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태양광, 주택 난개발···산사태는 몸살 난 산림의 비명

중앙일보

입력 2020.08.15 05:00

1000억 들였지만 흙탕물만…인북천의 비극 

지난 5일 강원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440㎜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가운데 북면 월학리 인근 인북천이 시뻘건 흙탕물로 돌변해 교량을 위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강원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440㎜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가운데 북면 월학리 인근 인북천이 시뻘건 흙탕물로 돌변해 교량을 위협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5일 인북천 물이 범람하면서 제방이 유실됐다. 인북천은 폭 70~100m에 제방 높이는 3m 정도다. 물이 넘치면서 인북천 주변 논과 밭이 침수되고 토사가 쌓이는 피해를 보았다. 피해 면적만 5㏊에 이른다.

5년간 여의도 면적 146배 산림 사라져 #난개발에 이은 침식→하천 퇴적 가속화 #강원 인북천 상류 경작지 개발로 범람 #폭우 못버틴 산지 태양광발전 곳곳서 피해 #전문가 “기후변화에 맞춘 사전 검토 강화해야”

 주민들은 이번 범람이 인북천 상류에서 쓸려내려 온 토사가 유속이 느려지는 서화리 인근에 쌓이면서 하상(河床·하천바닥)이 높아진 데다 유례없는 집중호우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광주(50) 인북천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양구 해안면에서 흘러드는 토사로 하천 곳곳에 있던 웅덩이 같은 소(沼)가 사라지고, 하상도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라며 “여기에 강바닥을 중장비로 준설하면서 모래톱 등이 생겨 물고기 등이 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인북천 범람은 수년에 걸쳐 상류에 조성한 경작지가 원인이다. 이 하천 유역인 양구 해안면 만대지구의 무·배추 등 고랭지 채소와 인삼·감자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경작지가 3000곳(1680㏊)이 넘는다. 벌채 면적이 넓어지자, 흙과 자갈은 지속해서 하류에 쌓여 물길을 바꾸고 범람을 유발했다. 인제군과 홍천군 등은 2001년부터 8년 동안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대형 침사지 준설, 물길 우회로 개설, 돌망태 설치 등 흙탕물 저감 시설을 설치했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토사 유출의 원인보다는 발생에 따른 대처에 집중돼 피해가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제군 관계자는 “과거 기준으로 보면 제방과 다리 높이 등이 문제가 없었는데 기후변화로 강수량 등이 늘어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낮은 측면이 있다”며 “응급복구 후 제방과 다리를 높이는 사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사태 유발, 물길 막아 하천 범람 ‘악순환’

지난 11일 오후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충북 제천시 대랑동의 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관계자가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1일 오후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충북 제천시 대랑동의 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관계자가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과거 1급 청정수였던 인북천의 비극은 무분별한 산림 개발이 낳은 결과다. 13일 산림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5년 동안 농지개간이나 택지조성, 도로 개설, 공장·골프장 조성을 위한 산지전용 허가 면적은 4만2528㏊(425.28㎢)에 달한다. 이 기간 여의도 면적의 146배 규모 산림이 각종 개발로 사라졌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산지 태양광발전이나 펜션, 도로 개설 등 산을 개발하는 행위는 형태만 다를 뿐 자연적인 침식과정을 거스르게 한다”며 “올해처럼 폭우가 내리면 지반이 약해진 곳이 무너지거나 토사가 유출된다. 인위적으로 만든 시설이 물길을 바꿔 멀쩡했던 곳에도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이번 집중호우에 산비탈에 설치한 태양광발전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땅값이 싼 임야를 벌목해 수백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산지 태양광은 산사태에 취약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남 함평군 매동마을에서는 지난 8일 뒷산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 단지가 연일 내린 비로 지반이 약해져 붕괴했다. 태양광 시설이 마을에 쏟아지면서 윤모(75)씨의 집 등 민가 2채가 매몰되기도 했다. 충북 충주와 제천에서도 태양광 패널이 농경지를 덮치고, 토사가 유출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수곤 전 교수는 “산을 깎아 인위적으로 개발한 태양광시설은 지하로 흘러가는 수량을 줄이고, 지표면에 흐르는 물을 증가시킨다”며 “산지 침식 현상이 지속하면 하천에 토사가 많이 쌓이고, 하천 바닥 수위가 높아져 장기적으로 잦은 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산림 개발 다양화…“환경영향평가 높여야”

지난 3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의 한 펜션에 토사가 덮쳐 소방당국이 중장비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펜션 사장 가족과 직원으로 추정되는 4명이 매몰됐으며 시신 3구가 수습됐다. [뉴스1]

지난 3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의 한 펜션에 토사가 덮쳐 소방당국이 중장비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펜션 사장 가족과 직원으로 추정되는 4명이 매몰됐으며 시신 3구가 수습됐다. [뉴스1]

 경기도는 도시 외곽에 산지를 개발한 소규모 주택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산지 소규모 주택 난개발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9년 경기도 산지전용 허가 건수는 3만9744건이다. 전체 허가 건수의 44.4%(1만7640건)는 펜션과 전원주택 등 소규모 주택 건설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산에 여러 주택이 들어서면서 성·절토가 횡행하고, 사면·옹벽을 무리하게 건축하면서 폭우와 지진 발생 시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외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산지관리법이 허용하는 경사도 기준 25도를 악용해 23~24도의 가파른 비탈에 시설을 짓는 경우가 많다”며 “산지전용허가시 평균 경사도를 낮추고, 옹벽이나 배수로 등 기반시설 설치에 대한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단지·도로 건설, 경작지 개발, 태양광발전 시설 등 산림 개발의 다양화에 따른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에 따라 산지 개발과정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와 사전재해영향성 검토를 현재 기준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며 “그만큼 사전 조사 비용이 많이 들 텐데 공공부문과 사업주, 주민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천·인제=최종권·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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