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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중 성장률 1위 예상"…V자 반등? 너무 이른 축배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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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과 지역 봉쇄 없이 방역을 성공한 모범국가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올해 경제성장률 1위가 예상될 만큼 가장 선방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역시 너무 이른 자화자찬이었다.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 말을 하고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 한국 경제는 정반대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확산하는 중이다.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100~200명대를 웃돌고 있다.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지난 2~3월 악몽의 재연이다.

올 1분기(성장률 전 분기 대비 -1.3%) 하강하다가, 2분기 바닥(-3.3%)을 찍은 경기가 3분기와 4분기 완연히 살아날 것이란 정부의 기대는 수포가 될 분위기다.

불투명해진 ‘V자’ 경기 반등 가능성.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불투명해진 ‘V자’ 경기 반등 가능성.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 대통령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용한 한국 경제성장률 1위 전망은 코로나19 확산이 한 번에 그친다(Single-hit)는 OECD의 가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OECD는 성장 전망을 두 가지로 했다. 코로나19가 2차 확산하면(Double-hit)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0%로 추락한다고 예상했다. OECD의 비관 시나리오는 이미 현실이 돼 가는 분위기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을 -0.2%로 예상했지만 ‘코로나19의 국지적 확산이 간헐적으로 나타나 대규모 재확산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 아래서다. ‘코로나19의 신규 및 잔존 확진자 수가 3분기 중에야 정점에 이르고 각국 정부의 봉쇄 조치 완화 속도가 완만할 것’이란 비관 시나리오에서 한은 전망치는 -1.8%로 고꾸라진다.

KDI 역시 올해 경제성장률을 0.2%로 예상했지만 하반기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된다는 가정(기준 시나리오)하에서다.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이 이어진다는 KDI의 하위 시나리오상 성장률 전망치는 -1.6%에 불과하다.

비관 시나리오에 가까워지는 한국 현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비관 시나리오에 가까워지는 한국 현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V자’ 경기 반등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 부양에만 몰두하느라 정부가 여름 휴가철, 연휴 기간 방역의 끈을 늦추고 소비 진작책을 섣불리 추진한 게 결국 코로나19 2차 확산이란 화를 키웠다는 지적과 함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차 대유행이 사실상 시작했다고 판단한다”며 “상반기 유일하게 개선했던 소비가 다시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수출은 계속 힘들 전망이라 추가적인 경기 악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봤다.

상황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 “하반기부터 진짜 위기의 시작”이란 경고도 나왔다. 그동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한국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게 방어한 양대 축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소비와 정부 재정이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대면 접촉이 다시 제한되면서 소비 진작은 더는 쓸 수 없는 카드가 됐다. 3개월간 이어왔던 생활 속 거리두기(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방역체계는 지난 16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됐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200명 이상일 때 시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선포도 배제할 수 없다. 3단계로 접어들면 10인 이상 모임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주요 시설은 문을 닫고 학교도 휴교나 원격 수업에 들어간다. 필수 인력 외 재택 근무도 권고된다. 이미 주요 기업은 재택 근무에 돌입했다. 농림축산식품부ㆍ문화체육관광부 등은 각종 할인ㆍ쿠폰 지원 행사를 중단했다.

연초와 달리 정부 실탄도 빠듯하다. 올해분 재정 카드는 이미 바닥을 보인 상태다. 기재부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누적 재정 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가 110조5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불과 서너 달 사이 59조원에 달하는 1~3차 추가경정예산을 너무 급히 쏟아부은 탓이다. 정부가 코로나 19 대응 명목으로 본예산·추경 등을 통해 계획·집행한 재정 지원 규모만 277조원에 이른다. 이미 당겨 쓴 재정에 수해 복구 관련 예산까지 부담으로 가중됐다. 수해 직후 4차 추경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왔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이유다. 전문가가 가장 문제로 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을 너무 당겨쓴 것도 문제지만 내용이 더 문제였다”며 “추경을 할 때 방역ㆍ보건 등 근본적인 부문에 집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선 방역ㆍ보건 체계를 확실히 구축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줬어야 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를 활성화한다고 여기저기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비판했다.

이번 코로나19 재확산이 관리되지 않고 더 번질 경우 OECD 1위 등 자화자찬이 무색해지고, 성장률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경기가 침체해 내년 치 세수 확보가 어려워 재정 정책을 지금처럼 쓰기 힘들다”며 “수출 감소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 같은 수출 의존형 국가는 하반기부터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교수는 “앞으로 재정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긴급재난지원금처럼 효과가 크지 않은 정부 지출은 자제해야 한다”며 “특히 상황이 더 악화할 취약계층이나 추가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기업과 자영업자에 초점을 맞춘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ㆍ김남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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