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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 누가 더 기뻐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66)

미국 코넬대학교 심리학 연구소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경기 종료 순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연구원은 23명의 은메달리스트와 18명의 동메달리스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의 감정이 어떤지 1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미국 한 연구소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경기 종료 순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조사했다. 분석 결과 경기가 끝나고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트의 행복점수는 은메달리스트보다 높았다. [사진 pxhere]

미국 한 연구소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경기 종료 순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조사했다. 분석 결과 경기가 끝나고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트의 행복점수는 은메달리스트보다 높았다. [사진 pxhere]

연구소의 분석 결과 경기가 끝나고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 동메달리스트의 행복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은메달리스트의 행복점수는 고작 4.8점에 불과했다. 순위로만 본다면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었는데 행복의 크기는 반대로 나온 것이다.

연구소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도 분석했다. 은메달리스트는 “거의 ~할 뻔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적어도 이것만큼은 이루었다”는 만족감을 나타냈다. 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순위가 높은데 만족하지 못했을까?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와 성취 정도와 비교했다.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의 그것과 비교했다. 잘못했으면 4위에 그칠 뻔했는데 동메달이라도 획득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만족한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지인 중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부사장직에 오른 사람이 있다. 기업의 임원이라면 군의 장성과 흡사하다. 그곳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친김에 회사의 사장이 되고자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노력하면 될 거 같았다. 그러나 결국 부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한 기업의 임원직에 올랐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은퇴 이후에도 내내 정상에 오르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그와 같이 입사했던 동기는 부사장은커녕 이사직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는 부장으로 있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재직 중에 노후준비를 잘해선지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검소한 생활을 하며 어렵지 않게 살고 있다. 은퇴 이후에는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동기처럼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조기 퇴직한 동료들이 자영업을 하며 어려운 가계를 꾸려가는 것을 보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만약 코넬대학교 심리학 연구소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심리분석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위의 메달리스트와 거의 흡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이루지 못했던 일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그때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후회한다.

남은 생에서도 이런 후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의 막바지에선 후회하는 일이 적어야 한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후회를 줄일 수 있을까. 일반인은 주로 위의 예처럼 직장에서 높은 직에 오르지 못한 것, 큰 집을 소유하지 못한 것,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 등 비교적 물질적인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임종 환자의 후회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크게 달랐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후회했던 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뒤로 미루었던 그들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물질적인 욕망보다 작은 소망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사진 pxhere]

죽어가는 사람들이 후회했던 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뒤로 미루었던 그들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물질적인 욕망보다 작은 소망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사진 pxhere]

죽어가는 사람들이 후회했던 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뒤로 미루었던 그들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물질적인 욕망보다 작은 소망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후회, 일에만 매진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한 자책감, 고향의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은 죄송함,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한 미안함, 남녘 고향 땅에 내려가 작은 집을 하나 짓고 싶었는데 그러하지 못한 아쉬움, 살아온 흔적을 책으로 엮고 싶었는데 글만 써놓고 펴내지 못한 안타까움, 은퇴 후에는 자원봉사를 하며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었는데 실천하지 못한 후회,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능을 이용하여 뭔가를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한 소망 등.

머릿속으로는 늘 이렇게 염원했지만 실제로는 소망을 뒤로 미루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건강한 노인을 보고 자신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은 병동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투병하고 있으며, 일찍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는 걸 간과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조만간 닥칠 수 있다. 그러므로 소망을 너무 미루지 않아야겠다.

누구나 선망하던 직장에 다니던 젊은이가 사표를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에 나섰다. 우연히 쿠바를 방문했다가 한인 4세의 택시 운전사를 만나 그곳 한국인 교포의 역사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그냥 스쳐 지나갈 수가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날은 가슴이 벅찰 정도로 뛰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선망하던 직장에 다니던 젊은이는 우연히 쿠바를 방문했다가 한국인 교포 역사를 듣게 되었다. 그는 쿠바 교포의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에 나섰다. [사진 pikist]

누구나 선망하던 직장에 다니던 젊은이는 우연히 쿠바를 방문했다가 한국인 교포 역사를 듣게 되었다. 그는 쿠바 교포의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에 나섰다. [사진 pikist]

영화를 제작해 쿠바 교포의 역사를 알려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작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에 사표를 냈다. 법복을 벗은 판사가 정치권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공직에서 물러난 어른이 어디 괜찮은 자리 없을까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30대의 젊은이는 잊혀가는 역사를 되살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들판으로 나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소명이 있다. 다만 한눈파느라 그저 잊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양말 하나조차 자신의 힘으로 신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신께서 “내가 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을 때, 아니면 당신의 영혼이 똑같은 질문을 던질 때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인생 2막은 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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