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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UAE 평화협정 맺는다고 중동 화해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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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페르시아만(아랍권은 아라비아만으로 부름) 연안의 아랍국가 아랍에미리트(UAE)가 8월 13일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지역 국제관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979년 이집트에 이어 94년 요르단과 관계를 정상화한 지 26년 만에 이뤄진 아랍권과의 화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예루살렘 포스트 등 이스라엘과 서구 매체들은 다음 수교국으로 오만·바레인·모로코 등을 꼽으며 기대감을 보인다.

이스라엘·UAE 수교 합의 역사적 #아랍·이슬람 30개국은 승인 거부 #반이스라엘 정서 극복 핵심 과제 #군주국·공화국 온도 차이도 문제

하지만 이번 수교가 아랍권의 이스라엘 적대정책을 종식하고 화해 시대를 여는 효시가 될지, 아랍·이슬람권의 역풍을 불러 찻잔 속의 촛불이 될지를 전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아랍권 내부를 살펴보면 기막힌 사연과 얽히고설킨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 관계 정상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제가 지난 13일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UAE는 앞으로 몇 주 안에 만나 투자·관광·직항노선·보안·통신 등에 대한 양자협정에 서명한다. 한국에선 홍콩·모스크바 외에 UAE의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경유해 이스라엘의 기독교 성지를 여행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스라엘의 북부 네타냐에 있는 평화의 다리에 지난 16일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국기가 나란히 걸렸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북부 네타냐에 있는 평화의 다리에 지난 16일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국기가 나란히 걸렸다. [AP=연합뉴스]

아랍권은 49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국가 승인을 거부해왔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193개 유엔회원국 중에서 163개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했으며 30개국이 미승인국이다. 아랍연맹(AL)과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 중 26개국과 중남미 반미 국가인 쿠바·베네수엘라와 아시아의 북한·부탄이다.

이런 상황에서 UAE가 퍼스트 펭귄을 자처한 가장 큰 요인으로 경제적 이유가 꼽힌다.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미수교국인 걸프 지역 국가들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아랍권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 여권을 들고 이스라엘을 방문해 스타트업 기업을 살펴보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모른 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랍권 투자자들과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정보력,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려고 접촉 면적을 오래전부터 넓혀왔다는 이야기다.

UAE의 국가 전략과도 연관이 있다. 석유·가스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산유국 UAE는 앞으로 포스트 석유시대에 대비해 선진국과 손잡고 자국에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며 세계 각국의 첨단 업종에 투자해 동반성장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 전략에서 중동의 선진국인 이스라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한국과 손잡고 바라카 원전 건설에 들어갔으며 지난 8월 1일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갔다. 중동권에서 원전 가동은 이스라엘의 네게브 원전과 이란의 부셰르 원전에 이어 세 번째이며 아랍권에선 최초다. 중동 강국을 자처해온 터키·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보다 이르다. 지난 7월 20일엔 중동 최초의 화성 탐사선 아말을 일본 우주발사체에 실어 쏘아 올렸다.

UAE가 이스라엘과 손잡은 또 다른 이유로 이란에 대한 두려움을 꼽을 수 있다. 이란은 두 가지 점에서 중동 군주국에 위협이 되어왔다. 하나는 잘 알려진 대로 이슬람 종파 간 긴장이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중동 군주국 대부분은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반면 이란은 대다수가 시아파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협조해 수니·시아 대리전 성격의 예멘 내전에 참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이스라엘과 손잡고 반이란 연합을 강화할 전략적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수집한 이란·예멘 반군 관련 정보를 미국을 통해 사우디·UAE와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나불루스의 주민들이 지난 14일 미국·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 지도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나불루스의 주민들이 지난 14일 미국·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 지도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또 다른 공포는 79년 군주제를 무너뜨린 이란 이슬람혁명의 지역 내 확산이다. 이란인들은 87년 7월 이슬람 성지 메카 순례에서 전통적으로 실시하는 반이스라엘 행진 도중 혁명 구호인 “아저디(자유)”를 외쳐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 혁명 수출과 군주제 타도를 상징하는 구호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란인과 현지 경찰이 충돌해 이란인 275명, 사우디 경찰 75명, 다른 나라 순례자 42명 등 40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뒤 1991년까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교했고 이란인의 메카 순례도 금지됐다.

이란은 군주제 시절인 50년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79년 이슬람혁명 뒤로 국교를 끊고 가장 강력한 반이스라엘·반미 국가로 변신했다. 군주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반이란·친미 국가로 자리 잡았다. 결국 중동과 이스라엘의 수교와 새로운 외교 지형도 건설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 군주제와 공화제 국가 간의 대결, 그리고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 간의 반목을 극복하는 어려운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한다.

거기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승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정치적 업적 쌓기 등 다양한 국내 정치적 요소도 층층이 쌓여있다. 중동 외교가 어디까지 지각변동을 겪을지 아직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