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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은 포도주에 그녀가 이름 새기자, 괴테는 붉게 타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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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호 24면

[와글와글] 괴테 『로마의 비가』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로마(ROMA)의 철자를 거꾸로 쓰면 아모르(AMOR)가 된다. 사랑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로마에 왔다가 사랑에 빠졌다. 그중 한 명이 괴테였다. 낮에는 고대문명을 연구하다가 해가 지면 선술집에서 예술가들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을 낙으로 삼던 어느 날이었다. 스튜와 비슷한 스투파토와 마카로니, 프리티라고 부르는 튀김이 술안주로 인기 높았다는 곳이다. 술을 날라 주던 여인이 그만 유리잔을 놓치면서 러브스토리는 시작된다.

ROMA 거꾸로 쓰면 ‘AMOR’ 사랑 #이탈리아 여행 왔다 운명적 만남 #포도주 서빙 여인에게 마음 뺏겨 #“탐욕 눈길로 그녀 손가락 바라봐” #맥주 아닌 와인 1~2병 매일 즐겨 #생애 마지막날 주문도 와인 한잔

“포도주는 탁자 위로 흐르고, 그녀는 고운 손가락으로 탁자에 포도주의 원을 그렸다. 나의 이름은 그녀의 이름으로 휘감겼고, 나는 탐욕의 눈길로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20대에 스타덤

괴테가 쓴 『로마의 비가』의 한 소절이다. 여인은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포도주 위에 이름과 숫자를 적어 약속 일시를 적었고, 괴테는 조용히 화답함으로써 뜨거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파우스티네, 메신저는 포도주였다. 시간이 흘러 귀국하게 되었을 때 시인은 이렇게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나라는 아름답다, 하지만 아! 파우스티네를 다시 볼 수 없다니. 고통을 안고 떠나는 이곳은 이제 이탈리아가 아니로구나.”

유명 작가와 로마 미녀의 로맨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로마를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 에피소드는 전설처럼 전해져,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의 노랫말을 쓴 시인 빌헬름 뮐러는 이렇게 묘사할 정도였다.

“괴테가 15번째 비가에서 묘사했던 기품 있는 모험의 현장인 그 선술집의 이름을 길이 간직하는 것은 우리 독일 화가들의 전통이다. 그 선술집은 ‘황금종’의 문양이 있으며, 유대인 거리에서 멀지 않은 마르셀루스 극장 광장에 있다.”

바이에른의 칼 루트비히 1세는 1866년 그 술집에 괴테의 사랑이 시작된 현장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게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그 술집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매혹적인 여인 파우스티네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녀는 실존했던 인물일까? 괴테는 끝까지 파우스티네에 관해 입을 다물었다. 다만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육체적인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추론이다. 1700통의 편지를 교환한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연애가 유명하지만 플라토닉 러브였다.

물론 문학은 현실의 복사품은 아니다. ‘엎질러진 포도주’라는 표현은 라틴 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던 ‘토포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 쓰이는 장소의 모티브로 다음 이야기를 암시한다. 와인을 통해 괴테는 작가로서 또 다른 기법에 눈을 뜬 것이다.

탈피(脫皮)는 괴테가 즐겨 쓰던 비유다. 껍질을 벗지 못한 뱀이 죽게 되는 것처럼 지식인은 구태의연함의 껍질을 벗겨 내지 못하면 실상은 죽은 존재라는 뜻이다. 괴테는 20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 명성을 뒤로하고 바이마르 공국으로 떠나 10년 동안 공직에 봉사한다. 1786년 9월 괴테는 또 한 번 탈피한다. 기득권을 버리고 홀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자기혁신을 단행하였다.

“나쁜 와인을 마시면서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구나!”

독일인이었지만 맥주보다 포도주를 즐겨 마셨던 괴테다. 로마 하숙집의 영수증을 보면 식사 때마다 포도주가 빠진 적이 없었다. 포도주는 인생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태어날 때는 난산으로 핏기가 돌지 않자 따뜻한 포도주로 명치를 문질러 줘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 괴테의 할아버지는 부인복을 만드는 재단사였지만 그가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포도주 거래 덕분이었다. 괴테의 아버지가 평생 직업 없이 지낼 수 있었고 괴테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바이마르 괴테의 집 지하 저장고에는 빈티지 와인으로 가득했다. 프랑켄 지역의 뷔르츠부르크 슈타인, 라인가우의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 호흐하임 등 독일 와인과 함께 프랑스의 부르고뉴, 랑그독, 샴페인, 이탈리아의 라클리마 크리스티, 스페인의 말라가, 헝가리의 토카이 등 다양한 포도주를 주문했다. 원고청탁을 거부하자 고급 포도주 한 상자를 보내서 마침내 괴테로부터 기고문을 받아냈다는 출판사 대표의 일화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괴테는 하루평균 1~2병의 와인을 마셨으며, 83세의 나이로 숨지던 날에도 마지막으로 주문한 것은 와인 한잔이었다.

“나쁜 와인 마시며 살기엔, 인생 너무 짧아”

“포도주 속에는 확실히 사람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모두 때와 장소에 달려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하나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해가 되기도 한다네.”

인생 말년에 찾아온 젊은 문학도 에커만에게 들려준 충고였다. 마차를 가리켜 ‘이동여관’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여행을 즐겨하던 괴테는 마차 안에 항상 메모수첩과 연필, 와인을 챙겨 두었다. 와인과 글이 결합한 ‘와글와글’ 인생답게 이런 명언도 남겼다.

“다른 이들이 (와인에 취해) 열정을 소진시켜 버릴 때 나에게 그 열정은 언제나 종이 위에 머물러 있었지.”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좋은 사람들과 음식이나 와인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식탁, 그리고 조용히 혼자가 되어 글을 쓰는 책상, 그 두 개의 테이블 위에 괴테의 행복은 숨어 있었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 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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