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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지금이라도 인력·병상의 동원체계 갖추고 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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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코로나19 2차 대유행 대비의 골든타임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중심지 라스팔마스. [EPA=연합뉴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중심지 라스팔마스. [EPA=연합뉴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14일 103명, 15일 166명에 이어 16일에는 279명으로 신규 확진자가 폭증했다. 서울·경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수도권 중심의 2차 대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 대처를 잘해 확산세를 잡는다 해도 코로나19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최근 사흘간 서울·경기 중심으로 전방위 확산하며 548명 확진 #정부, K방역 성공에 취해 2차 대유행 대책 제대로 세우지 않아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는 경제만 있고 방역 대책은 빠져 있어 #전국 보건소의 선별 진료와 역학조사 인력 2000명 더 충원해야

특히 전 세계 감염병 전문가들은 올겨울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해왔다. 여름이 지나고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독감과 함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극성을 부릴 것이다. 날이 추워지면 좁은 공간에 모이는 일이 많아지고 면역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백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스페인 독감처럼 바이러스에 변이가 생겨 전파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정세균 총리가 “2차 대유행에 대한 경고는 과장이 아니라, 과학과 데이터에 근거한 진지한 충고”라고 말한 이유다.

지난 2월 말~3월 초 대구·경북에서는 사실상 의료 붕괴가 일어났다. 우리가 2차 대유행에 잘 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구·경북에서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병상과 인력을 체계적으로 동원하지 못했고, 그 결과 중환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야 할 환자의 절반 이상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지 못했다. 사망 환자 중 70%는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지 못했다. 사망 환자 대부분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쳐가는 보건소·공공병원 인력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입장객들. 유럽에선 최근 코로나19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입장객들. 유럽에선 최근 코로나19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의료 붕괴가 일어난 이유는 병상과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대구 지역 대형 병원들의 병상은 75% 이상이 비어 있었고 중환자실은 절반 이상 비어 있었다. 다만 정부가 비어있는 병상을 동원할 시스템이 없었다. 군의관·공보의와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 인력이 있었지만 이를 적절하게 활용할 시스템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중환자 근무 경력이 없는 간호사가 중환자실에 배치됐고 중환자 진료를 흔히 하지 않는 전문과목 의사가 중환자실에 배치됐다.

정부는 이 같은 의료 붕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2차 대유행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처럼 많은 환자가 생겼을 때 민간 병원과 공공 병원을 아울러 병상과 인력을 동원하는 체계도 구체화돼 있지 않다. 코로나19와 6개월 넘는 장기전으로 보건소의 방역 인력과 공공 병원의 의료 인력은 점점 더 지쳐 가는데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 아프면 쉬라고 하면서 정작 유급 병가는 도입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에겐 시간이 있었다.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로 떨어진 4월 초부터 넉 달이 지났지만, 정부는 2차 대유행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겉으로는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말했지만, 야심 차게 내놓은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는 경제만 있고 방역 대책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K방역의 성공에 취해 2차 대유행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첫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던 호주·홍콩·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최근 확진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이들이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확진자 수가 다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 때문에 봉쇄가 풀리고 사람들이 지쳐서 느슨해진 사회적 거리 두기의 빈틈을 높은 전파력을 가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파고들고 있다.

코로나19 재유행 보이는 유럽국가들

코로나19 재유행 보이는 유럽국가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먼저 코로나19 환자 발생에 대비해 체계적으로 병상과 인력을 동원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공공 병원을 우선 동원해 초기에 발생한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민간 병원은 비응급환자 진료를 미루고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병상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비응급환자 진료만 중단해도 매일 병원 병상의 약 10%를 확보할 수 있다.

민간 병원을 동원하기 위해서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19 중환자 1명을 간호하는 데 4배 더 많은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환자실 입원료는 약 2배 인상돼야 한다. 병동 단위로 병상을 동원하면 다른 환자가 입원할 수 없기 때문에 빈 병상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부족한 중환자 간호사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적어도 한 달 이상 약 1만5000명의 병동 근무 간호사에게 중환자 간호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별로 없다.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응급환자 진료가 모두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응급실의 진료 구역을 구분해야 한다. 시설을 바꾸는 공사도 해야 하고 진료 체계도 새로 짜야 한다. 그래야 경북 경산에서 17살 고등학생이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제대로 진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선 방역 시·도와 보건소 인력 충원 시급

코로나19 환자 진료의 컨트롤타워도 있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지휘 아래 시·도별로 권역 감염병 병원이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고, 적절한 병원으로 환자를 배정하는 계획을 세우고 훈련도 해야 한다.

시·도와 보건소의 방역 조직도 확충하고 인력도 충원해줘야 한다.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국 보건소당 선별 진료와 역학조사 인력을 7명씩 모두 약 2000명 정도 충원해줘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인력과 조직은 늘리면서 일선 방역을 맡은 시·도와 보건소 조직과 인력은 지쳐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에겐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의료 붕괴를 올겨울 대한민국에서 우리 눈으로 목격할 수도 있다.

2차 대유행 대처 못하면 참담한 결과 초래

우리나라에 코로나19 2차 대유행은 정말 올 것인가? 만약 온다면 어떤 양상으로 올 것인가? 팬데믹의 역사와 전 세계 코로나19 발생 양상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보자.

1889년 발생한 러시아 독감에서 2009년 조류인플루엔자까지 모두 9개의 호흡기 바이러스 팬데믹 중 5개 팬데믹에서 2차례 이상의 대유행이 발생했다. 현재 코로나19의 2차 유행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관찰되고 있다. 첫 유행에 잘 대응하지 못한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대응한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재유행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의 재유행 양상은 스페인 독감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독감 바이러스와 달리 계절성이 뚜렷하지 않아 산발적이고 지속적인 재유행이 지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에 1차 대유행 이후 여름에 잦아들었다가 겨울에 2차 대유행이, 다음 해 봄에는 다시 3차 대유행이 발생했다.

지금 한여름인 북반구와 한겨울인 남반구에서 동시에 코로나19 재유행이 발생하는 것도 계절성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반구의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남반구의 호주·뉴질랜드에서도 재유행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재유행은 작은 규모에 그칠 수도 있지만, 첫 유행을 넘어서는 대규모 2차 대유행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과 경제적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유행 규모는 첫 유행 규모에 버금간다.

우리나라에서 대구·경북을 넘어서는 대규모 2차 대유행이 발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코로나19와 첫 유행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그렇다고 재유행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반면 재유행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국민 생명과 경제를 책임지는 정부라면 코로나19 2차 대유행에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 맞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