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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껍질 벗기고 깍둑썰기했다" 보수도 호평한 미셸 18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마지막 연사로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마지막 연사로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스스로 "정치를 싫어한다"던 전직 영부인이 어느 정치인보다 강렬한 반(反) 트럼프 연설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인 미셸은 17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마지막 연사로 나서 트럼프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트럼프 시대의 불통·혼선 조목조목 지적 #"도시락 싸들고 투표장으로 가라" 독려

2016년 전당대회에서 “그들이 비열하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슬로건을 남긴 연설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미셸은 기조연설에서 평소와 달리 강한 어조로 트럼프를 몰아세웠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는 이 나라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규정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잘못 대응하는 바람에 수많은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공략하는 대신 인성과 도덕성,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비롯해 지난 4년간 혼란을 경험한 일반인 또는 엄마 입장에서 쉬운 언어로 풀어내 공감대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그 일(대통령직)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지만, 분명 자기 능력 밖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서 “그게 현실(It is what it is)”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가 십수만 명이라는 압박 질문을 받고 “그게 현실”이라고 인정한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미셸은 트럼프가 재선할 경우 미국은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자. 혹시라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삶이 마치 그에게 달린 것처럼 바이든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정치를 싫어한다. 하지만 백악관이나 대통령으로부터 리더십이나 위안을 기대할 때마다 우리가 얻은 것은 혼돈과 분열, 완전한 공감 부족“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위해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바이든 후보에 대해서는 품위 있는 사람이자 훌륭한 부통령이며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치켜세우며 독선적 리더십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셸의 이날 연설은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평이 나왔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행동 지침을 빠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셸은 “2008년과 2012년에 했던 것처럼 투표해야 한다. 조기에 투표하고, 가급적 직접 투표하라“고 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밤 당장 우편투표 용지를 신청하고, 직접 투표할 경우 편한 운동화를 신고, 밤새도록 줄을 서야 할 수도 있으니 도시락을 싸 들고 가라"고 조언했다.

18분 연설에서 트럼프 이름은 단 한 번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치 트럼프를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뤘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나흘 일정의 행사 방향을 잡는 기조연설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분석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호평이 나올 정도였다. 크리스 월리스 폭스뉴스 앵커는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과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혼돈과 분열, 공감 부족을 언급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를 껍질 벗기고, 얇게 저미고, 깍둑썰기했다”고 평가했다.

폭스뉴스 정치분석가인 후안 윌리엄스는 “2016년 전당대회에서 한 명연설 ‘그들이 비열하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를 능가하는 연설이었다”면서 “마치 집안 중요한 일을 설명하는 엄마 말을 듣는 아들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 평론가 브릿 흄은 “미셸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대의원들에게 뜻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데일리비스트가 전했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이 17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을 하면서 착용한 목걸이가 화제다. 투표하라는 의미의 'vote' 장식이 달린 목걸이는 로스앤젤레스 보석업체에서 주문제작했다고 CNN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이 17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을 하면서 착용한 목걸이가 화제다. 투표하라는 의미의 'vote' 장식이 달린 목걸이는 로스앤젤레스 보석업체에서 주문제작했다고 CNN이 전했다. [AP=연합뉴스]

이날 미셸은 광택 있는 브라운 브이넥 블라우스에 ‘투표하라(vote)’는 알파벳 글자로 장식된 목걸이를 착용했다. CNN은 미셸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보석업체 바이차리(BYCHARI)에 주문 제작한 제품으로, 홈페이지에 따르면 약 300달러(약 35만원)라고 전했다.

미셸은 백악관 시절부터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디자이너의 제품을 선택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영부인 패션'을 활용해 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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