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새벽 기차에서 일과 시작…시공 초월 모바일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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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30)

새벽 5시 34분. 경기도 경강선 종착지인 여주역에서 출발하는 첫 기차 시간이다. 갑자기 잡힌 조찬 모임으로 새벽 4시에 기상해 때아닌 출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새벽공기다. 그 새벽공기 사이로 눈앞에 펼쳐지는 여명을 바라보며 역으로 향하고 있다. 싱그러운 새벽공기를 크게 들이 마시며 왠지 아침을 내가 제일 먼저 여는 거 같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났다. 내 마음은 어느새 날개를 달고 여주 새벽길을 날고 있었다.

첫차 출발 3분 전 여주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역시 나 혼자 인가 보다 하고 계단을 빠르게 올라 기차 탑승구 입구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들이다. 한두 명이 아니다. 다른 칸에도 눈이 갔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른 새벽부터 아침을 여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다행이 빈 좌석이 여러 개 있었다. 몇 개 역을 거치는 동안 열차안은 빈자리도 없이 탑승객으로 분비기 시작했다. 종착역인 판교까지 열차는 만원인 채 달리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들은 열이면 열 모두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간간히 졸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만 다들 시선은 들고 있는 휴대폰에 있다. 이러한 광경이 낯설지가 않다. 미래 공상영화 한 장면 속으로 갑자기 와 있는 느낌이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몇 개 역을 거치는 동안 열차안은 빈자리도 없이 탑승객들로 분비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이른 새벽부터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몇 개 역을 거치는 동안 열차안은 빈자리도 없이 탑승객들로 분비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시간도 바뀐 듯하다. 아마 우리는 2020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2030년의 세상을 미리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입행원 시절이 떠오른다. 영문 타자기 앞에서 서류 작성 중이다. 대외적인 공식서류나 내부 서류 문서는 오타를 치면 안 된다. 금융서류이니 문장의 오타는 물론 숫자에 쉼표(,)나 마침표(.) 하나 잘못치면 절대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항상 미리 손으로 종이에 또박또박 적어놓고 철자, 금액, 날짜 및 문법을 사전 점검하고 또 점검한 후 타이핑에 들어간다. 종이에 쓰인 대로 조심스레 타이핑해간다. 마지막 한 줄, 거의 다됐구나 하는 순간 그만 오타가 난다. 아, 탄식과 함께 지금까지 타이핑한 서류는 타자기에서 미련 없이 뽑혀 어느새 내 손안에서 구겨지고 있다. 이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내 던져진다. “도대체 몇 번째야, 오늘따라 왜 이러지….”

어느 날 데스크용 PC가 주어졌다. 난생 처음 보는 화면, 본체, 자판기가 책상을 꽉 채운다. 워드스타플로피 디스크를 본체에 삽입하면 화면에 사용메뉴가 보인다. 메뉴에 따라 자판기에 타이핑하자 화면에 글자가 나온다. 오타가 나와도 걱정이 없다. 자판기 위 백스페이스키를 열심히 눌러가며 지우면 된다. 지운 자리에 바로 수정이 가능하다. 상사의 수정 또 수정지시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저장된 서류를 열어 필요한 부분만 수정 타이핑 하면 된다. 그리고 PC와 연결된 프린터로 인쇄하면 끝. 문서작성의 신세계가 열렸다.

어느날 내게 주어진 데스크용 PC로 문서 작성의 신세계가 열렸다. 저장된 서류를 열어 필요한 부분만 수정 타이핑 하면 되었고, PC와 연결된 프린터로 인쇄하면 끝이었다. [사진 pixabay]

어느날 내게 주어진 데스크용 PC로 문서 작성의 신세계가 열렸다. 저장된 서류를 열어 필요한 부분만 수정 타이핑 하면 되었고, PC와 연결된 프린터로 인쇄하면 끝이었다. [사진 pixabay]

얼마 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그램과 로터스123 프로그램이 286PC에 제공됐을 때 내 눈이 또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컴퓨터 강의에 매료됐었다. 교수님의 칭찬에 힘입어 프로그램을 배웠다. 대형컴퓨터에 연산을 하기 위해 플로우 차트와 코볼언어 포추란언어로 코딩도 했다. 그 매력적인 대형컴퓨터 연산기능이 내 눈앞에 로터스123 스프레드시트와 매크로프로그램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날이면 날마다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286PC와 마이크로소프트 세계에 빠져들어 갔다. 랩탑PC가 등장했을 때 탄성을 했다. ‘슈퍼컴퓨터가 내 품 안에 안기다니!’ 5㎏ 가까운 무게도 무겁지 않았다. 386, 486, 586으로 진화 하는 동안 내 무릎에서 노트북PC는 떠나질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전산기기의 얼리어답터가 됐다.

2000년대 중반 블랙베리를 사용하는 외국 직원이 한국에 와서 손바닥만 한 메일 박스라고 자랑하며 이메일을 자유자재로 작성하고 주고받을 때 부러웠다. 한국에도 도입되어 블랙베리가 손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블랙베리를 잠잘 때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해외 출장이나 국내에서도 블랙베리를 들고 다니지 않으면 인터내셔널 임원이 아니었다. 엄지족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포노사피엔스, 신인류 시대, 언택트 시대. 나도 어느새 휴대폰으로 몸을 숙인다.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고, 주요 기사를 확인한다. 메일과 문자도 다시 한번 점검한다. 필요한 분에게 답신과 문자를 작성한다. 이미 엄지족에서 터치족으로 변한 지 오래고 이제는 터치펜이다. 오타가 발생했다. 백스페이스로 쉽게 지우고 정정. 펜으로 문장을 지날 때 단어 위에는 바른 철자 단어가 깜박거린다. 펜으로 터치해 툭 쉽게 수정한다. 그리고 발송키를 터치한다.

하루 일과를 휴대폰으로 시작해서 휴대폰으로 마무리한다. 앞으로 더 다양한 플랫폼들이 세상을 지배할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잘 이용하고 나만의 차별화된 콘텐트를 가져야만 살아남는다. [일러스트 강경남]

하루 일과를 휴대폰으로 시작해서 휴대폰으로 마무리한다. 앞으로 더 다양한 플랫폼들이 세상을 지배할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잘 이용하고 나만의 차별화된 콘텐트를 가져야만 살아남는다. [일러스트 강경남]

아차! 깜박했다. 송금을 해야 한다. 송금전용 앱에서 터치 몇 번, 지문 한 번으로 송금도 오케이다. 오늘 저녁 밥상 식자재도 미리 주문해 놓는다. 그러는 사이 6시가 되자 방해금지모드가 해지되면서 SNS를 통해 밤새 대기 중이던 세상 속의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제 하루 일과를 휴대폰으로 시작해서 휴대폰으로 마무리한다. 세상이 이 안에, 내가 이안에 들어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플랫폼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잘 이용하고 나만의 차별화된 콘텐트를 가져야만 살아남는다고들 한다. 새로운 시대, 급변하는 온라인 모바일세상에서 과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휴대폰에서 문자알림 진동이 울린다. 엄마로부터 온 문자다. 84세 우리엄마. 2년 전 스마트폰을 손에 든 엄마는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었다. 돋보기 너머로 자판연습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 연습한 후 이제는 문자, 노래, 사진, 동영상을 즐기면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왜 진작에 이런 것을 몰랐을까.”

아침 햇살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이른 새벽 첫 열차를 타고 각자의 일로 아침을 먼저 여는 이들의 휴대폰 위로 햇살이 빛난다. 우리는 지금 달리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다시 한번 힘차게 오늘을 시작하자!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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