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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시문 능했던 연산군, 차라리 풍류객으로 살았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3)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경회루는 2층 누각이고 모두 35칸이다. 경회루가 가지는 이 수치의 의미는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사진 pixabay]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경회루는 2층 누각이고 모두 35칸이다. 경회루가 가지는 이 수치의 의미는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사진 pixabay]

경회루는 바닥면적 933㎡(282평)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경회루가 경복궁 서쪽에 지어진 목적은 불을 물로써 제압하려는 데 있었다. 경회루는 2층 누각이고 모두 35칸의 큰 집이다. 경회루가 가지는 이 수치의 의미는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 조상은 집을 지을 때 건물을 자연의 원리에 적용하려 했고 인간도 그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했다. 즉 자연과 하나 되는 집을 짓고 내가 그 안에서 하나 되어 어울리는 동양인의 자연관이며 우주관이다.

고종 때의 대신이었던 정학순(丁學洵)이 폐허로 남아 있던 경회루 터의 주춧돌을 자세히 살펴보고, 관련 문헌을 조사해『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와 범례로 『경회루삼십육궁지도(慶會樓三十六宮之圖)』를 저술하였다. 1865년 정학순이 쓴 『경회루 36궁지도』를 살펴보면 경회루에 담긴 건축 사상적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이 책은 경회루가 중건되기 전에 쓴 것으로 생각되는데 경회루의 평면 구성에 주역으로 해석하는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동양적 우주관을 형상화한 경회루가 갖는 건축적 특징은 평면구조, 칸수, 기둥 수, 부재 길이 및 문짝의 수 등에 『주역』의 이론을 적용해 신선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경회루의 건축적 요소는 모든 것이 『주역』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었다.

경회루의 평면 구조를 보면 정면이 7칸, 측면이 5칸이다. 경회루 2층의 내진주로 둘러진 가운데 3칸 마루는 단을 높여 설치했다. 연회가 펼쳐지는 동안 왕께서 자리하는 핵심공간으로 그 구조의 방향으로 위계를 세우고 있다. 중앙의 3칸이 가장 높고, 3칸을 둘러싼 마루는 한 뼘 낮게 설치했다. 바깥 마루 역시 또 한 뼘 정도 낮다. 높이가 다른 경계 구역엔 분합문을 달아서 문을 내리면 폐쇄된 공간이 되고 열면 터진 마루가 된다.

중심부의 3칸 마루는 정당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의미하고 그것을 둘러싼 8개의 기둥은 8괘를 상징한다. 그리고 중심부를 둘러싼 낮은 마루 12칸은 헌(軒)이며 1년 열두 달을 상징하고 이를 둘러싼 기둥 16개 사이의 문은 4짝씩으로 모두 64짝의 문은 64괘를 의미한다. 바깥 마루의 20칸은 낭무로서 24개 기둥은 24절기를 상징한다. 이와 같이 경회루는 유교 이념을 치국의 기본이념으로 삼은 조선 왕조의 사상체계가 구조화되어 건축에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견문과 임금의 덕

경회루에 이르는 다리는 모두 세 개인데 이중 가장 남쪽의 것이 어교(御橋)이다. 이곳 이견문 안쪽 다리에만 삼도가 펼쳐져서 어도가 설치되어있다. [사진 pixabay]

경회루에 이르는 다리는 모두 세 개인데 이중 가장 남쪽의 것이 어교(御橋)이다. 이곳 이견문 안쪽 다리에만 삼도가 펼쳐져서 어도가 설치되어있다. [사진 pixabay]

경회루 동쪽에 복원한 담장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북쪽으로부터 자시문(資始門), 함홍문(含弘門), 이견문(利見門)이다. 수정전 북쪽 밖에서 탁 트인 경회루의 전경을 다 보았으므로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릇 집이란 그 주인 된 사람이 즐기던 자리에서 보아야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수정전 쪽에서 보던 경회루의 느낌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동편 담장 쪽으로 꺾어지기만 하여도 벌써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회루의 높은 담장이 주는 느낌은 사뭇 장중하고 위엄을 갖춘 격이 있다.

경회루에 이르는 다리는 모두 세 개인데 이중 가장 남쪽의 것이 어교(御橋)이다. 이곳 이견문 안쪽 다리에만 삼도가 펼쳐져서 어도가 설치되어있다.

주역에 등장하는 건(乾)괘는 하늘을 의미한다. 이 양으로 된 건괘(☰)를 두 번 쌓아 놓으면 중천건(重天乾)괘가 된다. 이견문의 이름은 중천건괘의 해석에 ‘현룡재전 이견대인(見龍在田 利見大人)’과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에서 따왔다. 이 말은 지금 나타난 용이 밭(땅)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또 비룡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뜻으로 모두 임금의 덕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회루는 조선 왕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이 아름다운 풍경과 감흥을 제대로 즐긴 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쫓겨난 패주 연산군이었다. 사진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 역의 정진영.

경회루는 조선 왕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이 아름다운 풍경과 감흥을 제대로 즐긴 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쫓겨난 패주 연산군이었다. 사진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 역의 정진영.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말은 임금의 자리에서 해석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훌륭한 인재(대인)를 만나야 이롭다는 뜻이고 신하 또한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나야 세상에 그 뜻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이다. 왕은 뛰어난 인재를 구해 국정을 이끌어가고 신하는 어진 임금을 만나 자신의 학문을 펼쳐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니 둘이 서로 잘 만나야만 이롭다는 뜻이 바로 이견대인이다. 이견대인은 경사스러운 연회에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서 서로 만난다는 뜻인 경회(慶會)와도 통하는 의미이다.

그래서 임금의 처소인 강녕전과 가장 가까운 이견문 안쪽 다리에는 훌륭한 인재를 구하는 어진 임금이 밟는 어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제 다리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다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 돌을 자세히 보면 사각기둥을 마름모꼴로 세워 물의 저항을 줄였다. 아주 간단한 방향 돌림인데 알고 보면 옛사람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견문으로 출입한 조선의 임금이 모두 다리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군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경회루는 조선 왕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이 아름다운 풍경과 감흥을 제대로 즐긴 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쫓겨난 패주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은 시적인 감성이 풍부해서 시문에 능하고 음악을 좋아했으니 차라리 임금의 자리보다는 풍류객으로 살았더라면 역사에 아름다운 기록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경회루는 물길에 둘러싸인 섬에 세워진 전각이다. 2층 누각에서 먼데 경치를 바라보면서 시원한 풍광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연못에 배를 띄워 물놀이를 즐기는 연회는 또 다른 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경회루 기단 서편에는 물에 다가갈 수 있는 계단을 두어 연못에 배를 띄울 수 있도록 하였다.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쌓고 산 위에 봉래궁과 일궁(日宮)·월궁(月宮) 등을 지어 놓고 금은 비단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흥청(興淸)에게 풍악을 연주하게 하고 황룡주(黃龍舟)를 타고 만세산을 오가며 풍류를 즐겼다.

연산군일기 62권, 연산 12년(1506) 4월 8일 정사 6번째기사
경회루 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고 위에 봉래궁 등을 만들어 꾸미게 하여 놀다

왕이 명하여 경회루 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고 산 위에 봉래궁(蓬萊宮)·일궁(日宮)·월궁(月宮)·예주궁(蘂珠宮)·벽운궁(碧雲宮)을 만들어 금은 채단 금각(金銀綵段錦殼)으로 꾸미니, 찬란한 금빛이 햇볕에 빛나는데, 흥청(興淸)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또 수백 명이 탈 수 있는 황룡주(黃龍舟)를 만들고 채단으로 꾸며, 상(上)이 그 용주를 타고 만세산을 왔다갔다 하였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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