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암 치료 마친 아버지와 침대칸 기차 여행

중앙일보

입력 2020.08.19 15:00

업데이트 2020.08.19 15:26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7)

“이번 치료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련다.”
양성자 치료실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전국을 돌면서 이것저것 생각도 정리하고….”

’이번 치료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련다.“ 양성자 치료실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누구와 어떻게?“와 같은 실무적인 질문은 꺼내지 못하고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사진 pixabay]

’이번 치료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련다.“ 양성자 치료실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누구와 어떻게?“와 같은 실무적인 질문은 꺼내지 못하고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사진 pixabay]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담담하게 말씀하셔서 “누구와 어떻게?”와 같은 실무적인 질문은 꺼내지 못하고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조용히 천천히 다녀 올란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신 듯 궁금해하는 정보도 잊지 않으셨다.
“같이 갈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시간이 될지….”

지난 5월 20일 뇌경색이 온 뒤, 아버지 걸음이 위태롭다. 전혀 못 걸으시는 것은 아니다. 손잡고 부축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무릎이 꺾여 버려 혼자 걷는 것이 두려운 상태다. 그런 아버지가 전국 일주 여행이라니….

돌아가신 어머니도 여행을 좋아하셨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 막내딸로 자라 명문 학교를 연이어 졸업하신 어머니는 친구, 동창들과의 여행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두 살 터울로 줄줄이 이어진 네 딸들의 입시와 출산, 본인의 건강과 아버지 눈치가 걸림돌이 되어 여행길을 막았다. 병세가 악화되기 전엔 친구들과 오랜 시간 남미여행을 계획했다. 그 역시 언니2의 둘째 출산으로 무산되면서 크게 아쉬워했다. 미안한 마음에 언니는 어머니와의 여행을 다시 계획했지만, 그때는 이미 어머니 건강이 악화된 뒤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언니는 “그때 휠체어를 밀고서라도 갔어야 했어”하며 슬퍼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80년대 초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왼쪽 가슴 전체를 무참하게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재발과정에서 방사선 치료를 여러 차례 받아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가슴살이 거무죽죽 녹아있는 상태였다. 그 가슴을 또다시 폐암 수술을 위해 절제하고 갈비뼈까지 잘라냈었다. 의료진의 실수로 같은 자리를 연이어 두 번 절제하면서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반면 아버지가 받게 된 양성자치료는 양성자(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를 가속해 암 치료에 활용하는 것으로, 방사선 치료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거의 없어 ‘꿈의 치료’라 불린다. 치료 중 전혀 느낌이 없고 치료 후 부작용도 거의 없다 해서 안심했는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예정된 양성자치료를 무사히 마친 날, ‘치료 종료’라 인쇄된 접수증을 아버지는 훈장처럼 받았다.

예정된 양성자치료를 무사히 마친 날, ‘치료 종료’라 인쇄된 접수증을 아버지는 훈장처럼 받았다.

양성자 치료는 양성자가 가진 특이한 물리학적 성질, 즉 양성자가 인체를 투과해 암 조직에 도달할 무렵 체내 에너지 흡수가 절정에 달하는‘브래크 피크(Bragg Peak)’ 현상을 이용하는데, 이때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해야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주변 조직의 손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폐암의 경우 숨 쉴 때마다 폐가 움직이기 때문에, 사전교육을 통해 의료진과 약속된 범위에서 숨쉬기 강도를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마스크까지 쓴 채로 말이다. 실제 양성자가 발사되는 시간은 모두 합쳐 5분가량이지만, 30분 이상 CT 기계 속에서 조마조마하며 숨을 참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두렵고 힘든 일이었다. 치료 끝나고 나오실 때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때론 속옷에 용변을 지리기도 하셨다. 치료실 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제발 긴장하지 않고 숨을 잘 참아내기를, 제발 기침이 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아버지가 치료가 막바지에 여행 이야기를 꺼낸 것이 나에겐 의미 깊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거동이 더 불편해질 수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 아버지가 원할 때 모시지 않으면 언니처럼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기차여행을 떠올렸다. 마침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열차 안에 침대와 샤워시설이 갖춰진 객실이 있어 아버지와 같이 거동이 불편한 분에게 적격이었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8월에 다시 시작한다는 안내 기사를 발견하고 바로 예약했다. 아버지 탁상 달력에는 붉은색 동그라미를 그리고 ‘기차 타고 전국일주’라고만 써 놓았다. 7월 달력을 넘기는 날 발견되길 기대하며.

그저 동그라미만 그려놓았을 뿐인데, 아버지는 본인을 위한 여행계획임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그저 동그라미만 그려놓았을 뿐인데, 아버지는 본인을 위한 여행계획임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양성자치료를 마친 주말, 가까운 친구 몇 분이 병문안을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버지가 한 친구에게 “너 시간 되면 기차 타고 여행 안 갈래?” 하는 것이었다. 달력을 미리 넘겨보실 줄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비밀 작전을 들킨 듯 깜짝 놀랐다.

“몸이 회복되면 고향에도 가고 싶고 해서 여행을 가겠다 했더니 우리 딸이 벌써 예약해 놓은 모양이다. 시간 되면 같이 가자.”

그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놓았을 뿐인데, 아버지는 귀신같이 꿰뚫고 계셨다. 예약을 안 했더라면 혼자 섭섭하셨겠다 싶어 안도하면서도, ‘같이 가고픈 한 사람이 내가 아니었나?’ 생각하니 김칫국물을 마신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늘 같이 있는 나보다는 오랜 친구와 가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기회에 약간의 휴식을 가질 수 있음을 기대도 하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기차여행을 떠올렸다. 마침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진 pxhere]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기차여행을 떠올렸다. 마침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진 pxhere]

며칠 뒤 철도청으로부터 받은 여행 일정을 보여드리며 함께 가기로 한 친구분께도 보내드리겠다 말씀드렸다. 의외로 아버지는 “보낼 필요 없다” 하시는 게 아닌가. 양성자 치료가 끝난 뒤 입맛도 잃고 생야채나 과일만 드시면 설사를 하셨기에 기력이 없어 여행 갈 의욕까지 없어지신 건가 걱정되었다.

“아빠, 여행이 고될 것 같아 그러세요?”
조심스럽게 여쭈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 갈 거다. 우리 둘이 가자.”
확정적으로 단호히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번 휴가도 아버지와 보내게 되었다. 모처럼 자유롭게 며칠 시간 보낼 기회가 무산되어 아쉬울 법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2박 3일 동안 아버지와 한 침대를 쓰게 되었다. 흔들리는 기차라 위험하기도 하고, 두 분이 편하게 주무시라고 2층 침대가 아닌 퀸사이즈 더블베드로 예약한 탓이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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