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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 깬 신소정 "성별만 다를 뿐, 똑같아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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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스하키 대명의 신소정 코치(가운데)가 태블릿PC를 들고 골리 이창민(왼쪽)과 이연승(오른쪽)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대명]

남자아이스하키 대명의 신소정 코치(가운데)가 태블릿PC를 들고 골리 이창민(왼쪽)과 이연승(오른쪽)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대명]

“(2018년) 평창 올림픽 때보다 기자가 더 온 것 같아요. 호호”

여성 최초 남자아이스하키 코치로 첫훈련 #강력한 슈팅, 태블릿PC로 섬세한 지도 #NHL 감독 밑 경험 쌓아, 최종 꿈 감독

남자아이스하키 대명 킬러웨일즈의 신소정(30)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1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는 8개 매체 취재진이 몰렸다. 11일 여자 최초로 남자아이스하키 실업팀 코치에 부임한 신소정이 이날 첫 아이스 훈련에 나섰다. 여자가 남자를, 그것도 성인팀을 지도하는건 전 종목을 통틀어도 이례적인 일이다.

무장을 입은 23명 남자 선수들 사이에서 신 코치는 주눅들지 않았다. 대명 골리 박계훈·이창민(이상 28)·이연승(25)을 향해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스틱으로 툭 치며 장난도 쳤다. 태블릿PC를 보여주며 세세하게 지도하기도 했다.

대명 남자골리들을 지도하는 신소정(가운데). [사진 대명]

대명 남자골리들을 지도하는 신소정(가운데). [사진 대명]

박계훈은 “팀에 골리 코치가 없었는데, 코치가 여자든 남자든 관계없이 많이 배울 수 있게 됐다. 여자 코치는 좀 더 섬세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링크 안에서 코치와 몸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성별은 전혀 상관 없다”고 했다. 첫 훈련을 마친 신 코치는 “굉장히 설레고 흥분됐다. 첫 여자코치라는 부담도 있지만, 성별이 다를 뿐 지도방식과 훈련방식은 똑같다”고 했다.

신소정은 한국여자아이스하키 선구자다. 중1 때 태극마크를 단 뒤 17년간 여자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평창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남북 단일팀 골리로 나섰다. 5경기에서 236개 슈팅 중 210개를 온 몸으로 막았다. 2013년부터 캐나다 세인트 프랜시스 자비에르대 주전으로 활약했고, 2016년 북미여자아이스하키리그(NWHL) 뉴욕 리버터스에서도 뛰었다. 2018년 은퇴 후 캐나다 모교에서 1년간 후배들을 가르치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귀국했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이 북한 김향미와 황충금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이 북한 김향미와 황충금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완 대명 단장은 “지난달 구단을 찾아와 코치를 맡고 싶다고 했다. 24시간 하키만 생각하는 열정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케빈 콘스탄틴(62·미국) 대명 감독은 “내가 선장인 배에 탑승했다. 골리 지도 권한을 주겠다”고 허락했다.

콘스탄틴 감독은 골리 출신으로 1993년부터 7시즌 동안 NHL 감독으로 활약하며 통산 159승을 기록했다. 새너제이 샤크스, 피츠버그 펭귄스, 뉴저지 데블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신 코치는 “구단과 감독님이 성별은 신경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줬다”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NHL 출신 유명 감독 밑에서 코칭 경험을 쌓을 기회는 흔치 않다. 감독님이 비디오 분석을 중요시하는데, 디테일한 부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근에야 빅리그 최초의 여자 정식코치가 나왔다. 올해 1월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가 소프트볼 선수 출신 알리사 나켄을 코치로 선임했다. 신 코치는 “캐나다 여자아이스하키 영웅 헤일리 위켄하이저가 2부팀 스킬 코치를 맡았다고 들었다”며 “스포츠는 남성성이 강하다보니 아직까지 성별의 벽이 높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골리는 보디체크 영향이 거의 없고 훈련방식이 동일한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여자아이스하키 선구자 신소정. [중앙포토]

한국여자아이스하키 선구자 신소정. [중앙포토]

신 코치는 2018년 은퇴 후 배우를 꿈꾸며 연기에 도전했었다. 그는 “올림픽까지 쉼없이 달려와 1년간 푹 쉬며 하키와 관계없는 연기를 배웠다. 골리 포지션상 20년간 감정을 숨기며 살아왔는데,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스하키가 그립고 소중함을 느껴 얼음판에 돌아왔다. 감정을 표출하는 법도 지도하고 공유하려 한다”고 했다.

10월 예정된 코리언 리그에서 코치 데뷔전을 치르는 신 코치는 “쉽지 않겠지만 자신 있다”고 했다. ‘최종 꿈은 감독이냐’는 질문에 “캐나다에 갔던 이유도 다양한 코칭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먼훗날 감독 욕심도 있다”고 했다. 신소정이 감독으로 또 한번 올림픽에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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