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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출신 7%가 영국 좌우…이튼 vs 공립학교 극과 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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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호 16면

[런던 아이] 계층차 너무 큰 학교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프리벳가 4번지에 사는 더즐리 부부는 자신들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총리 55명 중 46명이 사립 출신 #소설처럼 고풍스런 건물서 수업 #학비 고액이지만 학생들 큰 혜택 #93%가 다니는 공립은 환경 열악 #더 많은 장애물 넘어야 격차 줄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적 성공 스토리는 이 단순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다. 5억 부 이상이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이 쓴 해리포터는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출판됐다.

해리포터는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 현상이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어린이들이 해리포터를 읽으며 자랐다. 언젠가 호그와트에서 온 편지가 자신의 우편함에 들어 있는 날이 오리라 꿈꿨다. 그때가 되면 비밀열차를 타고 스코틀랜드에 있는 신비로운 기숙학교로 가서 마법을 배울 거라며 말이다.

입학부터 하우스(house)에 배정돼 경쟁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물론 마법은 꿈과 환상에 가깝지만 영국의 학교생활에는 해리포터 이야기와 닮은 부분이 있다. 나는 호그와트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영국 사립기숙학교에서 교육받았다. 해리포터에서처럼 차갑고 낡고 돌로 된 건물 안 우리만의 작은 세상 속에서 7년 동안 살았다.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입은 망토까지는 아니었지만 정장 교복을 입었고, 그리핀도르와 같은 하우스(house)에 소속돼 학교생활을 했다. 캠퍼스 곳곳에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했는데, 거기서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함께 생활했고, 친밀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유대감은 졸업 후에도 이어져 전 세계에 걸친 네트워크, 혹은 인맥으로 발전했다. 매 학기말 고사는 볼드모트와의 전투에 비견할 만했다.

해리포터에는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후플푸프, 래번클로라는 4개의 하우스(house)가 있는데, 해리포터 한글판에는 ‘기숙사’로 번역됐다. 하지만 영국 학교에서 말하는 하우스는 단순히 학생들이 숙식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국에는 사립학교뿐 아니라 상당수의 공립학교도 하우스 제도를 운용한다. 학생들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배정된 하우스에 소속된다. 그리고 해리포터에서처럼, 모든 학생은 학업뿐 아니라 스포츠 등 여러 활동에서 자신의 하우스를 위해 다른 하우스 학생들과 경쟁한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면, 호그와트마법학교 학생들은 그리핀도르 등 4개의 하우스에 나누어져 배정된다.

호그와트는 아름답고 깊은 산속 성에 있다. 소설 속에선 고전적 건축양식과 고립된 학교의 이미지가 강조돼서 표현되긴 했지만 실제 영국 사립학교들의 외관도 호그와트와 많이 닮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중세의 저택처럼 보이는 웅장하고 오래된 벽돌 건물이었다. 건물 뒤로 가면 수업하는 현대식 건물이 있었지만, 낡은 파사드(건물의 앞면)는 여전히 호그와트 성곽처럼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학교생활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영국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듯, 교육 시스템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진 계층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 상당한 액수의 학비를 지불하면 아이들은 호그와트와 같은 학교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류층이 가는 사립학교는 대체로 기숙학교다. 역사가 길고, 그래서 학교 건물도 오래된 곳들이다. 그중 일부는 해리포터처럼 망토처럼 생긴 교복을 입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으로 이튼 칼리지를 꼽을 수 있다. 이 학교는 1440년 헨리 6세가 설립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1811년에 설립됐으니 꽤 ‘젊고 진보적인’ 축에 속했다.

런던 중심부에 있는 공립 엘름그린학교. [사진 벤 머피]

런던 중심부에 있는 공립 엘름그린학교. [사진 벤 머피]

사립학교들은 역사, 영향력, 자본을 가지고 있고, 그 학생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큰 혜택을 받는다. 영국에는 약 2500개의 사립학교가 있다. 전체 학생의 7%에 불과하다. 나머지 93%는 공립학교에 다닌다.

7%의 사립학교 학생들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의회 의원 중 29%가 사립학교 졸업생이었다. 2018년 BBC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학생의 42%가 사립학교 졸업생이었다. 또 고위 법관의 65%, 고위공무원의 59%, 상원의원의 57%가 사립학교 출신이다.

2019년 실시한 영향력 있는 5000인에 대한 조사 결과 사립학교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 직업군은 프로 축구 선수뿐이었다고 한다. 총리의 경우 1721년 로버트 월폴 이후 55명이 있었는데, 이 중 9명만이 공립학교 출신이었다.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다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었다. 초·중·고등학교로 나누어진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달리 영국의 경우 크게 2개로 나뉜다. 만 4~11세는 초등학교(primary school), 만 11~18세는 중등학교(secondary school)에 다닌다. 나는 공립초등학교와 사립중등학교에 다녔다. 덕분에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공립학교 건물은 회색 직사각형 모습 비슷

잉글랜드 남부 서리에 있는 명문 사립 케이터햄학교. [사진 케이터햄학교]

잉글랜드 남부 서리에 있는 명문 사립 케이터햄학교. [사진 케이터햄학교]

많은 공립학교의 건물도 사립학교들처럼 오래됐다. 하지만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라기보다 무너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호그와트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만의 멋진 분위기를 조성하는 반면, 황폐한 많은 공립학교는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고 불편하게 한다.

다수의 공립학교 건물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어졌고, 상상 속에나 나오는 것 같은 마법의 성이라기보다 회색 직사각형의 모습을 한다. 이 건물들은 분명 그저 값싼 재료로 영국 전역에 공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비슷비슷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영국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호그와트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이 그곳에 있고 싶어한다. 그들은 학교생활에 대해 항상 기대하고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어느 학교에서든 의욕이 없거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사립학교에서라면 그런 학생들은 그 외에 다른 창의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돈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립학교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공립학교 학생들이라고 학업에 대한 압박이나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며, 학부모들도 자녀 공부에 관심과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사립학교처럼 부모가 자녀 교육에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고 발레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학교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학교나 교사들은 기금이나 자선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역 차이도 있다. 한 도시 내 비교적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는 투자도, 재정 지원도, 부모로부터의 지원도 적다. 가난한 지역 출신의 아이들은 교육과정 내내 동기를 부여받고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개인적인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해리포터 소설 속 호그와트 학교는 잘못된 환상을 보여 주는지도 모른다. 하우스가 있고, 교복을 입고, 조금 특이한 교사들이 있다는 건 비슷하지만 교육 시스템 내 계층의 차이는 너무 크다. 더 좋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에 따르는 직업과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사립학교에 다닌 학생들에게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 반면, 많은 공립학교 학생과 교사들은 같은 성공을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볼드모트와 싸울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영국의 교육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번역: 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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