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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경력 판사의 새로운 도전…코로나 외신자료집 12권 발간

중앙일보

입력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앙포토]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앙포토]

강민구(62‧사법연수원 1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외신 자료집을 발간했다. 5500쪽, 총 12권에 달하는 분량이다.

1988년 판사직을 시작해 창원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두루 거치며 판사로만 살아온 그는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이것을 ‘인연법’이라 부른다.

강 부장판사는 올해 2월부터 판사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개월의 연구년을 갖게 됐다. 태국 행정대법원의 초청을 받아 사법 정보화 구축, 방법론을 전수해 주기로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출국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제주도 한 달 살기도 계획했었지만 가족들이 비행기 탑승을 꺼려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코로나19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국내 기사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직접 10여 개국 이상의 코로나 관련 외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과 스마트폰의 노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꾸준히 정리하다 보니 방대한 분량이 완성됐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만든 '코로나19 외신 기사 정리집 12권' 표지와 목차 중 일부. [사진 강 부장판사]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만든 '코로나19 외신 기사 정리집 12권' 표지와 목차 중 일부. [사진 강 부장판사]

강 부장판사는 정치권이 두 패로 갈라져 정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비록 의료 비전문가이지만, 외신기사 자료집을 편집한 경험으로 보자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려면 치료제와 백신이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헌신적 의료진과 국민의 협조로 대처를 잘 해왔지만, 세계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백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지금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 부장판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 등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 메이저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 계약을 이미 맺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 백신 개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강 부장판사는 “한국도 치료제와 백신 독자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개발이 불가능하다면 합작이나 선 구매 계약과 같은 선제적 조치가 당장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러한 결과물을 네티즌과 공유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아날로그 방법인 종이책을 출판하기보다는 PDF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개인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며 어떻게 하면 쉽게 외신 기사를 번역할 수 있는지도 동영상으로 찍어 알렸다. 페이스북 친구는 4500명이 넘고, 팔로워 수도 3000명에 이른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기계 등에 관심을 가져 손자 세대보다 더 잘 활용하는 파워유저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중앙포토]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싫어하고, 구형 기계에 만족하며 다방면의 고수들이 무엇을 일러주더라도 익숙한 것과 다르면 차단벽부터 치는 행동을 ‘꼰대’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 건 아니다. 유튜브만 검색해도 모든 비법이 공짜로 제공되는 세상에서 독학으로 필요한 것을 익혔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땐 포털사이트에 검색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고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강 부장판사는 “각계 고수는 자신을 알아주고 묻는 팬에게 봉사하는 특질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분간 온라인 활동은 멈출 계획이다. 코로나19 외신 정리도 혼자서는 꾸준히 하겠지만, 외부와 공유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13일 법원에 복귀했고,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모든 사건에 더욱 사랑과 정성을 투입해 공정하고, 공평한 재판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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