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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폐막식의 그 컴퓨터 음악…작곡가 강석희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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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감정적 아닌 지적인 실험"이라 주장했던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 고 강석희 선생. [중앙포토]

"음악은 감정적 아닌 지적인 실험"이라 주장했던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 고 강석희 선생. [중앙포토]

‘윤이상의 제자, 진은숙의 스승’. 한국 현대음악사의 중심적 인물인 작곡가 강석희 선생이 16일 오전 1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실험적 음악의 선두주자로 특히 컴퓨터로 만든 음향을 음악에 도입한 1세대로 꼽힌다. 1966년 작곡한 ‘원색의 향연’은 국내 최초로 전자 음향을 사용해 당시 세계적 흐름으로 시작되던 전자음악을 한국에 소개한 작품으로 꼽힌다. 88년 서울올림픽 땐 폐막식 음악감독을 맡아 혁신적 음악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성화가 타오를 때 나오던 음악에서 트럼펫 소리에 컴퓨터 사운드가 이어지도록 작곡한 이가 고인이다.

'세상에 없던 소리'로 이뤄진 그의 작품들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에서 일찌기 고인의 작품을 연주했다. 스스로 “내 작품의 초연은 80% 이상이 외국에서 이뤄졌다”고 할 정도다.

진보하는 기술, 새로운 철학을 도입한 고인의 작품 바탕엔 음악이 감성적인 대신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생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작품에서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작곡은 하나의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며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음을 구조화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이력은 이같은 실험정신의 토대다. 경성공고에서 토목을 배우고 서울대 음대를 거친 후 유학한 베를린 공과대에서 통신공학을, 음악대에선 작곡을 배웠다. 전기와 기계 등에 대한 해외의 잡지를 모아 탐독하면서 전자음악이라는 세계를 열었다. 윤이상 선생이 투옥 중 천식으로 국내 병원에 입원했던 68년 한 해동안 매주 병상을 찾아 그로부터 당시 유럽 음악의 최신 경향을 익혔다. 이후 독일로 건너간 윤 선생을 좇아 70년 베를린 유학 길에 올라 본격적으로 사사했다. 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 음대에 재직하면서 진은숙(59)을 비롯한 작곡가들을 길러냈다.

2014년 팔순 기념 음악회에서 고인은 “곡마다 다른 성격으로 내가 나를 흉내내지 않는 것, 쓸데 없는 감정적 소리를 뽑아버리는 작곡을 계속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했다. 당시 음악회에서 새로 작곡한 비올라 샤콘느를 발표했을 정도로 왕성한 현역이었다. 당시 음악학자 서정은은 “80년대부터 강석희의 음악적 사고는 당시 한국음악계에 비해 한 세대 앞서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서울대 음대의 명예교수,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종신 명예회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5시 30분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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