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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트럼프에 백기투항? 퀄컴 자기편 끌어들인 절묘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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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를 읽다 ⑦ : 화웨이와 美퀄컴 커넥션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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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열이도 없고…종범이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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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계 최고 유행어다. 20여 년 전 팀의 핵심 선수였던 선동열과 이종범이 일본으로 떠난 뒤 김응용 당시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 답답함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TSMC도 안 되고…삼성전자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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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도 김응용 감독과 비슷한 심정이다.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반도체의 생산 길이 막혔다. 생산을 도맡았던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 TSMC가 발을 뺐다. 미국 CNBC에 따르면 TSMC는 화웨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의 98%를 생산해왔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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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부랴부랴 2위 업체 삼성전자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역시 거절당했다. 지난 5월 미 상무부가 화웨이와 거래하려면 미국산 반도체 생산장비를 쓰면 미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TSMC와 삼성전자 모두 미국의 서슬 퍼런 엄포가 두려웠다.

결국 화웨이는 두 손을 들었다. 

 위청둥 화웨이 소비자비즈니스그룹 CEO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9에서 스마트폰 '메이트 30'에 들어간 칩셋 기린 990을 소개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위청둥 화웨이 소비자비즈니스그룹 CEO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9에서 스마트폰 '메이트 30'에 들어간 칩셋 기린 990을 소개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독자 반도체 생산을 포기한 거다.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소비자부문 CEO는 지난 7일 열린 '차이나 인포100 서밋'에서 "다음 달 출시할 스마트폰 메이트40이 고급 사양의 기린 칩을 장착하는 마지막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의 자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 생산을 앞으론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유도 솔직히 밝혔다. 위 CEO는 이날 "우리는 (반도체)칩을 생산할 방법이 없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기린 같은 고성능 칩을 대량생산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고성능 칩셋 설계를 감당할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미세공정을 갖춘 파운드리 업체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이것만 보면 중국 '반도체 굴기'의 맏형인 화웨이. 그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상공세가 먹혀든 것처럼 보인다.

한 꺼풀 들어가 보자.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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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청둥 CEO가 반도체 생산 포기를 선언한 다음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흥미로운 보도를 한다. 미 반도체 업체 퀄컴이 화웨이에 모바일 AP를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 조치를 철회해 달라며 미국 정부에 로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화웨이가 반도체 생산을 포기한 것엔 나름 꿍꿍이속이 있었던 거고, 그 해답이 퀄컴이란 얘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무슨 말일까. 생각해보자.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화웨이의 ‘반도체 자립’ 꿈은 당분간은 이루기 어렵다. 업계 1, 2위 파운드리가 외면하지 않나. 다른 대안인 대만의 미디어텍과 중국의 SMIC는 프리미엄급 AP를 생산하기엔 기술력이 모자라다. 화웨이가 반도체를 설계하면 뭐 하나. 당장 생산해 줄 곳이 없는데.

그럴 바엔 전략을 180도 수정하는 게 낫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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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독자 반도체 생산은 접는 거다. 대신 고품질의 반도체를 수입해 스마트폰에 넣는다. ‘반도체 자립’의 꿈은 잠시 미뤄지지만 스마트폰 경쟁력은 유지된다.

그러면 어느 회사 반도체를 수입하면 좋을까. 퀄컴이다. 현재 모바일 AP 생산 회사 중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무엇보다 미국 회사다. 자국 제품 수출에 혈안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구미에 맞을 수 있다. 혹시라도 트럼프가 이를 계기로 관련 제재를 완화해 주면 더욱 좋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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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도 화웨이가 필요하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AP 시장에서 퀄컴은 33.4%로 점유율 1위다. 하지만 미디어텍과 삼성전자가 24.6%, 14.1%로 바짝 뒤쫓고 있다. 만일 퀄컴이 화웨이의 AP 물량을 이들 회사에 뺏기기라도 하면 점유율 1위는 바뀔 수 있다. 이런 불안감 속에 자사 AP를 화웨이에 판매하려는 퀄컴의 의지가 강하다는 게 업계 생각이다.

이미 화웨이는 퀄컴에 선물을 안겼다. 지난달 말 화웨이와 퀄컴은 특허료 분쟁을 마무리 짓고, 장기 특허 계약을 체결했다. 화웨이는 계약으로 미지불 특허 사용료와 향후 사용료 명목으로 퀄컴에 18억 달러(약 2조 1000억 원)의 합의금을 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퀄컴 주가는 급등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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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계획은 트럼프가 퀄컴의 화웨이 판매 제한 조치를 철회할 때나 가능하다. 격렬한 미중 갈등 속에서 트럼프가 퀄컴의 로비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화웨이의 진정한 의중을 아는 거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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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이 살아가기’도 각오하는 화웨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화웨이는 자사 상품의 미국 기술 비율을 0%로 만드는 '난니완(南泥灣)'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일전쟁 기간 산시성 시안시 난니완에서 황무지를 개척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자급했다. 미국의 제재를 외세 침공에 비유해, 어떻게든 견뎌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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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화웨이의 ‘반도체 생산 포기’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미국에 백기투항한다” 로 해석하는 건 큰 오산이다. 버티고 때를 기다린다. 그러기 위해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을 찾을 뿐이다. 화웨이와 퀄컴과의 연루설은 이런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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