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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울주 간 송영길, 그 옆엔 與의원 4명 "탈원전 천천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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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울주군 새울원자력본부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서 신고리 5호기 격납철판(CLP·Containment Liner Plate)이 지상에서 조립돼 원자로 건물에 설치되는 모습. [연합뉴스]

울산시 울주군 새울원자력본부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서 신고리 5호기 격납철판(CLP·Containment Liner Plate)이 지상에서 조립돼 원자로 건물에 설치되는 모습. [연합뉴스]

“이 문이 원자력발전소 격납건물 철판입니다. 격납고 벽 안에는 하나당 900톤(t)을 견딜 수 있는 철근 묶음이 수평으로 195개, 수직으로 100개 설치됩니다.”

지난 14일 오후 울산 울주군 신고리 5, 6호기 건설 현장.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이 강영철 건설소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송 위원장 등은 한국산 K원전의 안전성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실태를 직접 확인하러 현장을 찾았다.

“신형 원전은 기존보다 격납고 두께를 넓혀 대형 항공기가 부딪쳐도 문제없도록 설계됐다. 미국에서 팬텀 전투기로 부딪혀 (안전성) 시험을 했는데 비행기는 박살이 나고 격납 건물엔 5㎝ 깊이 흠집만 났다.” 강 소장의 설명에 이날 모임을 주도한 송 위원장은 “탈(脫)원전이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원전 전문인력과 산업 생태계는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원전 관리·보수뿐 아니라 차후 미래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했다.

1년 반 만에 ‘속도조절론’ 재개

이른바 탈원전 속도조절론이다. 이날 송 위원장과 현장 답사에 함께 한 의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드러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은 김병욱 의원은 통화에서 “이번 폭우 등 최근 기후변화를 보면 탄소배출량을 빨리 줄여야하는데 신재생에너지 확산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원자력의 안전성과 효율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탈원전보다 탈탄소가 더 시급한데 지금은 원전을 무조건 없애는 데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했다.

14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을 찾은 민주당 김주영, 김정호, 송영길, 김병욱, 이용빈 의원(왼쪽부터). 이날 답사팀 방문 목적은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沒有調査, 就沒有發言權)’였다고 한다. [송영길 의원 제공]

14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을 찾은 민주당 김주영, 김정호, 송영길, 김병욱, 이용빈 의원(왼쪽부터). 이날 답사팀 방문 목적은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沒有調査, 就沒有發言權)’였다고 한다. [송영길 의원 제공]

탈탄소에 원전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은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달 하원 질의응답(PMQ)에서 “원전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원전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아그네타 리징 세계원자력협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지금 세계는 탈탄소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에 나서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원자력 발전”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여당에서도 탈원전 추진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이 하나둘 불거져 나오는 모습이다. 송 위원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초·재선인 답사 참석자들은 ‘기후변화와 그린뉴딜정책을 연구하는 의원모임’ 소속이다. 지난달 출범한 모임 회원 29명 중 한국전력 노조 위원장 출신 김주영 의원과 김병욱, 김정호, 이용빈 의원이 이날 울주를 찾았다. 각자 상임위가 모두 다르고, 지역구도 제각각(수도권3, 부산1, 광주1)이다.

명시적으로 “탈원전 반대”를 언급하지 않지만, “당내에 원자력 에너지의 순기능을 이해하는 흐름이 있다”는 게 대체적 분위기라고 한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답사팀은 이날 김포에서 오전 8시 비행기로 울산까지 이동해 월성 2호기 가압중수로를 둘러본 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맥스터) 관련 브리핑을 들었다. 오찬 후에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현장을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했다.

임기 말 소신 목소리 커지나

현 정부 들어 여당 의원들끼리 원전 건설 현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년간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측 목소리 청취는 주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담당했다. 민주당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첫 어젠다였던 탈원전 기조를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만인 2017년 6월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 원전정책 전면 재검토를 선언하며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력 대체에너지인 태양광은 이번 수해 국면서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여러 가지 논란을 낳았다.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은 ’한미 원전 협력을 통해 중국ㆍ러시아로 원전 주도권이 이동하는 걸 막아야한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2020 한반도평화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송 위원장. [연합뉴스]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은 ’한미 원전 협력을 통해 중국ㆍ러시아로 원전 주도권이 이동하는 걸 막아야한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2020 한반도평화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송 위원장. [연합뉴스]

송 위원장은 과거 한차례 탈원전 속도조절론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지난해 1월 원자력계 신년 인사회 특별 강연에서 “원전 정책이 바로 이렇게 탈원전으로 가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 소프트랜딩(연착)해야 한다”고 말해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즉각 진화에 나섰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원전 문제가 추가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청와대 입장”이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이번엔 현장 방문을 추진한 송 위원장을 두고 정치적 배경에 대한 관측이 고개를 든다. 한 여권 인사는 “차차기 당권, 넘어서 대권까지 노린다는 송 위원장이 정책적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8년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송 위원장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주자(홍영표·우원식)들보다 먼저 이낙연 의원에게 길을 터 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통화에서 “남북 경제 협력이 재개되면 북한 전력 수급을 위해서도 KEDO 신포 경수로 건설 재개를 준비해야 한다”며 원전 기술 유지론을 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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