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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배의 시사음식

햄버거와 햄버거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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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두 달 전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17명이 용혈성 요독증후군(HUS)에 집단 감염됐다. 병원성 대장균 O157이 장내 출혈과 설사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다. 보건 당국은 급식재료를 보관하는 냉장고의 성능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햄버거병으로도 불린다. 최초의 발병이 햄버거 패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982년 미국 오리건주의 햄버거 가게에서 덜 익은 패티를 판매하면서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패티를 스테이크의 레어처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덜 익혀 먹는 문화가 있다. 이후 94년 일본에서 2만 명 가까운 O157 환자가 발생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햄버거는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는 미국 음식문화의 상징이다.

19세기 독일 함부르크는 유럽인의 미국 이민의 출발항이었다. 고기를 잘게 잘라먹는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미국 이민의 관문 뉴욕에서 유행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선 비싼 쇠고기가 대중화되면서 ‘아메리칸 비프 드림’(American beef dream)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다. 함부르크 스테이크 스타일로 잘게 다진 소고기인 패티를 빵 사이에 넣고 양파와 치즈를 넣어 먹으면서 햄버거가 탄생했다. 특히 노동자에게 인기가 있었다. 고기를 빠르고, 싸게 먹을 수 있었다. 단백질과 지방에 빵의 탄수화물, 야채까지 곁들인 햄버거는 미국을 석권하고 각국으로 확산하면서 전 세계 물가지수의 기준인 빅맥 지수를 낳게 됐다.

햄버거. [사진 박정배]

햄버거. [사진 박정배]

한국에서 햄버거는 60년대 분식장려운동의 하나로 소개됐고, 80년대 프랜차이즈 외식업의 대표 상품으로 떠올랐다. 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0년 초반 광우병 파동과 웰빙 열풍으로 주춤했으나 콩으로 만든 패티가 등장하는 등 지금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100여 년 역사의 햄버거가 20세기 후반 들어 집단 감염의 원인으로까지 지목된 데는 O157의 변이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산성이 강한 인간의 위 속에서 내성이 생긴 대장균에 진화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다지지 않은 고기는 표면에 균이 침투해도 고기 안까지 상하는 일은 드물다. 반면 다진 고기는 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일반고기보다 크다. 다행인 것은 O157은 70도 이상의 열에서는 완전히 사멸한다. 조리 위생 및 기준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O157은 햄버거 패티뿐만 아니라 야채나 다른 가공 육류, 우유에서도 발생한다. 지난달 말 국회에선 햄버거 패티 같은 분쇄포장육의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적용과 자가품질검사를 의무화하는 축산물 위생관리법, 집단급식소의 위생관리 규정을 강화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집단급식소의 정의에 명시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햄버거, 그에 못지않게 안전 문제를 서두를 때가 왔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