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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탱크' 김태년의 100일···전투 승리했지만 출혈도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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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에 처음으로 지지도를 추월당했다는 한 여론조사 업체의 결과가 발표된 13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김태년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에 처음으로 지지도를 추월당했다는 한 여론조사 업체의 결과가 발표된 13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김태년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로 예정했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3일 “수해 피해가 워낙 커서 수해 복구를 우선으로 하고 100일 기자회견은 잠정적으로 보류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재난재해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집권 여당이 되겠다”며 “긴급 대응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항구적 재난 대응을 목표로 종합적인 수해 복구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장마만 이례적이었던 게 아니다. 김태년의 지난 100일은 돌발 변수의 연속이었다. 원내대표에 당선되던 날(5월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했고, 그렇게 불거진 윤미향 사태가 잠잠해질 무렵 북한이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6·15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이 폭등했는데 7·10 후속대책 발표 전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사건도 발생했다. 당 내에선 “김태년이니까 그래도 이만큼 헤쳐온 것”(수도권 재선)이란 말이 나온다.

김태년의 명(明)

김 원내대표는 특유의 추진력과 정책 이해력으로 잇단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다. ‘불도저’, ‘탱크’ 같은 별명이 그래서 생겼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일하는 국회”를 내세워 미래통합당과의 원구성 협상에서 명분을 선점했다. 당 내부적으론 원내대표 권한 축소 등을 논의하는 ‘일하는 국회 추진단’을 꾸려 개인의 이해를 벗어난 쇄신 의지도 선보였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대야리에서 수해 복구 봉사활동 중 당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대야리에서 수해 복구 봉사활동 중 당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년은 알고 보면 컴퓨터 단 탱크다.”(지방 중진) 2017년부터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 맡으며 키워온 정책 역량은 그의 원내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상임위원장 독식 국면에서도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신속히 처리했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 완성론’을 띄워 의제 설정 능력을 입증한 건 정치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176석 거여를 이끌고 큰 탈 없이 21대 국회 첫 시동을 걸었다”는 게 아직까지의 당내 중론이다.

김태년의 암(暗)

다만 안팎으로 소통이 부족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론을 띄우기 전 원내 핵심 참모들과도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다. 청와대 조율 여부와 별개로 우리끼리는 좀 더 논의를 해야 했지 않느냐는 얘기들이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돌연 “모든 정황이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 강압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고 가리킨다”며 한 전 총리 재심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측근들과 사전 논의를 생략한, 무리한 시도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 총리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재심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이해찬 대표와 공개적으로 시각차를 드러냈다. 김 원내대표가 “여야가 합의해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개정하는 입법 차원의 결단으로 얼마든지 행정수도 완성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 대표는 “개헌으로 대한민국 수도를 세종으로 한다는 규정을 두자”는 입장이다. 8·29 전당대회 이후 취임할 차기 당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어떻게 의견을 조율해갈지, 당대표-원내대표 간 ‘케미(궁합)’에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4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 종료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4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 종료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뚝심은 자칫 불통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김 원내대표는 전례 없는 18대0 단독 원구성, 초고속 부동산 입법 과정을 이끌었다. 이때 그려진 ‘오만과 독주’ 프레임이 결국 통합당과의 지지율 역전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임대차 3법과 공수처 후속 법안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습 상정, 기립 표결, 소위원회 구성 배제 등을 강행한 걸 두고선 표결에 협조한 정의당에서조차 “민주당이 원하는 시간에,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만을 처리하는, 민주당만 일하는 국회”라는 비난이 나왔다.

스스로를 “협상가”라 규정하면서도 “다수결로 해결하겠다”고 밀어붙였던 김 원내대표의 판단이 통합당에 지지율에 유리한 ‘피해자 프레임’을 안겨줬단 분석이다. 지지율 역전이 가시화한 이 날 민주당 의원들은 “이제 다수결은 안 된다”(수도권 중진),“야당을 인정하고 협치를 해야 할 때”(친문 초선)라고 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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