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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왕조 국새가 7만점 ‘왕실 유물’의 대표 100선에 든 의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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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친서에 사용한 어새인 '황제어새'.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있고 명주로 꼰 인끈을 달아서 전통적인 어보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인면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고 새겨져 있다. 사용된 가장 이른 예는 1903년의 문서로, 당시 러일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고종황제가 이탈리아 군주에게 친서를 보내 전쟁이 발발할 경우 대한제국은 중립을 지킬 것이며 이탈리아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줄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고종은 1904~1905년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4통의 친서와 1909년 헐버트 박사에게 비밀자금 인출을 하달하는 친서에 이 어새를 날인하였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친서에 사용한 어새인 '황제어새'.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있고 명주로 꼰 인끈을 달아서 전통적인 어보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인면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고 새겨져 있다. 사용된 가장 이른 예는 1903년의 문서로, 당시 러일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고종황제가 이탈리아 군주에게 친서를 보내 전쟁이 발발할 경우 대한제국은 중립을 지킬 것이며 이탈리아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줄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고종은 1904~1905년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4통의 친서와 1909년 헐버트 박사에게 비밀자금 인출을 하달하는 친서에 이 어새를 날인하였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남색 비단표지에 왕실 족보를 담은 『선원록』, 세종 임금 태지석과 태항아리, 대한제국 선포 때 제작한 고종의 ‘국새 황제지보’, 창덕궁 대조전 봉황도….

고궁박물관 개관 15주년 맞아 온라인공개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까지 왕실문화 소개 #"구한말 자력 근대화 관점에서 재조명을"

조선 오백년과 대한제국 13년을 통틀어 왕실 문화의 진수를 보여줄 유물들로 국립고궁박물관(이하 고궁박물관)이 꼽은 ‘대표 100선’의 일부다. 2005년 개관한 고궁박물관의 소장품은 총 7만여점. 이 가운데 ^어보‧인장, ^의궤‧기록, ^과학·무기, ^궁궐·건축, ^공예, ^회화, ^복식, ^어가‧의장 등 8개 분야에서 고르고 골라 19일 홈페이지를 통해 100건을 공개했다. “고해상도 사진으로 세세하게 볼 수 있고 연관 유물 소개도 충실히 했다”는 게 박물관 측 소개다. 이날부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휴관에 들어간 박물관을 온라인으로 만날 기회다.

국립고궁박물관이 19일 조선왕실 문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대표 소장품 100건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사진은 고종황제의 국새 황제지보.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19일 조선왕실 문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대표 소장품 100건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사진은 고종황제의 국새 황제지보.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승하한 고종비 명성황후(1851~1895)의 국장(國葬)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인에 의해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왕비의 국장을 거행하기 위해 삼도감(三都監)을 설치하였다. 이 의궤는 왕비의 승하일부터 1897년(광무 1) 10월 28일 경운궁(현재 덕수궁) 경효전(景孝殿)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당시 국장도감에서 국장을 준비하고 거행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진은 의궤의 일부 장면.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승하한 고종비 명성황후(1851~1895)의 국장(國葬)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인에 의해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왕비의 국장을 거행하기 위해 삼도감(三都監)을 설치하였다. 이 의궤는 왕비의 승하일부터 1897년(광무 1) 10월 28일 경운궁(현재 덕수궁) 경효전(景孝殿)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당시 국장도감에서 국장을 준비하고 거행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진은 의궤의 일부 장면.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지난 2009년 50선 공개에 이어 11년 만에 두배로 늘린 대표유물 목록에선 구한말 왕실 유물이 다수 눈에 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한 때 환수된 국새(國璽·국사에 사용되는 도장)인 황제지보(皇帝之寶)와 한국전쟁 때 반출됐다가 지난해 돌아온 대군주보(大君主寶) 등 국새와 어보(御寶·왕실의 의례용 도장)도 여럿이다. 그간 해외문화재 환수의 성과인 동시에 “구한말~대한제국 시기에 이뤄진 근대문물 수용과 개혁작업을 큰 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김재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 측 의중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1882년(고종19) 제작된 대군주보는 그전까지 명과 청에서 받은 국새를 사용하던 데서 벗어나 자주국가 위상을 세우려한 시도로 평가된다. 프랑스 대통령이 수교 선물로 보낸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은 구한말 열강 외교의 이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1991년 일본에서 건너온 영친왕과 영친왕비 복식(국가민속문화재 265호)도 일괄로 묶여 선보인다. 전체적으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까지 엮어서 왕실 문화 전체를 일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개관 이후 구입하거나 기증‧환수된 것 중에도 중요 유물이 많고 문화재를 보는 관점 변화도 반영됐다”는 게 이수정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십장생도 창호.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해ㆍ구름ㆍ산ㆍ물ㆍ소나무ㆍ거북ㆍ사슴ㆍ학ㆍ복숭아ㆍ불로초(영지) 등 열 가지의 십장생을 그린 창호이다. 문짝 네 개가 한 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창호 4조(창덕6454, 창덕6453, 창덕6455, 창덕6456)가 모여 대작의 십장생도가 되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십장생도 창호.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해ㆍ구름ㆍ산ㆍ물ㆍ소나무ㆍ거북ㆍ사슴ㆍ학ㆍ복숭아ㆍ불로초(영지) 등 열 가지의 십장생을 그린 창호이다. 문짝 네 개가 한 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창호 4조(창덕6454, 창덕6453, 창덕6455, 창덕6456)가 모여 대작의 십장생도가 되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특히 고종 시대 유물 재평가와 관련해선 2010년 특별전 ‘100년 전 기억, 대한제국’이 전환점으로 꼽힌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공동 주최했던 전시회는 대한제국을 ‘망한 조선의 끝자락’이 아닌 ‘근대기의 첫 단계’로 재조명해 화제가 됐다. 당시 도록 자문을 맡았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시대와 근대 유물 모두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라서 가능했다”며 “학계에서 싹튼 ‘자력 근대화’의 문제의식을 박물관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니 반향이 컸다”고 돌아봤다. 2000년대 들어 구한말 격변기를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한 시도가 이후 대중문화계까지 널리 퍼진 계기로 꼽힌다.

“15년 전 개관 때만 해도 조선 임금 중에 세종과 정조만 추앙받았지 왕조 전반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고 제5대 고궁박물관장을 지낸 김연수 국립무형유산원장은 돌아본다. “하지만 왕실 유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훑어보니 조선 오백년을 지탱해 온 저력이 통치 시스템 속에 보였다. 망한 역사 이면에 문화‧정치적으로 되새겨야 할 것들을 유물 스스로 말하게끔 했다.” 개관전시회인 ‘백자달항아리’로부터 지난달 29일 개막한 ‘신왕실도자전’까지 이어지는 고궁박물관 전시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창덕궁 대조전 봉황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대조전 봉황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19일 공개한 조선왕실 대표 소장품 100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19일 공개한 조선왕실 대표 소장품 100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지난해 퇴임한 서준 전 학예연구사는 “왕실 소장품 알맹이는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이미 간 상태에서 경복궁‧창덕궁 등 5대 궁궐 및 조선 왕릉에 남아있던 유물을 한데 모은 게 출발점이었다”고 회고했다. 특정한 목적의 컬렉션이라기보다 조선왕실 생활유물까지 모두 문화재화한 게 특징이자 차별점이란 얘기다. 때문에 새로운 접근도 가능해졌다. 이번 신왕실도자전에서 개화기 궁궐을 밝혔던 전등 갓 150점이 유물로 선보이는 게 한 예다.

영친왕비 궁중대례복 중 적의(翟衣). 적의는 왕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명복(命服)으로 책비의(?妃儀), 친영의(親迎儀), 동뢰연(同牢宴)에 입은 법복이다. 적의에는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무늬를 함께 직조하였으며, 가슴, 등, 양 어깨에는 조선시대 왕족이 착용하던 금실로 수놓은 용무늬 보(補)를 덧붙었다. 1921년 일본에서 영친왕이 이진(李晉)을 낳고 1922년 귀국을 했을 때, 순종과 순정효황후를 처음으로 알현하는 근현례(覲見禮) 날 종묘 참배 시에 입었던 의례복으로 추정된다.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 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비 궁중대례복 중 적의(翟衣). 적의는 왕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명복(命服)으로 책비의(?妃儀), 친영의(親迎儀), 동뢰연(同牢宴)에 입은 법복이다. 적의에는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무늬를 함께 직조하였으며, 가슴, 등, 양 어깨에는 조선시대 왕족이 착용하던 금실로 수놓은 용무늬 보(補)를 덧붙었다. 1921년 일본에서 영친왕이 이진(李晉)을 낳고 1922년 귀국을 했을 때, 순종과 순정효황후를 처음으로 알현하는 근현례(覲見禮) 날 종묘 참배 시에 입었던 의례복으로 추정된다.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 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지난 2005년 8월15일 문을 연 국립고궁박물관의 개관 전시회 '백자 달항아리'를 보기 위해 길게 줄 선 관람객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지난 2005년 8월15일 문을 연 국립고궁박물관의 개관 전시회 '백자 달항아리'를 보기 위해 길게 줄 선 관람객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럽의 왕실박물관과 비교해 고궁박물관의 위상을 새롭게 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13일 개관 15주년 포럼에서 장남원 이화여대 교수는 “유럽 왕실도 19세기 후반엔 이미 상징화해서 왕가 수집품은 민간의 향유 대상으로 변화했다”면서 “왕실 커피잔을 기념품으로 소비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더 젊은 고궁박물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궁박물관은 지난해 관람객 111만명 등 2009년 이후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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