포함 추진 #인상률만 낮추는 결과 나올 가능성

무슨 황당한 소리냐 하겠다. 그런데 이런 정책을 정부가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라며 19일 발표했다. 전세 통계 개편안이다.

이날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행 전세 통계는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 가구 등을 대상으로 하는데, 계약 갱신을 하는 임차 가구는 별도의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규와 갱신 계약을 포괄할 수 있도록 통계 조사 보완 방안을 신속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감정원은 표본 조사를 거쳐 주간·월간 단위로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 통계를 발표한다. 매매가격지수와 함께 전세·월세가격지수도 낸다. 1986년 처음 작성된, 34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동산 시장의 대표 통계다.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전월세 매물이 비어 있다. [뉴스1]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전월세 매물이 비어 있다. [뉴스1]

정부는 이 통계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신규 계약일수록 바뀐 시세를 반영해 전셋값이 높게 책정된다. 기존 계약 연장(갱신)이라면 전세금이 그대로이거나, 전·월세 상한제에 따라 인상 폭이 5% 이내로 제한된다. 정부는 신규 전세 계약 중심으로 통계가 작성되니 전셋값이 많이 오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갱신 계약을 포함하면 통계상 전셋값 인상률을 낮추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홍 부총리도 “현행 집계 방식으로는 임대차 3법으로 인한 전세 가격 안정 효과를 단기적으로 정확히 반영하는 데 일부 한계가 있다”며 통계 개편을 통한 지수 하락 기대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통계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개편 내용과 시점이 문제다. 지금은 전셋값 동향이 어느 때보다 관심인 때다. 그런데 갑자기 저울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게 됐다.

정책 효과를 객관적,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어려워진다. 통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수준이 아닌 과거와 비교한 변화의 정도다. 정부가 34년이나 누적된 방대한 분량의 갱신 계약까지 모두 보정·반영해 정리하는, 제대로 된 통계 개편을 할지는 의문이다.

최근 통계만 ‘찔끔’ 손질한다면 시계열이 단절되고 과거 비교가 어려워지는 통계 사고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다. 이미 전례가 있다. 현 정부가 통계청장까지 바뀌는 촌극 속에 양극화 지표를 개편했다가 시계열 단절로 ‘통계 참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게 불과 2년 전이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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