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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만, 전략적 접근 가속화…중국 공산당과 이념전쟁 불 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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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대만이 서로 급속하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의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9~13일 대만을 방문한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의 각료가 공식 외교관계가 없는 대만을 찾은 것은 미국-대만 관계에서 획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台北)를 방문한 미국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단교 뒤 미국 각료급 인사의 대만 방문은 6년 전인 2014년 지나 매카시 환경보호청장 이후 처음이다.

미 보건장관 방역협력 대만 방문 #미·중 대결 속 이례적 행보 눈길 #대만, 경제 이어 방역 모범 평가 #권력집중 방지할 5권분립제 채택 #공직인사·감사원, 독자활동권 보장 #동아시아 탈권위·민주 모범국가로 #에이자 장관, 대만 민주주의 칭송 #미-대만 이념의 끈으로 연결 시도 #‘미스터 민주주의’ 리덩후이 조문 #리 전 총통, ‘대등한 양안관계' 추구 #미국과 대만 전략적 동반 강화 #대만의 미 활용, 21세기 생존술

대만을 방문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10일 타이베이의 총통 관저를 찾아 국부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에이자 장관의 옆에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보인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를 찾은 최고위급 미국 관리다. AP=연합뉴스

대만을 방문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10일 타이베이의 총통 관저를 찾아 국부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에이자 장관의 옆에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보인다. 에이자 장관은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한 뒤 타이베이를 찾은 최고위급 미국 관리다. AP=연합뉴스

미·중 관계 최악 상황에서 대만 방문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은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들어 무역 전쟁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 공방, 지식재산권 스파이 행위 등을 둘러싸고 갈수록 거세게 충동하고 있다. 급기야 미국의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명령과 중국의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 보복 폐쇄 등으로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중국을 국가명이 아닌 중국공산당(CCP)으로 부르면서 미·중 대결을 민주주의와 독재의 체제·이념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이뤄진 미국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의미와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살펴보자.

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8월 10일 타이베이의 총통 관저에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왼쪽)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8월 10일 타이베이의 총통 관저에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왼쪽)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 모범국 대만과 방역교류 명분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의 표면적인 목적은 방역 협력이었다. 인구 2380만 명의 대만은 중국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즉시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중단했으며, 철저한 추적조사와 능동적인 방역으로 확산을 저지했다. 그 결과 8월 15일 현재까지 확진자 481명에 사망자 7명의 피해에 그쳤다. 인구 100만당 20명의 확진자와 0.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대만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국가로 평가된다. 인구 5110만 명에 1만4770명의 확진자와 305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인구 100만 당 288명의 확진자와 6명의 사망자를 낸 한국과 더불어 세계적인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다. 인구 3억3100만 명에 540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17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미국으로선 방역 협력을 위해 대만과 교류를 확대할 명분이 있다. 미국은 인구 100만 당 1만6347명의 확진자와 514명의 사망자를 냈다.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이후 최고위급 인사인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월 913일 대만을 방무했다. 에이자 장관 일행을 태운 미국 특별기가 타이베이의 송샨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뒤로 타이베이의 상징인 101빌딩이 보인다. EPA=연합뉴스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이후 최고위급 인사인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월 913일 대만을 방무했다. 에이자 장관 일행을 태운 미국 특별기가 타이베이의 송샨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뒤로 타이베이의 상징인 101빌딩이 보인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에이자 장관은 대만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며 방역 협력 수준을 넘어서는 활동을 했다. 8월 9일 특별기 편으로 타이베이에 도착한 에이자 장관은 10일 오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만나 회담했다. 대만에서 사실상 미국 공관 역할을 하는 민간기구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제임스 모리아티 대표 등과 함께였다. 1979년 단교한 대만에서 최고지도자와 만나 거침없이 대화를 나눈 셈이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 천젠런(陳建仁) 전 부총통, 라이칭더(赖淸德) 전 행정원장과도 만났다.
에이자 장관은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대만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대만이 중국의 반대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지 못한 것을 거론하며 “내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에이자 장관은 대만의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안보·경제·보건 분야에서 친구이자 파트너인 대만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대만이 국민당 일당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지난 7월 30일 97세로 별세했다. 리 전 총통은 지난 2월 우유를 잘못 삼키는 바람에 폐렴 증세를 보여 인원 치료를 받아왔다. EPA=연합뉴스

대만이 국민당 일당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지난 7월 30일 97세로 별세했다. 리 전 총통은 지난 2월 우유를 잘못 삼키는 바람에 폐렴 증세를 보여 인원 치료를 받아왔다. EPA=연합뉴스

리덩후이 전 총통 민주주의 업적 칭송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은 이런 방역협력보다 민주주의 세력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 분위기다. 그는 12일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터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렸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분향소가 마련된 타이베이 빈관을 찾아 조문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1988~2000년 국민당 소속으로 대만 총통을 지낸 리 전 총통은 7월 30일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리 전 총통 조문은 에이자 장관 대만방문의 하이라이트로 평가할 수 있다. 리 전 총통의 정치적 유산은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이념과 일치하며, 중국에 맞선다는 점에서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만 총통을 지내면서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국민당 독재를 종식해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49년 중국 본토를 공산당에 빼앗기고 대만으로 옮긴 국민당이 해왔던 일당독재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대만의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리덩후이 전 총통을 운구하는 차량이 지난 14일 타이베이 보훈 병원을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리덩후이 전 총통을 운구하는 차량이 지난 14일 타이베이 보훈 병원을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리 전 총통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 교토대 농림경제학과에서 공부하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했다. 그는 종전 뒤 미국에 유학해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 코넬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정치에 뛰어든 그는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총통을 맡았다. 본성인은 1945년 이전에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한인을 가리킨다.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빼앗기면서 대만으로 이주한 국민당계 한인인 외성인(外省人)인과는 정체성이 다르다.
리 전 총통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는 한편, 베이징 당국의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양국론’을 주장하며 대등한 양안 관계를 추구했다. 대만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고, 공산주의 중국이 내세우는 일국양제 흡수에 대항한 셈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만인으로부터는 ‘국부’로 존경받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대독(臺獨·대만독립) 세력의 수괴’로 불렸다. 그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중국 앞에 당당했다. 중국 공산당에 그는 눈엣가시였다.

대만을 방문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타이베이 빈관에 마련된 리덩후이 전 총통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메모를 쓰고 있다. AP=뉴시스

대만을 방문한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타이베이 빈관에 마련된 리덩후이 전 총통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메모를 쓰고 있다. AP=뉴시스

대만과 미국을 민주주의의 끈으로 묶어

에이자 장관은 이런 리 전 총통의 분향소에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의례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민주주의라는 끈으로 미국과 대만을 하나로 묶었다. 일당독재를 추구하며 다당제도, 선거도, 정권교체도 없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과는 각을 세운 메시지다.
에이자 장관은 조문 전에도 리 전 총통에 대한 찬사를 그치지 않았다. 지난 10일 차이 총통을 만났을 때도 “리 전 총통은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20세기 전 세계 민주주의 조류의 중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11일 대만국립대학 강연에서는 리 전 총통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주주의자인 리 전 총통 추모를 내세워 중국공산당을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부건복지부 장관이 8월 12일 타이베이의 리덩후이 전 총통 분향소에 남긴 추모 메시지.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알렉스 에이자 부건복지부 장관이 8월 12일 타이베이의 리덩후이 전 총통 분향소에 남긴 추모 메시지. '리 전 총통의 민주주의 유산은 미국과 대만 관계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AP=연합뉴스

에이자 장관이 조문한 1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미국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와 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CAP)가 공동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대만이 자유·민주의 튼튼한 보루 역할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보위는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의 보루’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홍콩인에 대한 지원 입장도 재확인했다. 중국이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으로 홍콩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고 일국양제 체제 분열, 정권 전복, 테러조직 결성 및 활동을 예방·저지·처벌한다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자 대만은 홍콩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도 밝혀왔다.

지난 8월 14일 '민주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덩후이 전 총통의 장례식이 열린 대만 타이베이의 보훈병원에서 의사들이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장례 행렬이 지나는 것을 보고 있다. 대만에서 의료진은 코로나19를 이긴 영웅으로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 14일 '민주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덩후이 전 총통의 장례식이 열린 대만 타이베이의 보훈병원에서 의사들이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장례 행렬이 지나는 것을 보고 있다. 대만에서 의료진은 코로나19를 이긴 영웅으로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권력집중 막는 5권분립제 유지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과 함께 선거로 정권이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는다.  주목할 점은 대만의 독특한 권력 분산형 민주주의 제도다. 대만은 서구의 ‘3권분립제’와는 다른 ‘5권분립제’라는 독특한 민주주의·공화 제도를 채택해 권력집중을 막고 견제·균형을 유지하는 정부체제를 발전시켜왔다. 입법·행정·사법의 3권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서양식 공화·민주주의 제도에 고시권(考試權)과 감찰권(監察權)까지 분리한 제도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와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 들어선 뒤 국부 쑨원(孫文)이 제창해 확립됐다. 과거 권력자들이 공직자의 임면·배치·승진을 맡는 고시권과 행정부의 감찰·감사를 담당하는 감찰권까지 쥐고 견제받지 않으면서 독단과 전횡을 일삼았다는 인식 때문에 이를 독립시켰다.
5권분립 원칙은 중화민국 헌법에 수록됐고 오늘날 대만 정부는 행정원·입법원·사법원 외 고시원과 감찰원까지 5원이 병립하고 있다. 5원은 국가원수인 총통과 더불어 각 부문에서 최고권한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이다. 행정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원의 원장은 국회인 입법원의 동의를 얻어 총통이 임명한다. 이런 5원분립은 권력집중을 방지하고 전횡을 막는 기능을 한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EPA=연합뉴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 EPA=연합뉴스

공무원 중립과 감사 독립성 보장

특히 고시원과 감찰원은 4년 임기의 총통보다 긴 6년 임기의 위원이 운영한다. 이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당파를 초월하여 직권을 행사하고 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직권을 행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통령에 해당하는 총통과 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의 명령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도록 헌법이 보장한다. 고시원은 고시와 공무원의 임면·배치·승진을 담당해 한국의 중앙인사위원회와, 감찰원은 탄핵·수사·감사권을 행사해 한국의 감사원과 각각 유사하다. 대만은 한국으로 치면 중앙인사위원회와 감사원을 행정부에서 분리해 독립 조직으로 운영하면서 대통령과 총리와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도록 보장하는 셈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감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미, 트럼프 이후 대만 전략적 가치 중시

이러한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과 언행은 미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은 1979년 단교 뒤 대만과는 공식 외교 접촉은 자제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해왔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첫 취임(올해 1월 재선)하고 그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취임은 2017년 1월)하면서 미국과 대만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이던 그해 12월 차이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의 총통이 전화 회담을 한 것은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대만 국군의 훈련 장면. 최신 무기 공급이 늦어 장비가 낡은 편으로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국군의 훈련 장면. 최신 무기 공급이 늦어 장비가 낡은 편으로 평가 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에는 미국과 대만 관계가 급진전했다.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이 그해 2월 2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됐다. 미국 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9월 대만여행법을 발의하고 상원에 제출했지만 부결됐다. 하지만 대만여행법은 2017년 1월에 하원을 거쳐 5월 상원에 다시 제출됐으며, 결국 2018년 1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2월 28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만여행법의 첫 수혜자는 대만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19년 3월 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경유하며 미군 장성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세미나에도 참석해 “미국에 F-16V 전투기와 전차 구매를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고 “전 세계에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F-16V를 팔기로 했다. 이는 대만이 1992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투기 도입이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방식인 일국양제 방안으로 대만에 대한 통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잉원 총통의 대만은 이에 반대한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방식인 일국양제 방안으로 대만에 대한 통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잉원 총통의 대만은 이에 반대한다. AP=연합뉴스

대만 방위에 미국 역할 증대

이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미·대만 단교 이후 유지됐던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지적된다. 사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국교단절 직후인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고, 대만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미국 국내법임에도 내용은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대만이 국교는 단결하면서도 군사적 동맹관계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1972년 2월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 3개의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처음 언급했다. 1978년 수교 코뮤니케에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만과 공식적인 정치 관계는 단절하되 경제·문화적 관계만 유지하며, 미·중 양국이 국제 분쟁을 줄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8·17 코뮤니케에선 이전 코뮤니케에서 나왔던 대만 문제를 재확인했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 AFP=연합뉴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 AFP=연합뉴스

‘하나의 중국’ 인정하면서도 대만 지원

독특한 점은 8·17 코뮤니케 직전에 대만과 ‘6개 보장’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개 보장은 대(對)대만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수출 시 중국과 사전협상하지 않으며, 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979년의 대만관계법과 1982년의 6개 보장은 미국과 대만 관계의 기본 원칙이 돼왔다.
상하이 공동성명은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라고만 했을 뿐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렇게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 민간기관인 미국주대만협회(AIT)를 상주시키면서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해왔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한다.

대만을 방문한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간이 8월11일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뒤에 민간기구로 미국과 대만의 실질적인 공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만협회(AIT)의 로고가 보인다. 미국 국기는 게양되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을 방문한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간이 8월11일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뒤에 민간기구로 미국과 대만의 실질적인 공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만협회(AIT)의 로고가 보인다. 미국 국기는 게양되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주의, 미국과 대만 잇는 전략적 끈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국내법을 활용해 대만을 지원해온 셈이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만의 전략적 활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자 미국은 대만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은 이런 미국을 활용해 글로벌 사회에서의 전략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고슴도치 같은 대만이 미국과 전략적 결합을 강화하면서 중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만은 동중국해에서 거대한 ‘불침항모’로서 독자적인 생존력을 높이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동맹’은 미국과 대만을 이어주는 단단한 끈이 되고 있다. 대만의 21세기 생존 전략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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