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특사 "아시아 동맹국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 협의중"

중앙일보

입력 2020.08.16 15:17

업데이트 2020.08.16 16:10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 폐기 협정(INF)'에서 공식 탈퇴한 뒤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캘리포니아주 샌니콜라스 섬에서 실시된 중거리 순항(크루즈)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새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일본 등에 배치하길 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 폐기 협정(INF)'에서 공식 탈퇴한 뒤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캘리포니아주 샌니콜라스 섬에서 실시된 중거리 순항(크루즈)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새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일본 등에 배치하길 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아시아 각국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중 갈등이 폭주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에 중국을 겨냥한 미 전략 무기가 배치되면 군사적인 긴장이 끓어오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INF 탈퇴 후 사거리 1000㎞ 미사일 개발
中 겨냥한 미사일 배치에 韓 입장 난처
"시진핑 방한 서두르는 건 배치 막겠단 의지"
日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도 지지 표명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에 곤욕을 치렀던 한국엔 또 다른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마셜 빌링슬리 미국 대통령 특사(군축 담당)는 16일 게재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은 협의 사실을 밝히면서 "중국의 핵전력이 초래하는 중대한 위협뿐만 아니라 동맹국을 지키는 능력에 대해 아시아 관계국과 협의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취임한 빌링슬리 특사는 미 국무부 차관(군축·국제안보 담당)에 지명돼 현재 미 의회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셜 빌링슬리 미국 대통령 특사가 지난달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빌링슬리 특사는 미 국무차관에 지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셜 빌링슬리 미국 대통령 특사가 지난달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빌링슬리 특사는 미 국무차관에 지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냉전 말기 미·소 간에 맺었던 '중거리 핵전력 폐기 협정(INF)'에서 지난해 8월 탈퇴한 뒤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천명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사거리 1000㎞ 전후의 지상 발사형 순항(크루즈) 미사일이 주력이다.

그런데 사거리상 서태평양의 미군 교두보인 미국령 괌에선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배치해야 중국의 심장부를 겨눌 수 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INF 탈퇴 직후 "배치 국가가 어디가 될지 미래 가능성을 추측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했다. 그러나 빌링슬리 특사는 한국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동맹국과 협상 중"이라는 점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미국 중거리핵전력(INF) 탈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미국 중거리핵전력(INF) 탈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반접근·지역거부(A2AD·Anti Access Area Denial)'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사시 미 해군 항공모함 등이 이 지역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전략의 요체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군사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억지 차원에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한다. 대만해협 등 중국 주변에서 미·중 간 충돌이 현실화하면 중국의 핵심 군사시설 등을 즉각 타격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또 다른 노림수도 있다. 미국은 INF 탈퇴의 가장 큰 이유로 중국의 불참을 들었다. 중국을 포함한 미·러·중 3국이 새로운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중국의 가입을 압박할 가장 좋은 무기인 것이다.

중국은 당연히 이런 전략 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미·일 간 미사일 배치 협의 소식에 발끈한 중국은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중국의 문 앞에서 도발하는 것으로,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필요한 모든 조처로 단호히 반격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지정학적 계략의 희생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자국 영토에 미사일 배치를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중 갈등은 무역과 안보 차원에서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중 갈등은 무역과 안보 차원에서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한국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가 가시화되면 사드 배치 때처럼 중국이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바라본다. 일각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 일정을 앞당기려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는 "트럼프 정권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모습에 중국은 긴장하고 있다"며 "시진핑 방한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외교라인 교체를 주목하기도 한다. 교수 시절 사드 배치를 강하게 반대했던 최종건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이 14일 외교부 제1차관에 발탁된 것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한편, 빌링슬리 특사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려하는 일본의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 대해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파트너로서 일본의 군비 증강을 부추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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