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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애국가를 부정한 김원웅 광복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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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축사는 도가 넘어도 보통 넘은 게 아니다. 김 회장은 기념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결탁했고,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애국가)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직함도 생략한 채 ‘이승만’이라고 불렀다.

이 전 대통령은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지냈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건국 대통령’이다. 그는 해방 직후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북한 김일성 일파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급박한 상황에서 일부 친일 경력 인사를 기용한 측면은 있다. 그렇다고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결탁했다는 주장은 가당찮은 억지다. 더구나 한국전쟁과 광주 5·18항쟁 등 행사에서 불렀고, 올림픽 등 국제행사에서 애창하는 국민 마음속의 애국가를 부정하는 김 회장의 인식은 심각하다.

김 회장은 심지어 “국립현충원에는 친일 군인을 비롯한 반민족 인사 69명이 안장돼 있다”며 이들에 대한 파묘(破墓)를 주장했다. 서울 국립현충원은 독립유공자만의 묘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헌신한 유공자를 모시는 곳이다. 처음엔 한국전쟁 전사자를 안장하기 위해 조성됐다. 일제에 현저하게 협조했거나 적극적인 친일 행적이 있었던 경우엔 안장하기 전 보훈심사에서 이미 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 태어나면서부터 일제였던 당시 생존을 위해 산 게 일제에 협조한 것처럼 보였을 수는 있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친일로 매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 회장의 광복절 발언은 크게 지나쳤다. 그래서 그의 발언에 정부의 연이은 실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렸지 않았는지 의심을 받는다.

김 회장의 축사를 청와대가 사실상 묵인했다는 점도 문제다. 광복절 기념식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청와대가 김 회장의 축사 내용을 미리 알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아무런 사전조율을 하지 않았다면 김 회장의 억지에 동조한 것과 다름없다. 친일 논란은 이미 75년 전의 얘기다. 지금은 코로나19 위기에 미국과 중국의 2차 냉전,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문명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다.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역사에 발목 잡혀 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현충원 친일 파묘법’ 추진도 중단해야 한다. 애국가를 부정하고 국민에게 상처를 주며 혼란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인물이 광복회장 자리에 계속 있어도 되는지 국민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